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획-종자산업 미래는(2)]"농업의 반도체 종자, 전 세계는 씨앗 전쟁 중"
[특집기획-종자산업 미래는(2)]"농업의 반도체 종자, 전 세계는 씨앗 전쟁 중"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0.01.09 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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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호 양배추 박사가 말하는 종자산업 A부터 Z까지
황병호 아시아종묘 기술이사가 실험실에서 작물 발아 모습을 관찰하고 있다.
황병호 아시아종묘 기술이사가 실험실에서 작물 발아 모습을 관찰하고 있다.

[팜인사이트=박현욱 기자]

"결혼을 얼마나 빨리 그리고 많이 시키느냐가 육종학의 성공 비결이죠."

양배추 종자를 연구하는 황병호 박사는 '종자산업=확률 게임'이라고 말한다. 소위 남녀를 매칭 시켜주는 '결혼정보 회사'와 같은 역할을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잘하느냐가 육종의 성패를 가늠하는 잣대란 뜻이다.

좋은 엄마, 아빠를 선발해 좋은 아이를 낳는 지극히 단순하고 명쾌한 진리가 수백 년 동안 좋은 씨앗을 만들기 위한 육종의 방법으로 사용됐다. 멘델이 유전법칙을 정립하면서 육종학은 폭발적인 성장을 해왔지만 아직까지 고전적인 방법은 그대로 통용된다.

유전자 가위, GMO 등 첨단 기술이 신의 영역을 넘나들며 발전하고 있지만 인류의 먹거리 산업은 여전히 '육종 노가다'가 필요하다. 수십 년간 배추과 품종을 개발한 황병호 아시아종묘 기술이사는 '품종 소비시대'를 꿈꾸는 양배추 박사다.
 

"양배추 엄마, 배추 아빠, 유채 아이를 낳다"
우장춘 박사의 진가 '씨 없는 수박' 아니다

우장춘 박사는 씨 없는 수박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진짜 씨 없는 수박은 일본 교토대학교의 기하라 히토시 박사가 만들었다. 우 박사는 이보다 더 근본적인 영역을 파고들었다. 씨 없는 수박을 만들 수 있는 이론의 체계를 잡은 것이다.

 1936년 '배추 속 식물에 관한 게놈 분석'이라는 논문을 발표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우 박사는 종은 달라도 같은 속(屬, genus)의 식물이 만나면 전혀 새로운 식물이 탄생한다는 사실을 규명, 논문에 담았다. 쉽게 말해 배추와 양배추 등 같은 속의 식물을 교배하면 유채와 같은 새로운 식물이 탄생하는 식이다.

"우장춘 박사의 진짜 위대함은 DNA 분석 기술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염색체만 관찰해 작물들의 원형 관계를 과학의 영역으로 진입시키고 해석한 것이지요. 보통 브라시카(배추속 식물, Brassica) 작물들은 노란색 열십자 모양의 꽃이 핀다고 해서 '십자화'라 불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브라시카 패밀리(family, 科)가 잘 자라는 환경인 탓에 개발이 용이했죠. 육종 선배들의 위대함은 씨앗에서 가능성을 봤고 집요하게 연구했다는 점입니다."
 

일본 경제 보복 종자 주권 심각성 알려
종자 신품종 빛 보는데 최소 10년

황병호 기술이사.
황병호 기술이사.

일본은 종자 선진국으로 꼽힌다. 특히 우리나라는 과거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일본에서 수입되는 다양한 종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1960년대 일본에서 수입된 종자는 지금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다. 양파가 대표적이다. 아무리 좋은 종자가 개발돼도 인기 많은 종자가 되기 위해서는 종자 전·후방 산업에서 받아들여야 가능하다. 일본 종자가 아직까지 득세하는 이유다.

"최근 일본과의 경제 무역 전쟁은 종자에 대한 심각성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죠.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양파도 일본 품종이라는 게 최근에서야 알려졌잖아요. 종자 주권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좋은 종자를 개발했다고 해서 단숨에 종자가 잘 팔리진 않아요. 시간이 필요하죠."

종자 전후방 산업은 견고하다. 농산물 유통시스템과도 긴밀한 연관을 맺는다. 종자가 잘 팔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체들에게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수십 년이 넘게 고착화된 국내 농산물 유통 체계에서 종자 신품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농우바이오, 아시아종묘 등 국내 종자기업들이 일본 못지않은 좋은 품종을 보유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내에서 어깨를 펴지 못하는 이유다.
 

신품종 마케팅 농민·유통인 설득 필요
국내 종자기업 해외 신시장 겨냥

"양배추를 예를 들어볼까요. 불과 7~8년 전에는 양배추 99% 이상이 일본 종자였어요. 50년 넘게 같은 품종을 키워온 농민, 이를 유통한 유통인이 쉽게 종자를 바꿀 수 있을까요. 저희 같은 종자 기업이 한번 키워보라고 사정사정해야 조금씩 심어보는 정도입니다. 농민과 부딪히고 유통인을 설득하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한 셈이죠. 그나마 지금은 국내산 양배추 품종이 국내 시장의 15% 정도 점유하고 있어요."

때문에 국내 종자기업은 내수시장을 겨냥하기 보다 해외 시장을 노크, 수출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국제 무대에서의 싸움이 더 용이하다는 판단에서다. 농우바이오의 고추, 아시아종묘의 양배추는 세계무대에서 명함이라도 내놓을만한 수준은 됐다는 게 황 박사의 귀띔이다.
 

