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드람의 실험] 농민이 만드는 '경쟁'과 '협동'의 컬래버레이션
[도드람의 실험] 농민이 만드는 '경쟁'과 '협동'의 컬래버레이션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7.12.13 0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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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에 자리한 도드람 사업부
경기도 안성에 자리한 도드람 사업부

“왝더독(Wag the Dog)”

롤러코스터처럼 들쭉날쭉한 돼지 부산물 가격을 두고 돈육업계에서 회자되는 말이다. 부산물 가격이 떨어지면 부산물로부터 수익을 얻었던 중도매인들이 그 리스크를 지육가격에 전가시키는 행태를 업계에선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고 표현한 것이다.

돼지 부산물은 돈육업계에서는 늘 골칫거리였다. 깨끗하고 잘 손질된 외국산 부산물까지 우후주순 수입되자 국내산 부산물 시장은 소위 종쳤다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로 암울한 상황이었다. 구제역이 터지자 부산물 가격 등락은 더욱 심화됐고 악화됐다.

2011년 구제역 대란 이후 부산물 수입은 21%나 치솟았다. 한돈의 부산물 시장을 정리해줄 해결사가 필요했다. 부산물 가격 안정화가 시급했고 불안정한 국내산 부산물 시장에 ‘신뢰’라는 시그널을 줄 필요가 있었다. 당시 원인과 처방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으나 국내산 부산물을 유통업계에서 꺼렸던 이유는 공급의 불안정성, 가격폭등, 품질과 위생문제로 요약될 수 있었다.

부산물 가공장의 내부 모습. 도드람 가공장에서는 30분마다 비상벨이 울려 배수구 청소 등을 주기적으로 실시해 위생과 악취 관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부산물 가공장의 내부 모습. 도드람 가공장에서는 30분마다 비상벨이 울려 배수구 청소 등을 주기적으로 실시해 위생과 악취 관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부산물 가공장, 돈육 부산물 시장 새 이정표
인프라 구축 100억원 투자···품질 끌어올려

도드람의 부산물 가공장은 2015년 1월 문을 열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전문 부산물 가공장에 대한 이야기는 수 십 년 전부터 논의돼 왔으나 매번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이유는 리스크가 큰 사업이어서다. 가공장 인프라를 구축하는데만 100억원이라는 자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잘나가는 대기업조차도 선뜻 투자가 꺼려지는 금액이다.

돈도 돈이지만 부산물 가격이 향후 안정될 거라는 보장도 없었고 부산물 장사로 투자금액을 회수한다는 건 어떤 전문가도 긍정적인 전망을 내리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농협과 같은 보수적인 조직에선 더욱 그랬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손실회피심리로 투자에 소극적인 기업을 설명하기도 한다. 주요 의사결정의 주체인 임원 입장에서는 투자 성공시 이익은 크지만 리스크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최대한 투자를 꺼리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손실회피심리로 인해 기업들이 입는 잠재적 피해는 상당하며 이로 인해 국가의 부가 크게 감소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그만큼 새로운 사업, 리스크가 큰 사업에 대한 투자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이유로 도드람의 부산물 가공장 설립은 한돈업계에 큰 울림을 줬다. 가공장 설립이 가지는 의미가 ‘부산물을 팔아 이익을 실현해보자’는 것보다 ‘국내산 부산물 시장을 제자리에 돌려놓자’는 공적인 메시지가 컸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드람의 가공장 설립 이후 부산물 가격은 차츰 안정돼가고 있다. 가공장이 가지고 있는 인프라가 포장 유통과 위생적인 제품을 출시하면서 품질을 향상시켰고 조합원들이 출하하는 돼지로 공급의 안정성까지 더해지면서 도드람의 부산물 가공장은 한돈업계에서는 성공적인 투자로 회자되고 있다.


도드람 부산물 가공장, 기준가격 바로미터 역할
부산물의 오해를 풀다···‘위생’ 챙기고 ‘혐오’ 불식

가공장의 시작은 예상대로 쉽지만은 않았다. 원료육을 삶아 포장까지 완료해 완제품을 받아보는 업체에서는 매번 내장을 삶는 노하우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고 가격이 비싸다며 다른 업체에서 거래되는 비용으로 금액을 낮추라는 요구도 터져나왔다.

