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도매인 재무제표⑤-에필로그] "공유지의 비극을 끝내야 한다"
[시장도매인 재무제표⑤-에필로그] "공유지의 비극을 끝내야 한다"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0.01.09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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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도매인 설계자 김완배 교수의 기억

글 싣는 순서

[시장도매인 재무제표①-프롤로그]
쇼룸으로 진화하는 대형마트···변화하는 유통환경 도매시장은 어떤 옷을 입을까

[시장도매인 재무제표②-강서농산물도매시장]
도매시장 발전 견인 시장도매인 성장률 '쑥쑥'

[시장도매인 재무제표③-농민조합]
"깜깜이? 천만에~ 우리가 한다"...농민 조합이 지분 참여한 시장도매인 서울NH청과(주)

[시장도매인 재무제표④-진단]
35년 유통맨 曰 "도매시장이 청개구리처럼 울고 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공채 1기 노계호 강서지사장

[시장도매인 재무제표⑤-에필로그]
"공유지의 비극을 끝내야 한다"

 


시장도매인제는 강서도매시장에 최초 도입돼 매년 성장하고 있지만 중앙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의 도입은 수십 년간 논의만 이뤄질 뿐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김완배 교수는 도매시장 개혁의 첫 단추로 '시장도매인 도입'을 꼽는다. 시장도매인제도의 설계자로 불리는 김 교수는 도매시장이 변하지 않는 원인으로 '도매시장법인과 결탁한 소수 농민', '출세에 매몰된 농식품부 공무원의 방관' 두 가지를 꼽았다. 사진은 강서농산물도매시장 시장도매인시장 전경.

시장도매인제는 강서도매시장에 최초 도입돼 매년 성장하고 있지만 중앙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의 도입은 수십 년간 논의만 이뤄질 뿐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김완배 교수는 도매시장 개혁의 첫 단추로 중앙도매시장의 '시장도매인 도입'을 꼽는다. 시장도매인제도의 설계자로 불리는 김 교수는 도매시장이 변하지 않는 원인으로 '도매시장법인과 결탁한 소수 농민', '출세에 매몰된 농식품부 공무원의 방관' 두 가지를 꼽았다. 사진은 강서농산물도매시장 시장도매인시장 전경.

[팜인사이트=박현욱 기자]

김완배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강서 농산물도매시장이 개장될 당시 시장도매인 도입에 혁혁한 공을 세운 학자다. 당시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를 설득해 시장도매인을 도입하는 한편 시장도매인이 성장하고 안정된 거래 제도의 틀을 갖추는 데 측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 교수는 1998년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농산물유통개혁위원회 공동위원장, 1999년에는 농림수산식품부 농산물도매시장 중앙평가위원을 역임한 도매시장 개혁파 원로 중 하나로 꼽힌다.
김완배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강서 농산물도매시장이 개장될 당시 시장도매인 도입에 혁혁한 공을 세운 학자다. 당시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를 설득해 시장도매인을 도입하는 한편 시장도매인이 성장하고 안정된 거래 제도의 틀을 갖추는 데 측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 교수는 1998년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농산물유통개혁위원회 공동위원장, 1999년에는 농림수산식품부 농산물도매시장 중앙평가위원을 역임한 도매시장 개혁파 원로 중 하나로 꼽힌다.

"시장도매인 도입과 관련된 이야기는 20년 전부터 논의됐을 정도로 오랜 역사가 있어요. 국내 농산물 유통 문제의 핵심은 비용이 많이 발생하는 구조에서 기인됩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가 시장도매인제였고 그렇기 때문에 오랜 세월 논의가 끊이질 않았죠."

