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6년 전 오늘 - 축산 소식 300] 각 섬에 기르는 소를 백성에게 나누어 주고 송아지를 거두는 사업을 시행하였다
[586년 전 오늘 - 축산 소식 300] 각 섬에 기르는 소를 백성에게 나누어 주고 송아지를 거두는 사업을 시행하였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20.02.1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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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14호, 양력 : 2월 17일, 음력 : 1월 24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 왕조실록에 소(牛) 관한 기록은 500여건으로 각 임금대별로 다양한 기사가 실려 있으나, 세종(世宗) 대에 80여건의 기록이 있어 가장 많은 내용이 다루어지고 있으며, 그 내용도 제례에 활용하는 법부터, 소를 증식시키는 정책, 농우(農牛)로의 활용, 도살 금지 대책은 물론 중국과의 교역 등 다양한 내용이 다루어지고 있는데, 그중에 중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즉위 2년에는 여러 해 동안 내린 임금의 명령인 판지(判旨)를 한양이나 지방 관리들이 받들어 시행하지 않아 더욱 명백히 거행하도록 한 내용 중에 무식한 사람이 농우(農牛)를 갖다가 몽고족인 달단(韃靼)이나 화척(禾尺)에게 팔았으면, 판 자나 사는 자를 모두 소를 몰래 잡아 먹는 죄에 처하도록 하였으며, 7년에는 전구서(典廐署)의 보고에 의거하여, 대소(大小) 제향에 쓸 짐승을 깨끗한 곳에서 기르는데, 담을 쌓고 문을 달아 다른 짐승들과 섞이지 않게 하여 깨끗하고 살찌게 하고 있으나, 막상 짐승을 바칠 때에는 소에 싣기도 하고, 사람이 지기도 하여 깨끗하지 못하고 더럽게 되어 공경을 드리는 뜻에 어긋나니, 선공감(繕工監)에서 상자가 장치된 수레를 만들어 싣기 어려운 제사소(祭牛) 외에는 염소나 양이나 돼지는 수레로 실어 바치게 하였습니다.

13년에는 병조에서 보고하기를, 소는 국가에 있어 그 용도가 심히 큰 것이므로 생곡초(生穀草)를 납부하는 경기의 각 고을을 제외하고, 유수(留守)·대도호부·목(牧) 등의 고을에는 암소(牸牛) 6두(頭)와 황소(雄牛) 3두를, 도호부와 지군사 등 고을에는 암소 4두와 황소 2두를, 현령(縣令)·현감(縣監) 등의 고을에는 암소 2두와 황소 1두를 배정하여 국고의 요두(料豆)로 길러 번식하게 하고 회계(會計)에 실려 사복시(司僕寺)로 하여금 이를 관장하게 하였으나, 각 고을에서 나누어 기르게 되면 기르는 사이에 백성들이 그 폐해를 받을 것이니, 각도의 목장(牧場)을 설치할 만한 곳을 물색해 놓고 소를 교역하여 놓아 길러서 국가 수용에도 충당하고 민간과의 교환도 들어주게 하도록 하였습니다.

14년에는 중국에 가는 사신인 사은사(謝恩使)가 가는 길에 주청할 내용을 임금이 언급하면서,물소 같은 것은 진기한 새 혹은 기이한 짐승이라 하여 주청하는 것이 부당(不當)하다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이 동물은 기이한 짐승이 아니고 밭을 갈며 수레를 끄는 등 소용되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것이나, 지금 명나라 조정에서 요구하는 소 1만 필을 만약 마련하지 못하고 면제하여 주기를 주청하면서 물소를 달라고 주청할 수는 없을 것이니, 승문원 제조(承文院提調)에게 의논하여 보고하도록 하였습니다.

16년에는 제주에서 우마를 도살한 죄에 대한 처벌문제에 관해 병조에서 보고하기를, 제주(濟州)는 땅이 좁고 인구는 많아, 생활이 간고(艱苦)하여, 소와 말을 도살하여 생계의 바탕으로 삼는 자가 자못 많고, 장사치들이 왕래하면서 우·마피(牛馬皮)를 무역하여 생활을 이어가는 자도 많아, 도살이 갑절로 많아지고 번식 하는 수효는 적게 되니, 이미 도살자로 발견된 사람은 모두 찾아내어 육지로 내보내게 하고, 육지에 주인이 있는 사천(私賤)은 각각 그 주인에게 보내고, 평민과 공천(公賤)은 땅이 넓고 백성이 드문 평안도 해변 각 고을로 옮겨 안업(安業)하게 하며, 제주에 사는 천구(賤口)는 범한 바의 도수(度數)를 따라 율문에 의하여 과죄하도록 한 바도 있습니다.

