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1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0] 조선시대에도 양봉통(養蜂筒)을 설치하여 꿀을 생산하였다.
[571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0] 조선시대에도 양봉통(養蜂筒)을 설치하여 꿀을 생산하였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8.07.28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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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36호, 양력 : 7월 27일, 음력 : 6월15일

조선시대 왕실과 중앙 각사에서 사용할 지방의 토산물을 조정에 바치는 제도를 공납(貢納)이라 하였으며, 공납은 크게 지방의 각 관에서 준비하여 납부하는 공물(貢物)과 지방장관이 왕에게 예물(禮物로 바치는 진상(進上)으로 나뉘었습니다. 이러한 공상(供上)을 담당하는 관아를 공상아문(供上衙門)이라 하여 사재감(司宰監)을 비롯한 6개 부서가 담당하였는데, 이중 각종 반찬류와 기름· · 밀랍등을 조달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한 종6품의 아문이 의영고(義盈庫)이었습니다.

조선에서 꿀(蜂蜜)은 식품이자 약으로 쓰였는데, 꿀 중에서도 석청(石淸)과 백청(白淸)을 더욱 귀하게 여겼으며, 외국 사신에게 보내는 선물, 왕실의 각전(各殿)에 진상하거나 상례(喪禮)·수연(壽宴) 때 왕실에서 하사하는 물품으로 애용되었습니다. 이러한 꿀은 자연 혹은 양봉을 통해 전국적으로 생산되어 진상되었는데, 지역을 지정하여 산이 있는 고을에 양봉통(養蜂筒)을 설치하고 양봉을 하게 하여, 청밀(淸蜜)과 황랍(黃蠟)의 납공을 분담시키기도 하였습니다. 571년전 오늘의 기사에는 더위로 인한 가뭄을 걱정하여 술과 각종 반찬류의 진상을 정지시키는 전교(傳敎)가 있었습니다.

 

■세종실록 116권, 세종 29년  6월  15일 병자 1번째기사 1447년 명 정통(正統) 12

가뭄을 근심하여 술 진상과 각도의 반찬거리 진상을 정지시키다

임금이 가뭄을 근심하여 술을 진상하지 말기를 명하고, 또 각도에서 반찬거리 진상하는 것을 정지시키었다.

태백산사고본】 37책  116권 2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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