농산물 가격 칼질 경매제 큰 역할했지만
가격 불안·물류비·신선도 등 문제점 파생

국내 최대 농산물도매시장인 가락시장은 1985년 개장한다. 당시 용산시장에서 영업을 하고 있던 일부 상인들은 농산물 가격 정보를 독점해 큰 이득을 취했다. 소위 '농산물 가격 칼질'이 난립했던 당시 유통 상황에서는 농민들을 보호할 장치가 필요했다. 가락시장 개장에 맞춰 도매시장에 경매제가 도입, 가격이 실시간으로 공개되면서 정보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현재의 도매시장 경매제는 큰 역할을 한다. 유통인들이 독점했던 정보가 농민들에게 공개되면서 소위 '칼질'은 조금씩 자취를 감춘다.

"경매제가 정보의 독점을 막아주는 데 역할을 하면서 농산물 유통이 그나마 투명해졌어요. 하지만 단점이 튀어나오기 시작했죠. 도매시장에 농산물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생기는 가격의 불안전성, 경매장을 거쳐야 하는데 따른 과다한 물류비용, 유통기간이 늘어나면서 생기는 신선도 하락 등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게 된 것이죠."
 

2000년대 시장도매인 도입 가시화
국내 최초 경매·시장도매인 실험

2000년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에 시장도매인 도입을 골자로 한 내용이 추가돼 개정되면서 시장도매인 도입이 가시화됐다. 시장도매인이란 농산물의 매수와 수탁·매매중개까지 모두 할 수 있는 유통인으로 이들은 경매를 거치지 않아 유통단계가 한 단계 절약되는 거래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시장도매인 도입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경매제를 고수하는 도매시장법인들의 반대가 엄청났죠. 당시 어떤 논의가 있었냐면 (시장도매인을) 2001년부터 지방도매시장에 도입하고 2005년부터 중앙도매시장에 도입하기로 타협이 이뤄졌거든요. 하지만 법인들의 반대가 심했고 일단 지방도매시장에 도입해보자는 취지로 2005년 지방도매시장인 강서시장이 개장하면서 경매제와 시장도매인을 병행해 도입하게 됐어요. 당시 도입 배경은 두 제도를 운용해 경쟁시켜보면 출하자가 유리한 곳으로 출하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시장도매인 정산 사고 15년간 1건
정산회사 설립으로 출하자 보호

국내 최초로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는 하나의 도매시장에 두 가지 방식의 거래 제도가 도입됐다. 시장도매인제도가 쉽게 정착된 것은 아니다. 시장도매인 중 하나인 백화청과의 폐업 사건으로 출하자가 돈을 떼이는 사건이 발생, 출하자 보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정산회사가 설립되면서 시장도매인의 단점을 보완해 나갔다.

"(시장도매인이 운영되는) 15년 동안 1번의 정산 사고가 있었어요. 백화 농산이라고 정산을 제대로 못해서 출하자들이 손해 보는 일이 생겼거든요. 다른 시장도매인들이 합심해 피해를 본 출하자에게 변상을 해줬고, 차후 정산회사가 설립되면서 정산 사고 위험이 사라졌죠. 그런데 아직도 경매제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그 문제를 거론하면서 시장도매인에 딴지를 걸어요."
 

15년간 통계가 시장도매인 증명
도매시장법인 정가·수의매매 안 맞아

시장도매인의 아킬레스건이었던 정산 문제가 해결되면서 시장도매인은 대금 정산을 불안해하던 출하자들의 선택을 받게 된다. 2005년 개장 후 지속적으로 몸집을 불려온 시장도매인은 강서도매시장에서 농산물 거래량, 거래금액 모두 경매제를 훌쩍 뛰어넘는다.

"일종의 실험장이었던 강서시장에서 두 제도의 변화가 보이죠. 점포 면적은 경매제의 1/3인 시장도매인이 거래 물량과 금액이 경매제를 웃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가성비가 뛰어나다는 것, 농민들도 시장도매인과의 거래를 선호한다는 것. 15년의 통계가 증명해주고 있잖아요."