21년에는 예조에서 전구서에서 1년 동안 제수로 소용되는 소를 조달하는 방안을 보고하면서, 종묘제 때의 검은 송아지 5두(頭), 영녕전제(永寧殿祭) 때의 검은 송아지 2두, 사직제 때의 검은 큰 소 3두, 문선왕 석전제(文宣王釋奠祭) 때의 큰 황소 2두, 문소전 별제(文昭殿別祭) 때의 누런 송아지 2두를 매양 봄·가을에 점우 별감(點牛別監)이 선택해 올렸으나, 이제 점우 별감을 혁파하였으니, 수원부(水原府) 홍원곶(弘原串)과 양성현(陽城縣) 괴태길곶(槐台吉串)에 방목하는 소에서 수에 따라 골라 보내도록 하겠다고 하자 따른 바가 있습니다.

28년에는 호조(戶曹)의 정문(呈文)에 의거하여 흉년이 들은 경상도에 벼씨 19만 5천 2백 석과 황두(黃豆) 종자 3만 6천 석과 잡곡 종자 6천 1백 석을, 전라도에 소사료(牛料) 콩 2만 석을, 평안도에 소사료(牛料) 콩 1만 석, 전라도의 구식(口食) 5만 석, 충청도에 구식 7만 6천 4백 석, 경기도 각 고을에는 올곡식(早穀) 종자 1만 3천 5백 석과 평안도 인민의 구량(口糧)인 잡곡 4만 2천 석, 함길도의 귀맥(鬼麥) 종자 1백 80석과 소사료(牛料) 콩 3천 석을 제급(題給)한바가 있습니다.

29년에는 소와 군마 절도범을 엄중히 처벌하기 위해 형조(刑曹)의 공문에 의거하여, 처음으로 소나 말을 도둑질하여 죽인 자는 결장(決杖) 1백을 하고 오른팔 아랫마디에 ‘도살우(盜殺牛)’나, ‘도살마(盜殺馬)’라는 세 글자를 자자(刺字)하고 동거하는 처자와 함께 거제(巨濟)나 남해(南海)나 진도(珍島)로 쫓아내고, 재범(再犯)한 자는 교형(絞刑)에 처하게 하며, 처음으로 소나 말을 도둑질하되 죽이지 아니한 자는 결장(決杖) 1백을 하고 오른팔 아랫마디에 ‘도마(盜馬)’나 ‘도우(盜牛)’라는 두 글자를 자자하고, 재범한 자는 결장(決杖) 1백을 하고 왼팔 아랫마디에 자자하고 동거하는 처자와 함께 거제(巨濟)나 남해(南海)나 진도(珍島)로 쫓아내기로 하는데, 모두 수범이나 종범을 구별하지 않으며, 사전(赦前)이나 사후(赦後)임을 물론하고 시행하도록 하였습니다.

586년 전 오늘의 실록에는 병조(兵曹)의 보고에 따라, 각 섬에 들여보내서 방목해 기르고 있는 소를 백성들의 자원에 따라 나누어 주고, 만 3년에 송아지 1마리씩을 거두며, 그 나머지는 백성들로 하여금 임의 사용하게 하되, 혹 고실(故失)한 것이 있더라도 이를 징수하지 말며, 다만 피육(皮肉)만을 거두게 하고, 만약 자원자가 없으면 민간에 매각하게 하고 있습니다.

 

■세종실록 63권, 세종 16년 1월 24일 임인 기사 1434년 명 선덕(宣德) 9년

각 섬에서 기르고 있는 소를 백성에게 나누어 주든지 매각할 것을 병조에서 건의하다

병조에서 아뢰기를,

"각 섬에 들여보내서 방목해 기르고 있는 소를 백성들의 자원에 따라 나누어 주고, 만 3년에 송아지 1마리씩을 거두고, 그 나머지는 백성들로 하여금 임의 사용하게 하며, 혹 고실(故失)한 것이 있더라도 이를 징수하지 말고, 다만 피육(皮肉)만을 거두게 하며, 만약 자원자가 없으면 민간에 매각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20책 63권 1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