달라진 소 등급제... ‘혼란’에 빠진 유통업계
달라진 소 등급제... ‘혼란’에 빠진 유통업계
  • 옥미영 기자
  • 승인 2019.12.20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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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 등급(3,2,1,1+,1++)서 7개 등급(3,2,1, 1+,1++7,8,9)으로 늘어
소비자 체감변화는 미비한데 등급간 서열화 심화 전망
한우업계 전문가 “변화 과정서 나타난 과도기적 상황” 진단

소 등급제 왜, 어떻게 바꿨나<상>

소 등급제 개편 시장에선…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나<중>

달라진 소 등급제…‘혼란’에 빠진 유통업계<하>

유통업계는 금번 개정된 소 등급제가 기존 5개 등급(3,2,1,1+,1++)서 7개 등급(3,2,1, 1+,1++7,8,9)으로 늘어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유통업계는 금번 개정된 소 등급제가 기존 5개 등급(3,2,1,1+,1++)서 7개 등급(3,2,1, 1+,1++7,8,9)으로 늘어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1++등급 7, 8, 9번으로 세분화... 유통업계 ‘멘붕’

[팜인사이트= 옥미영 기자] 근내지방 7번까지 1++등급을 포함하는 새로운 등급제는 다양한 상품군 확보와 이전보다 많아진 1++등급 물량으로 가격의 하향 조정과 함께 한우의 소비저변이 확대될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되고는 있지만 큰 변화를 맞닥뜨린 유통업계는 기대보다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소 등급제 개편에 대한 기대는 ‘적은 가격을 지불하고 높은 상품군을 찾는 소비 심리’가 확산됨에 따라 한우고기에서도 이같은 가성비 중심의 소비자들을 겨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1++등급 물량 증가는 전반적으로 가격의 하향 조정으로 이어지면서 한우 도매가격은 다소 하락 여지가 크지만 이 역시 소비 저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김영환 벽제갈비 회장은 “최근 몇 년 간 이어진 경기 침체로 인해 한우고급육의 소비 기반이 다소 약해진 상황에서 가격이 높은 8번 9번뿐만 아니라 7번까지 1++등급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소비기반이 넓어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1++등급 가운데 가격이 낮은 근내지방 7번을 가지고 투플러스 등심을 만드는 외식업소 등이 나올 수 있다. 적은 가격을 지불하고도 높은 등급의 고기를 소비하고 싶어 하는 소비심리에 부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한우 유통업계 내부에선 소비자들은 감지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지나치게 등급이 세분화되면서 다양한 상품군 확보에 실패한 반면 유통업계만 짐을 지게 됐다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문주석 이마트 축산팀 부장(한우총괄 바이어)은 “다양한 상품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소비자가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하는데 금번에 개정된 등급은 근내지방도 수치에 따른 등급 조정으로 이 부분에 특별히 (근내지방을)공부한 소비자여야만 알 수 있는 수준”이라면서 “반면, 고기를 사고파는 경매시장, 이마트와 같은 대형유통업체, 육가공업체들은 매입단가와 규격에 예민할 수밖에 없어 업체들의 고민만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유광준 마장한우협동조합 조합장은 “그동안 1++등급을 소비해온 한우의 충성 고객층들은 1++등급에 대한 기대치가 형성되어 있는데 변경된 등급으로는 기대에 벗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마장동 도매육가공업체들은 근내지방 7번 같은 상품의 경우 1++ 가격을 주고 매입해와서 1+가격에 납품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근내지방 7,8,9번의 병행표기는 유통업체들에겐 정산시스템 변경과 보완, 새로운 재고관리 시스템 구축 등 적지 않은 비용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어 결국 이는 한우가격 상승과 소비 위축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권혁수 민속LPC 대표이사는 “기존에 1++등급으로 총칭되는 한우등급이 12월 1일부터 1++(7), 1++(8), 1++(9) 등급으로 세분화되어 실제 등급이 기존 5개에서 7개로 늘어나게 된 셈”이라면서 “1인 가족 증가 등 인구구조 변화와 인건비 상승으로 소포장‧부분육의 상품화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등급별 세분화는 소포장분에 대한 이력 및 코드관리와 재고관리 등 추가비용이 30%이상 늘어나면서 소비자가격 상승으로 인한 한우고기 소비위축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12월 9일 한우협회 주최로 열린 한우바이어대회에서 ㈜예성 이승훈 대표는 “등급제 개정으로 7,8,9번이 1++가 되면서 정산서 작성과 재고관리 등 기존 유통업체에서 쓰던 프로그램을 새롭게 보완하거나 개발해야 하는 등 등급제 개편에 따른 추가 비용이 발생으로 경영에 부담이 되고 있다”면서 “한우협회 등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해 공급하는 등 지원방식을 고려해 주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개정된 등급제는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상품군을 제공할 수 있다는 긍정적 키워드가 홍보의 핵심으로 제시됐지만 정작 소매유통업계는 소비자가 변별할 수 없는 수준이어서 상품화는 어려운데다 등급간 변별력을 잃었다고 지적한다. 사진은 11월 1일 열린 대형유통할인매장에서의 한우 프로모션 모습.
개정된 등급제는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상품군을 제공할 수 있다는 긍정적 키워드가 홍보의 핵심으로 제시됐지만 정작 소매유통업계는 소비자가 변별할 수 없는 수준이어서 상품화는 어려운데다 등급간 변별력을 잃었다고 지적한다. 사진은 11월 1일 열린 대형유통할인매장에서의 한우 프로모션 모습.