박주환 도드람FC 부산물사업부 팀장은 “아직도 전통시장 같은 곳에서는 자신들의 방식을 고수하는 분들이 있다”며 “처음 부산물 가공장이 가동되고 납품을 시작할 때 개별 사업자가 요구하는 스펙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현재는 인건비, 폐수·폐기물 등 부산물을 가공하는데 드는 비용이 상당해 점차 가공장에서 내놓는 완제품을 찾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도드람 부산물 가공장에서는 하루에 돼지 1200마리의 머리와 내장을 소화하고 있다. 부산물 가공장에서 만드는 제품의 60%는 도드람 프랜차이즈인 본래순대로 나가고 나머지는 일반 업체로 공급된다. 도드람에서는 앞으로 부산물 생산 물량을 더욱 늘려나갈 방침이다. 시설도 추가로 증축하고 투자도 늘리면서 올해 연말까지 1500두를 소화하겠다는 것이다.

박 팀장은 “내년 2~3월경 전북 김제에 부산물 가공장이 추가로 들어서면 안성과 김제를 합쳐 하루 3천두 물량을 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부산물 가공장은 단순히 부산물을 판다는 의미보다는 부산물 가격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부산물을 깨끗하게 유통해 혐오 제품이라는 인식을 불식시키는 등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산물에 대한 인식이 점점 식품으로 발전되고 있다”면서 “향후 민간 업체들에서도 비용과 식품의 기본 요건인 위생문제로 인해 안전한 도드람 제품 사용비율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도드람 가공장의 완제품 포장시설의 모습.
도드람 가공장의 완제품 포장시설의 모습.

소비자와의 스킨십 프랜차이즈 본래순대
가맹점 85곳으로 늘어 부산물 소비 든든한 지원군

농민이 소비자와의 접점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생물을 키워내는 데는 특별한 가공과정이나 마케팅이 필요치 않고 잘 키워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축산은 도축과 가공이라는 유통과정에서 소비자와의 간극이 생겨 둘 사이의 거리는 멀다. 생산자조합이 소매유통에 진출한 사례는 몇몇 있지만 성공적인 프랜차이즈를 보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자본도 많이 들고 성공여부도 희박하다.

처음 도드람이 프랜차이즈를 계획한 건 부산물의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였다. 업계에서는 드물게 부산물 문제를 ‘최종 소비자’로부터 푼다는 계획이었다. 2013년 9월 본래순대는 첫 매장을 오픈하면서 사업의 물꼬를 텄고 순댓국 프랜차이즈로는 최초로 한돈인증과 HACCP인증까지 획득했다. 손익분기점으로 거론됐던 가맹점 60곳도 뛰어넘어 현재는 85곳으로 늘어나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장차 가맹점 300곳까지 넘볼 정도로 소비자로부터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그동안 본래순대 가맹점에서 원료육은 도드람 가공장에서 공급받고 순대와, 소스, 육수는 OEM 방식으로 납품받아왔지만 도드람이 푸르샨식품을 계열사로 편입, 원료 모두 본사에서 납품받게 되면서 유통이 더욱 견고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은 부산물 소비시장 형성, 부산물 가공장 활성화, 돼지 지육시장 가격안정 등의 효과를 발생시키며 양돈농가의 수익을 개선시키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고 차별화된 부산물 제품을 출시하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데 한돈업계에서는 성공적인 사업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 강동구에 소재한 본래순대 천호점 오픈을 축하하는 테이프 컷팅식.
서울 강동구에 소재한 본래순대 천호점 오픈을 축하하는 테이프 컷팅식.

'종돈·사료·도축·유통' 계열화 퍼즐조각 완성
다비육종과 공동·협력 사업 약정 체결

지난 3월 말 도드람은 종돈전문업체인 다비육종과 공동·협력사업 약정을 체결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민동수 다비육종 사장, 윤희진 다비육종 회장, 이영규 도드람양돈농협 조합장, 이환원 도드람양돈농협 상임이사 순.
지난 3월 말 도드람은 종돈전문업체인 다비육종과 공동·협력사업 약정을 체결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민동수 다비육종 사장, 윤희진 다비육종 회장, 이영규 도드람양돈농협 조합장, 이환원 도드람양돈농협 상임이사 순.

