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2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1] 왕십리 살곶이 목장에 호랑이가 나타나 말을 상하게 하였다.
[492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1] 왕십리 살곶이 목장에 호랑이가 나타나 말을 상하게 하였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8.07.30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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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37호, 양력 : 7월30일, 음력 : 6월18일

조선시대 호랑이로 인한 피해는 막심하여 건국 초기 한 해 겨울에만 경상도에서 수백 명의 인명을 앗아간 보고가 있었고, 임금이 정사(政事)를 돌보는 한양의 근정전(勤政殿) 뜰에 한 밤중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호랑이의 출현은 인명 피해뿐만이 아니라 소나 말등과 같은 가축의 피해도 일으켜 조정에서는 민생안정 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였고, 특히 마장(馬場)에서의 피해는 군사력의 근간인 말 사육 기반을 손상하여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호랑이와 표범을 전문적으로 잡는 임무를 부여한 특수한 부대인 착호군(捉虎軍)을 병조(兵曹) 산하에 중앙과 지방에 조직하여 활용하였으며, 각도의 목장에서는 우마를 사육하는 일을 맡고 있는 목자(牧子)들로 편성된 목마군(牧馬軍)을 운영하여 목장의 보호는 물론 호랑이 등 맹수의 구축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습니다. 서울의 착호군은 중앙군의 핵심 조직인 번상군(番上軍)의 갑사(甲士)들을 별도로 착호갑사(捉虎甲士)로 선발하였는데 그만큼 서울 인근의 호환(虎患)이 체제 안정을 위협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호랑이를 잡으면 포상을 하는 것이 원칙으로, 수령이 1년에 열 마리 이상 잡으면 품계를 올려 주었고, 다섯 마리를 잡았는데 화살과 창으로 먼저 명중시킨 자는 2품계 이상 올려 주었으며, 만약 향리(鄕吏)역리(驛吏)·천인(賤人)이면 면포 60필을 주었습니다. 492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왕실목장인 왕십리 살곶이 목장에 호랑이가 나타나 말들이 상하자 군졸들을 동원하여 잡도록 하는 하명(下命)이 있었습니다.

 

■중종실록 57권, 중종 21년 6월 18일 기사 기사 1526년 명 가정(嘉靖)  5

사복시 제조가 호랑이가 살곶이 목장에 들어와 말들을 상하게 한 것을 보고하다

사복시 제조(司僕寺提調)가 아뢰기를,

"어제 호랑이가 살곶이 목장(牧場)에 들어와서 말들을 상하게 했으니 속히 몰아내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그렇게 하라. 삭장(槊場)이 무너진 데다가 빗물이 이러하니 호랑이를 잡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몰아냈다가 군졸이 물러나면 다시 들어올까 염려되니 며칠 간 기일을 정해서 끝까지 추격하여 잡도록 하라. 또 품계가 높은 재상을 대장으로 임명할 일로 병조에 말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9책 57권 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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