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8년 전 오늘 - 축산 소식18] 조선시대에는 한우(韓牛)라는 소가 없었다.
[558년 전 오늘 - 축산 소식18] 조선시대에는 한우(韓牛)라는 소가 없었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8.07.2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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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34호, 양력 : 7월 25일, 음력 : 6월13일

한우(韓牛)는 유럽원우(Bos primigenius) 와 인도원우(Bos indicus)의 혼혈종에서 기원하여 북부 중국· 만주등을 거쳐 한반도에 옮겨와 오늘에 이르러 중국의 황우(黃牛)와는 다르지만 일본의 화우(和牛)와는 같은 계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에 대한 기록은 수소를 특(特), 암소를 고(牯)라고 하였으며 송아지는 갓난 것은 독(犢), 두 살짜리는 시(㸬), 세 살짜리는 삼(犙), 네살짜리는 사(㸺)라 하고 한 가지 색으로 된 것은 전(牷)이라 표기하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한우(韓牛)라는 표기는 한번도 쓰지 않았으나 소(牛)에 대한 기사는 500여건, 농우(農牛) 150여건, 경우(耕牛), 황우(黃牛)), 흑우(黑牛) 등의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제시대 소에 대한 기록은 생우(生牛), 황우(黃牛), 황소, 조선우(朝鮮牛)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으며, 해방이후에는 축우(畜牛), 역우(役牛)라는 표기를 사용하다가 1950년대 말에 한우(韓牛)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정부 공식 용어로는 1963년에 축산법이 제정되고 이듬해 2월 종축 및 후보종축 심사기준(농림부고시 제 865호)이 공포되면서 한우(韓牛)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558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군역(軍役)에 응한 사람들에 대해 농우(農牛)가 없으면 국가 목장의 말을 지원하자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세조실록 20권, 세조 6년 6월 13일 무오기사 1460년 명 천순(天順) 4

병조에서 평안·황해도에서 모집한 자들의 처치에 관해 보고 하다

병조(兵曹)에서 평안도·황해도 도순찰사(都巡察使)의 계본(啓本)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 1. 평안도(平安道)에서 스스로 모집(募集)에 응한 사람들이 쓰는 수철(水鐵)은 농기(農器)를 주조(鑄造)하여 만들 것이니, 청컨대 본도(本道)의 수철장(水鐵匠)의 세금을 면제하고 그 철(鐵)을 거두어서 주조(鑄造)하여 주고, 그 나머지 농기(農器)는 여러 고을로 하여금 준비하여 주게 하소서.

1. 스스로 모집(募集)에 응한 사람들 가운데 만약 농우(農牛)가 있었으나 고실(故失)한 자와, 가난하여 스스로 마련할 수 없는 자는 목장(牧場)의 아마(兒馬)를 소와 바꾸어 나누어 주소서.

(중략)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7책 20권 3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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