지난 3월 31일 의미있는 협력이 시작됐다. 도드람과 다비육종 간의 공동·협력사업 약정식을 체결한 것이다. 다비육종은 도드람 조합원에게 우수한 유전자원을 원활하게 공급하고 도드람은 다비육종의 종돈수요를 충족시켜 준다는 게 큰 그림이다. 과거 이영규 조합장이 다비육종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이 같은 결과물을 만들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다비육종은 종돈업계 1위 기업으로 연간 5만3천두의 종돈분양을 하고 있으며 국내에서 가장 좋은 종돈을 배출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내년 2~3월 가동되는 도드람의 김제FMC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종돈 물량을 확보하는데도 톡톡한 기여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약정은 도드람이 다비육종에 지분 참여를 통해 성사됐으며 이는 단순한 협력을 넘어서 도드람이 계열화를 완성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도드람은 이외에 사료사업도 원활하게 진행시키고 있다. 지난해 양돈사료 생산실적은 카길과 팜스코에 이어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전체 사료시장에서 7.0%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계열사인 ㈜디에스피드는 2015년 HACCP 최우수 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도드람엘피씨공사도 거점도축장 1위의 기염을 토하며 최우수업체로 선정, 장관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이로써 도드람은 종돈부터 시작해 생산, 도축 및 가공, 판매까지 전 과정의 퍼즐을 맞춰가면서 국내 협동조합 종합축산패커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가고 있다.

도드람 사업체와 주요현황.
도드람 사업체와 주요현황.

조합원 수준 높아···논쟁땐 ‘여·야’ 합의후 ‘한목소리’
브랜드 1위 비결, ‘맨파워’ 중시

최근 협동조합들이 힘을 잃고 있다. 미국에서는 수많은 협동조합들이 문을 닫았으며 협동조합 천국인 유럽에서도 경쟁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인수와 합병이 활발하다. 협동조합의 한계는 근본적으로 협의문화와 뒤늦은 의사결정구조다. 이로 인해 시장변화에 따른 대응이 늦어지고 수많은 이해관계로 인해 투자와 사업추진에 대한 중지를 모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도드람은 협동조합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을까. 도드람은 협동조합과 주식회사의 장점을 융합하는 방식의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경쟁이 필요한 부분에 자회사를 두어 경쟁을 촉진하고 조합원 의견은 조합이 대신 자회사와 협상함으로써 교섭력을 높인다. 이로써 조합은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조합의 철학과도 배치되지 않고 사업을 운용할 수 있다.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이 같이 운용하는 데는 조합원의 관심과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도드람 조합원들은 수준이 높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떤 사업에 대한 찬반이 오갈 때는 극렬히 논쟁하기도 하지만 조합 의견이 모아진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업에 힘을 실어준다. 지금까지 도드람이 계열화를 확장할 수 있었던 데는 조합원들의 역량과 철학이 한몫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사람을 중시하는 문화도 도드람의 힘이다. 이환원 전 농협사료 대표이사를 도드람의 상임이사로 앉힌 파격적인 인재영입이 대표적인 예다. 도드람은 신입사원도 100% 공채로만 뽑으면서 맨파워를 중시하는 문화를 만들고 있으며 말단 직원의 아이디어 제안도 소홀히 넘기지 않는다. 매년 전 직원을 대상으로 아이디어 공모전을 실시하고 있으며 최근 직원이 제안한 도드람 고속도로 휴게소 아이디어도 사업성 검토중이다. 직원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도드람을 이끄는 핵심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협동이라는 대의만 가지고 시장경쟁체제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경쟁과 협력이라는 어찌보면 상충되는 철학을 절묘하게 이식하는 작업이 국내에 협동조합이 뿌리내릴 수 있는 핵심 포인트가 아닐까. 도드람의 실험은 농민이 만드는 경쟁과 협동의 조화를 통해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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