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人] 낙농인생 마무리하는 낙농업계 대모 김일량 소장
[팜人] 낙농인생 마무리하는 낙농업계 대모 김일량 소장
  • 옥미영 기자
  • 승인 2019.12.30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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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 있는 소통ㆍ성실함으로 '전문성 뛰어넘는 능력' 인정 받아
종축개량협회 최초로 정년퇴임하는 여성직원 새 역사도

"김일량 소장은  진정성 있는  소통과 친화력으로 그 누구보다 낙농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일해왔습니다. 농가들 대표로서, 협회 임원으로서  퇴임을 맞는 김일량 소장에게 뜨거운 박수와 감사를 보냅니다"(김희동, 낙농경영인회장·정동목장 대표)

"낙농가들과 함께 해온 시간 동안 교육, 행사, 세미나, 품평회 그 어느것하나 솔선수범하지 않았던 것이 없었습니다. 특히 유성분분석소장으로서 김일량 소장의 역할은 더욱 빛이 났습니다. 단순한 자료 전달을 넘어 목장의 성적과 건강한 젖소를 위한 세심한 배려는 여성의 섬세함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안래억 한국홀스타인검정중앙회장, 흥천목장 대표)

"직제상으로는 저의 부하직원 이었지만 잘된 부분에 대해선 격려를, 잘못된 부분에 대해선 가차없는 충고도 아끼지 않았던 동료이자, 인생선배였습니다. 우리 협회 유우사업 부분에서 묵직한 존재감으로 자리 잡았던 김일량 소장의 빈자리가 클 것 같습니다"(윤현상, 한국종축개량협회 유우개량부장)

낙농업계의 대모(大母), 낙농업계의 ‘영원한 누나’ 김일량 한국종축개량협회 중앙유성분분석소장이 2019년 12월 31일 정년을 끝으로 낙농업계를 떠난다.

매일 착유를 통해 유량과 유성분 등 당일의 성적을 확인해야 하는 낙농업계의 특성 때문에 가장 과학적인 사양을 요구받는 낙농가들 그 가운데서도 까다롭기로 소문난 종축개량협회 회원농가들에게 인정받았던 김일량 소장은 낙농가들의 '뜨거운 박수' 속에 정들었던 '26년 1개월'의 낙농인생을 마감하며,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나온 날들을 담담하게 회상했다.

남편의 사고사(事故死)로 시작된 낙농업계와의 인연

김일량 종축개량협회 유성분분석소장. 12월 31일 종무식에서 열릴 예정인 퇴직기념식을 끝으로 낙농업계를 떠난다.
김일량 종축개량협회 유성분분석소장. 12월 30일 퇴직기념식을 끝으로 낙농업계를 떠난다.

낙농업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알지만 김일량 소장과 낙농업계의 인연은 절망속에서 핀 작은 희망의 씨앗처럼 시작됐다.

1993년 당시 종축개량협회 유우개량부 과장이었던 남편 이민형씨가 출장 후 귀갓길에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유명을 달리하는 등 일생의 큰 아픔이 그가 낙농업계와 인연을 맺게 된 배경이다.

급작스런 사고로 어린 아들 둘과 생계를 떠안게 된 김일량 소장을 배려해 종축개량협회가 유우개량부 기능직 직원으로 채용한 것이다.

전업주부로 살림만 살았던 김 소장은 경황이 없었던 1993년 11월 4일 입사 첫날을 또렷이 기억했다.

놀랍게도 정년을 모두 마치고 명예롭게 퇴직하는 '그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자신했다고 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특별한 채용이쟎아요. 정말 소중한 기회였고요. 나 같은 사람이 생기길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혹시나 나처럼 큰 절망속에 있는 사람이 생기면 제가 모범으로 기억되어서 제게 주어진 것처럼 똑같은 기회가 주어지길 바랐습니다. 제 나름대로의 사명감이랄까 그랬던 것 같아요. 나는 무슨일이 있어도 정년을 모두 마치고 명예롭게 퇴직하겠다는 생각을 출근 첫날 가슴에 품었었습니다."