정부에서도 경매라는 거래 방식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도매시장법인에 정가·수의매매를 이식하기도 했다. 정가·수의매매란 도매시장법인이 출하자와 중도매인을 연결해주는 거래 방식으로 원칙적으로 경매가 필요 없다. 다만 이를 중개할 인력이 추가로 필요, 도매시장법인 입장에서는 비용 소요가 불가피하다. 때문에 정가·수의매매 거래가 허용된 지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거래 비중 20%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큰 실수한 거예요. 정가·수의매매는 도매시장법인에게는 리스크죠. 경매는 수수료를 챙기고 별다른 리스크가 없잖아요. 당연히 도매시장법인 입장에서는 두 가지 거래 방식이 있다면 정가수의매매를 안 하죠. 농식품부가 도매시장법인에게 허용해 준 것, 즉 주체를 혼동했기 때문에 발생한 잘못이죠. 원래 정가·수의매매는 시장도매인이 하는 게 맞아요."
 

도매시장법인과 결탁한 소수 농민
출세에 매몰된 공무원 사회가 개혁 장벽

중앙도매시장에 시장도매인 도입과 관련해 출하자인 농민의 의견은 둘로 나뉜다. 특히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김완배 교수는 시장도매인이 도입되기 힘든 이유로 도매시장법인과 결탁한 소수 농민과 출세의 디딤돌로 전락한 농림축산식품부 공무원 사회 등 2가지를 꼽았다.

"지금의 경매제에서는 도매시장법인에게 지원을 받아온 소수 농민들이 기득권이거든요. 이들이 도매시장법인들과 결탁해 목소리를 내고 마치 농민 전체가 시장도매인도입을 반대하는 양 여론을 호도하고 있어요. 또 하나는 정부가 문제인데요. 사실 정부가 시장도매인 도입에 힘을 실어줘야 하는데 안 하고 있거든요. 왜 그럴까요. 논란을 만들기 싫거든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불거지고 시끄럽게 되면 승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저는 시장도매인 도입 논란은 소수 농민의 이기심, 출세에만 급급한 농식품부의 방관이 낳은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박현욱 기자(phw@faeri.kr)
 


특집 갈무리

기업을 평가할 때 우리는 한 가지 서류에 주목한다. 재무제표다. 재무제표를 보면 기업의 현재 가치와 미래가 보인다. 본지가 5부작에 걸쳐 진행한 시장도매인 재무제표 특집은 급변하는 유통환경에 시장도매인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미래 도매시장에 걸맞은 거래 제도로 발전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며 답이다. 취재를 통해 다양한 의견이 도출되기도 했지만 모든 취재원의 공통된 대답은 두 가지로 압축됐다.
 '도매시장에는 개혁이 필요하다', '급변하는 유통환경에 맞도록 도매시장은 대응능력을 키워야 한다' 등이다.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해결하기 위한 청사진에 반드시 시장도매인이 필요조건이 될 필요는 없다. 정답도 아니다. 하지만 산지와 소비지가 카멜레온처럼 변하고 있다면 그에 걸맞은 옷을 찾고 변화해야 한다. 산지와 소비지는 이제 더 이상 같은 옷을 고집하지 않는다.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 소득이 오르자 수많은 욕구가 도매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욕구에 걸맞은 다양한 개성을 반영할 수 있는 옷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유통 전문가들이 농산물 도매시장에 대한 연구를 쏟아냈지만 여전히 도매시장은 관행에 매몰된 기성복만 고집하고 있다.
농산물도매시장은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다. 도매시장에서 활동하는 유통인들은 그 수혜를 입고 일정 부분 공익적 역할도 요구받는다. 국민들의 먹거리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즉 도매시장은 모든 국민이 사용하는 도로와 공원과 같이 공공재 혹은 공유지의 성격을 가진다. 그에 걸맞은 적절한 제도와 규제가 필요한 이유다. 일부 기득권 이익에 매몰되고 정부가 방관하는 사이 공유지가 황폐화되는 사례를 우리는 수없이 목격해 왔다.
이제 공유지의 비극을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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