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2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84] 60세가 넘은 중신(重臣)에게 상중(喪中)에 고기를 먹도록 하자 울면서 행하였다
[592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84] 60세가 넘은 중신(重臣)에게 상중(喪中)에 고기를 먹도록 하자 울면서 행하였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12.2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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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99호, 양력 : 12월 23일, 음력 : 11월 27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고기붙이로 만든 반찬인 육찬(肉饌)으로 차린 임금이 드시는 수라를 육선(肉饍)이라 하였고, 생선(魚)이나 고기(肉)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나 그러한 음식으로 차린 상차림을 소식(素食), 또는 소선(素膳)이라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임금의 수라상에 올라가는 음식의 양이나 가짓수를 줄이도록 하는 감선(減膳), 국상(國喪)이 났거나 나라에 재앙이 들면 임금이 근신하기 위하여 육선(肉饍)을 들지 않는 철선(撤膳)등이 있었습니다.

이중에 감선(減膳)하는 경우는 우선, 수라상에 올리는 음식의 양이나 가짓수를 줄이는 방식이 있었으며, 하루에 다섯 번 받는 음식의 횟수를 줄이 거나, 수라상에 올리는 고기(肉) 음식의 가짓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행해 졌으며, 감선과 철선(撤膳)이 혼용되어 쓰이기도 하였고, 감선을 결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연재해로, 가뭄이나 홍수, 날씨의 갑작스런 변화, 혜성이 나타나거나 벼락이 떨어지는 등 이상한 일이 일어나면 임금은 감선을 하였습니다.

감선은 자연재해나 자연의 이상한 일로 인해 백성들이 고통을 받는 것은 임금이 스스로 덕(德)이 없어서 일어난 것이라고 여겨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행동으로, 자연재해 외에도 왕실의 친척이나 아끼는 신하와 그의 친척이 아프거나 죽거나 기일을 맞이하여도 애도의 뜻으로 감선을 행했으며, 임금의 요구가 신하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도 감선을 행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임금은 감선의 이유가 발생하면 신하들과 의논하여 임금의 식사와 건강을 책임진 부서에 교지를 내려 감선을 실시토록 알렸으며, 임금이 감선을 하면 왕비를 비롯하여 왕실의 친척과 신하들도 따라서 감선을 실시하였습니다. 특히 대왕대비가 임금의 감선을 따라 할 때는 불효가 된다고 여겨 임금이 직접 감선을 하지 못하도록 설득하기도 하였고, 감선 기간에 도성 안에서나 바깥에서 풍악을 울리고 노는 사람에게는 상하를 따지지 않고 벌을 내렸으며,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는 감선과 더불어 정전(正殿)에서 잠을 자지 않는 피전(避殿), 음악을 울리지 않는 철악(撤樂) 등의 행위도 행해졌습니다.

또한 임금이 너무 엄격하게 감선을 하면 신하들은 건강을 걱정하여 감선 기간을 줄일 것을 상소하였고, 만약 가뭄 중에 조금이라도 비가 내리면 감선을 멈출 것을 청하였으나, 대부분의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가뭄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 감선을 이어 갔으며, 가뭄이나 홍수로 감선을 할 때는 물품을 진상하는 일도 멈추도록 명령을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이후 감선의 이유가 해결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서 보통 때의 식사로 되돌리는 복선(復膳)을 명령하고 감선을 멈추었습니다.

592년 전 오늘의 실록에는 임금이 승정원에 전교하기를, 예전에 나이 60이상인 사람은 비록 거상중(居喪中)이라도 오히려 고기 먹기를 허락하였는데, 지금 좌의정이 상중(喪中)에도 특명으로 벼슬에 근무토록 하는 기복(起復)을 하였고, 나이도 또한 60이니 소식(素食)을 할 수 없으므로, 빈청에서 접대하고 고기를 권하도록 명하자, 좌의정이 자신이 늙었으매 혹시 병이나 날까 가엾게 여기셔서 고기를 먹으라고 명하시니 어찌 감히 따르지 않겠냐며, 머리를 조아리며 울고서 자리에 나아가 먹은 것으로 적고 있습니다.

 

■세종실록 38권, 세종 9년 11월 27일 신해 기사 1427년 명 선덕(宣德) 2년

승정원에 전교하여 기복한 황희에게 고기 먹기를 권하도록 하다

승정원에 전교하기를,

"예전에 나이 60이상인 사람은 비록 거상중(居喪中)이라도 오히려 고기 먹기를 허락하였는데, 지금 좌의정 황희는 이미 기복(起復)하였고, 나이도 또한 60이니 소식(素食)할 수 없으므로, 내가 불러서 고기를 권하고자 하였다가 마침 몸이 불편하여 친히 볼 수 없게 되었으니, 너희들이 나의 명으로 〈황희를〉 빈청(賓廳)에 청하여 고기 먹기를 권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혹은 대신을 접대하는 법을 가볍게 할 수 없으니 나의 몸이 회복되기를 기다려서 내가 친히 보고 고기를 권하는 것이 어떠할까." 하니, 지신사 정흠지 등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전하께서 비록 친히 권하지 않으시더라도 만약 고기 먹기를 명하시면 어찌 성의(聖意)를 알지 못하겠습니까."

하므로, 임금이 그렇다고 말하고 이에 황희를 부르고 흠지와 여러 대언들에게 명하여, 빈청에서 접대하고 고기를 권하니, 황희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신이 지금 병이 없어 소식으로도 먹을 수 있사오니 어찌 감히 고기를 먹으리오. 청하건대 신을 위하여 잘 아뢰어 주시오."

하므로, 흠지가 말하기를, "만약 공사(公事)의 가부라면 내가 마땅히 공을 위해 상달할 것이로되, 이 일은 상감의 결의로서 신 등에게 권하기를 명하셨사오니 감히 다시 아뢰지는 못할 것이오며, 임금의 명이시니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황희가 말하기를, "성상께서 신이 늙었으매 혹시 병이나 날까 가엾게 여기셔서 고기 먹으라고 명하시니 어찌 감히 따르지 않으오리까." 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울고서 자리에 나아가 먹었다.

【태백산사고본】 12책 38권 1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