인연을 소중하게 대했던 삶의 방식 ‘通하다’

김일량 소장이 입사했던 당시는 수기로 등록번호를 부여하고, 유성분 분석은 팩스로 처리하는 등 지금보다 육체적인 노동을 많이 필요로 했던 가운데 낙협에서의 까다로운 민원도 적지 않아 애로사항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는 적극적으로 담당자들을 만나 시스템을 이해시키며 검정조합과 협회와의 협력을 최대한 이끌어냈다. 그가 종축개량협회에 입사할 수 있도록 결정적 역할을 했던 당시 유한종 유우개량부장은 신입직원의 패기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줬고, 때문에 김 소장은 처음부터 '할 말을 하는 직원'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등록과 유성분 분석 등 내부적인 업무를 주로 담당했던 김 소장은 낙농가 방문 등 현장 출장에도 협회의 배려로 직원들과 자주 동행하며 농가들과의 접점을 넓혀갔다.

특히 김일량 소장의 진정성 있는 소통방식은 냉철한 낙농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소통과 공감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오늘의 내가 있었던 것은 인연을 소중하게 대했던 제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 때문인 것 같아요. 내가 맺은 인연에 대해선 한 번도 하찮게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관리를 한 것은 아니지만 혹시 업무가 바뀌더라도 좋았고, 감사했던 분들은 마음속으로부터 늘 챙기려고 노력했어요. 지난달 젖소 등록위원 보수교육에서도 정년을 앞둔 저를 보기 위해 일부러 오신 분들이 있더라고요. 항상 나와 맺은 인연에 마음을 다하려고 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받은 것이 훨씬 많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입사 7년만에 찾아온 기회 '당당히 거머쥐다'

누구에게나 다 그렇듯이 26년 1개월 동안의 직장생활이 늘 즐거웠을 수만은 없었다.

상사들에게 했던 솔직한 말들이 오히려 오해를 사서 난처한 상황도 많았다. 결국엔 김 소장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오해들은 쉽게 풀리기도 했지만 모든 일에 열심인 그를 위한 선배들의 배려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은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입사초기엔 나이도 많고, 일도 능숙하지 않다는 뒷담화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찾아서 하고, 늦도록 하고, 청소까지도 열심히 했어요. 차장 직급 달고도 그렇게 하는 모습은 밑에 직원들 욕 먹이는 거라는 얘기도 들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저에게 기회를 준 분들에게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기능직으로 채용된 김 소장은 입사 7년 만에 환직 시험의 기회를 얻게 됐다.

몇날 며칠을 밤을 새며 준비한 결과 당당히 합격을 거머쥐게 됐다. 10년차 직원까지 낙방했던 쉽지 않은 시험이었다.

"비전문가의 낙하산 입사라는 수근거림을 한방에 날릴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그때부터 소속감과 자존감을 가지고 더욱 당당하게 일했던 것 같아요. 특히 또 한번의 기회를 주신 분들을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습니다. 저에게 새로운 기회이자 반전이었던 거죠."

성실함으로 지내온 24년...빛나는 낙농인생

매 순간 당당하게 나와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이어가자는 생각으로 달려온 김일량 소장의 마음에도 늘 떨쳐내기 쉽지 않은 것이 있었다. 바로 '전문성'이었다.

'가축개량'이라는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집단에서 낙농이나 축산을 전공하지 않은 이력은 자신을 작게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순간에선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쓴뿌리와 고민도 26년 정년을 앞두고 해답을 찾았다.

협회의 배려로 12월초 동행한 한우등록위원들과의 해외 연수에서 만난 한 위원이 "능력이 뛰어나고 부족한 것은 사람마다 다 틀리지만 부족한 능력을 이겨내는 것은 성실함"이라고 말한 대목에서 깊은 울림을 받았다.

입사 후 지금까지 '성실함'으로 달려온 나의 낙농인생도 빛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동안 마음 깊은 곳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쁘고 다행스러웠다고 김 소장은 말했다.

한편의 영화와 같았던 낙농업계와 인연을 회고하면서 그에게 '낙농이란 무엇인가' 물었다.

"낙농은 저에게 사랑입니다. 그것(낙농)때문에 살았고, 최선을 다했고, 힘닿는 데까지 모든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 때문에, 낙농에 대한 사랑 때문에 오늘이 있게 된 거겠죠. 변치 않는 사랑처럼 낙농업계를 떠난 이후에도 지금까지 맺어온 낙농업계와 쭉 인연을 맺고 살고 싶은 게 작지만 소박한 저의 바람입니다."

12월 30일 김일량 소장 정년퇴임식에서 김일량 소장(가운데)와 이재용 소장과 부장및 본부장들이 기념촬영을 갖고 있다.
12월 30일 김일량 소장 정년퇴임식에서 김일량 소장(가운데)와 이재용 회장과 부장 및 본부장들이 기념촬영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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