변별력 잃은 등급제 개정 혼란 가중

세분화된 1++등급&가격차…출하월령 외려 증가할 듯

이번 등급제 개편에 대한 유통업계의 가장 큰 불만은 등급간 변별력을 상실하면서 소 등급제도가 외려 후퇴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전에는 근내지방 8번과 9번이 투플러스 등급에 해당해 어느 정도 품질 균일화를 이루면서 대표성을 갖고 있었지만 근내지방 7번이 포함되면서 1++등급의 차별성을 놓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인신 ㈜SD푸드(서동한우) 대표이사는 “금번 등급제 개편의 가장 큰 문제는 쇠고기 등급간 변별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라면서 “등급간 품질에 대한 확실한 갭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같은 등급내에서도 품질에 큰 차이가 있다보니 거래선에 큰 혼선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등급제 개정은 당초 정부가 의도했던 한우의 사육월령 단축과 생산비 절감, 지방함량 조절 등의 목표와도 외려 반대의 움직임으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진단된다.

이마트 문주석 한우 축산팀장은 “마블링 지수를 낮추고 출하월령을 단축시키려면 오히려 8, 9번에서 끝났으면 간단했을 문제라고 본다”면서 “근내지방도의 7, 8, 9번의 서열화 계층화가 심해지면서 근내지방도를 높이기 위한 농가들의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우육가공업계 한 관계자는 “도매시장의 경매 시스템이 근내지방도 7, 8, 9,번의 병행표기와 도매가격이 발표되고 근내지방 9번이 7,8번에 비해 높은 가격에 거래되면서 농가들의 사육심리와 목표는 이미 No9으로 정해지고 있다”면서 “1++등급을 완화하고 세분화한 것이 오히려 농가들의 장기 비육에 불을 붙일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업계에선 정부가 고기를 취급하고 유통하는 유통업계의 목소리를 수렴해 등급제 보완에 나가야 한다고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부가 유통업계의 의견을 어디까지 수용해 제도에 반영할 지는 확실치 않아 보인다.

정부는 지난 2016년부터 등급제 개편을 위한 본격 작업에 나섰지만 생산자단체에 대한 설명회 90회, 소비자단체 설명회 2회, 소비자 반응 조사 및 의견조사 등 주로 생산자와 소비자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의견수렴에 나섰을 뿐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한 의견수렴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는 금번 등급제 개편과 관련해 생산자·소비자단체, 유통업계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축·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생산자와 소비자단체 입장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운신의 폭 역시 넓지 않아 보인다.

당장에 도매시장 한우가격에는 별다른 이상 징후가 없어 한우협회 등 생산자단체는 잠잠한 데다 금번 등급제 개정이 소비자단체 요구로 시작된 것이어서 이들을 다시 설득할 만한 이렇다할 명분도 빈약한 상황이다.

한편, 익명을 요구한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지방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갖고 있는 소비자단체의 잘못된 정보와 편견, 몰이해로 인해 소 등급제 개편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닥잡게 됐다”며 “한우산업의 지속성장을 위해선 생산자, 소비자는 물론 한우를 직접 유통하고 취급하는 유통업계의 의견도 적절히 반영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한우업계 한 전문가는 금번 소 등급제 개편과 관련해 “15년간 지속돼온 등급제가 하루아침에 변경되면서 유통업계 내부에서 ‘과도기’적 혼란에 빠진 상황”이라면서 “제도 도입이후 나타난 문제점들을 보완해 나간다면 지금의 과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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