인도 국내 양배추 종자 점유율 ‘30%’
아시아종묘 양배추 품종만 52가지 보유

양배추 종자는 아시아종묘의 역작이다. 양배추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장영실 상을 수상했고 '윈스톰' 양배추로 대통령 상까지 거머쥐었다.

아시아종묘의 '베이스볼(Base ball)' 양배추는 인도 전체 시장에서 점유율이 30%나 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오래전부터 배추과 품종에 대한 노하우를 차근차근 쌓아온 선배 육종가 덕이다.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공통적으로 많이 키우는 작물에 집중해야 됩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키우는 채소가 토마토, 고추, 수박·멜론과 같은 박과 채소, 양배추와 양파 등입니다. 심지 않는 국가가 없죠. 때문에 아시아종묘에서는 양배추 품종 개발에 집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양배추는 20위 권 밖의 채소지만 전 세계 시장에서는 가장 가능성 있는 품종 중 하나입니다."

품종 수출은 각 나라의 식문화와 연관된다. 국내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양배추는 약간 납작한(Flat) 타입이다. 인도에서는 공(ball) 모양의 동그란 모양이 인기가 좋다. 모양이 바뀌면 맛도 다를 거라는 선입관 때문이다. 때문에 아시아종묘에서는 다양한 양배추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다. 국내 시장을 책임지는 '대박나', '윈스톰'을 비롯해 인도 시장에서 인기 있는 '베이스볼' 등 양배추 품종 가짓수만 해도 52가지나 된다. 아시아종묘에서 수출로 거둬들이는 매출 절반의 일등공신은 양배추라는 게 아시아종묘 측의 설명이다.
 

아시아종묘 실험실 조직배양 모습.
아시아종묘 실험실 조직배양 모습.


첨단 기술이 육종 기간 단축
세포배양기술 구현 국내 기업 손꼽아

"사실 육종가는 중매쟁이죠.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양질의 F1 하이브리드를 얻어야 하거든요. 양배추의 경우 양질의 엄마, 아빠를 만드는데 6~7년이라는 기간이 소요되니 중매도 잘해야 하지만 선별할 수 있는 풀(pool)도 많아야 합니다. 이를 유전 자원이라고 하는데 아시아종묘에서는 20만 점 이상의 유전 자원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기술 발전이 육종 기간도 크게 단축시켰다. 엄마 아빠 순계를 만드는 작업을 꽃가루가 만들어지기 전 세포배양 기술을 활용해 3~4년을 줄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배해서 자식 종자를 만드는데 1년, 해외 시험포 구축 현장 적용에 1년을 보내고 나면 아무리 빨라도 5~6년은 소요된다는 게 황 박사의 전언이다.

"육종은 확률 게임입니다. 세대 진전이 빨리 일어나야 좋은 유전자를 확보할 수 있죠. 이런 기술들은 국내 종자기업에서 쉽게 도전하기 힘듭니다. 국내에서 손꼽는 종자기업 아니면 기술 축적이나 인력을 구하는데도 애를 먹죠. 또한 쉽게 결실을 볼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보니 장기적인 지원을 할 수 있는 국가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GSP 사업, 종자산업 인큐베이팅 역할 톡톡
종자 가격 ‘20원’ 불과 부가가치는 ‘200배’

정부에서는 지난 2013년 골든시드프로젝트(GSP)사업을 시작했다. 글로벌 종자 강국 도약과 종자 산업 기반 구축을 위한 국가 전략형 종자 R&BD 사업을 만들겠다는 게 GSP 사업의 취지다. 2022년이면 대부분의 사업이 마무리되지만 일각에서는 큰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업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종자 전문가 대부분은 GSP 사업이 종자 산업의 인큐베이팅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역설하며 포스트(Post) GSP가 시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은 브로콜리 씨앗 강국입니다. 일본의 종자회사가 전 세계 브로콜리 종자의 약 60~70%를 공급할 정도로 점유율이 높죠. 우리가 브로콜리 종자 시험포 10동을 보유하고 있다면 일본은 100~200개를 소유하면서 브로콜리만 시험할 정도의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사카다'라는 일본의 유명 종자 회사는 브로콜리에만 집중해 전 세계를 석권했습니다. 종자가 미래의 성장 동력이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실제로 종자의 부가가치는 상상을 초월해요. 씨앗 하나의 가격이 20원에 불과하지만 생산물은 100~200배를 훌쩍 뛰어넘죠. 종자 분야에 국민적인 관심과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작물 특성에 따라 번호가 라벨링 되어 있는 시험 포장 모습.
작물 특성에 따라 번호가 라벨링 되어 있는 시험 포장 모습.


종자 메디컬 산업과 결합
“농산물도 품종 소비시대 올 것”

황 박사는 국내 종자산업이 발전하면 소비자들도 바뀔 거라 단언한다. 최근 종자산업은 메디컬 산업과 융합해 건강 기능성 품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모든 채소에 들어 있는 기능성 함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밥만 먹으면 건강을 챙길 수 있도록 종자부터 디자인하기 시작한 것이다. 혈당 강하에 좋은 미인풋고추 품종이 대표적인 예다.

"농업의 반도체가 종자산업입니다. 우리는 갤럭시, 아이폰은 종류별로 꿰고 있고 구매 시 모델을 꼼꼼히 따져보잖아요. '갤럭시 S10' 주세요 하듯 양배추 '윈스톰' 주세요 하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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