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트렌드가 정육점을 바꾸다] "카페인 줄 알고 들어갔더니 정육점?"
[소비 트렌드가 정육점을 바꾸다] "카페인 줄 알고 들어갔더니 정육점?"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0.02.26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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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한우 숙성 정육점 '숙성길'
프리미엄 정육점 숙성길 매장 내부 모습.
프리미엄 정육점 숙성길 매장 내부 모습.

[팜인사이트=박현욱 기자] 서울특별시 광진구에는 특별한 정육점이 있다. 매장에 들어서면 커피를 마셔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펼쳐지고 깨끗한 매장 위생상태는 마치 고급 카페를 연상시킨다. 소비자들이 종종 커피를 파느냐고 물어올 정도로 정육점에 대한 고정관념을 파괴한 이곳은 한우 숙성육과 갖가지 육가공품을 파는 신개념 정육점이다. 지난해 프리미엄 정육점 '숙성길'을 오픈한 우형곤 대표는 숙성육과 다양한 육가공품을 선보이며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고기만 파는' 일선 정육점과는 이미지부터 다른 '숙성길'은 소비 트렌드 변화에 발맞춰 고기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기업 때려치우고 밑바닥부터
정육점에도 새로운 경영 전략 필요

26살 청년기의 우 대표는 롯데슈퍼사업본부로 취업해 축산 MD로 발령받고 다양한 육류를 취급했다. 본사에 들어가기 전 1년간 매장 경험을 쌓고 본사로 들어간 그는 현장 경험의 중요성을 깨닫고 진짜 고기를 알기 위해 2년 만에 퇴사, 일선 정육점부터 다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고기를 배울 때가 행복했다"는 그는 소위 밑바닥부터 다시 고기를 배웠다.

이후 일반 정육점을 개업한 그는 고기만 가지고 마진을 남기는 장사가 얼마나 힘든지를 절실히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5년간 정육점을 운영하면서 쌓은 노하우와 고기 전문학교인 훔메마이스터슐레의 임성천 교장과의 인연으로 육가공품 제조에 관한 교육을 받으면서 정육점 경영에도 새로운 전략이 필요함을 느꼈다. 
 

우형곤 숙성길 대표.
우형곤 숙성길 대표.

육가공품에 눈떠 신개념 정육점 오픈
고기의 가치 높이기 위해 숙성 도전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 소비자들은 단순히 고기만을 원하지 않는다. 고기의 다양한 부위를 찾기 시작했고 숙성에 관심을 보였으며 청결함과 안전까지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신개념 정육점 '숙성길'을 오픈한 그는 소비 트렌드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짰다. 정육점에서 직접 소시지 등 육가공품을 만들고 한우 숙성육을 팔면서 고기의 가치를 끌어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소비자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매장에서 바로 제조한 육가공품의 신선함과 고기의 맛을 살린 기술이 접목되면서 고기의 맛에 매료된 충성 고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소비자 취향이 많이 달라졌어요. 옛날에는 집에서 조리해 먹을 수 있는 다양한 국거리 제품이 팔렸다면 지금은 구이류를 더 선호하고요. 가공품을 많이 찾아요. 집에서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양념육 매출도 점점 오르고 있고요. 정육점 찾는 소비자들의 트렌드 변화는 '특별함'과 불필요한 조리를 피하는 '편안함'을 꼽을 수 있겠죠."

"역설적이지만 소비 트렌드만 믿지 말라"
무턱대고 매장 내면 망하기 십상

우 대표는 겉모습만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숙성길'의 노하우를 묻기도 하지만 육가공품을 제조가 쉬운 길이 아니라고 귀띔했다. 신선을 중요시하는 매장인 만큼 매주 가공품을 만드는 일은 시간과 사람의 품이 들어간다. 오픈 초기 밤 12시 이전에는 퇴근하기 힘들었다고 털어놓은 우 대표는 양질의 육가공품 판매는 노력의 대가 없이는 경영하기 힘들다는 평가를 내놨다.

"많은 예비 창업주가 소비 트렌드에 맞춰 육가공품 제조에 도전하기도 하고 신개념 정육점을 오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오히려 개업 후 매장 운영 시스템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가 성공 포인트라고 볼 수 있겠죠. 또한 육가공품 판매로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 같지만 실제 운영해보면 기존 생고기 수요를 육가공품이 대체하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모든 창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우 대표는 상권분석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내 소비자들은 특히 '식'에 민감하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으면 그 길로 발길을 끊는다. 하루가 멀다하고 많은 먹거리 관련 매장들이 간판을 내리는 이유다. 우 대표는 ▲청결함 ▲고급스러운 분위기 ▲입지조건 등 3가지를 숙성길의 전략 포인트로 꼽았다.
 

다양한 육가공품과 즉석조리식품 모습.
다양한 육가공품과 즉석조리식품 모습.

프리미엄 정육점도 문턱 존재
다양한 가격대로 소비자 유혹

"숙성길의 고기들은 어떻게 보면 일반 소비자들이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식자재가 아닙니다. 보통 정육점에서 삼겹살을 많이 찾죠. 이곳 상권에는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깨끗함을 우선순위로 꼽는 소비자들이 많다고 판단했습니다.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라 상권 분석 없이는 어떤 매장을 내더라도 망하기 딱 좋죠."

프리미엄 정육점이라고 해서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싼 육류를 찾는 소비자들에게는 문턱이 생긴 셈이다. 소위 '싸 보이지 않는 외관'이 싼 가격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장벽이 된다. '숙성길'은 싼 육가공품 라인업으로 그들의 발길을 잡는다.

"보통 몇 천 원 정도 하는 소시지, 양념육 등으로 가격을 우선시하는 소비자의 시선을 끌어요. 매장 앞에 입간판으로 광고를 하죠. 그러면 소비자들도 관심을 보이거든요. 매장에 일단 들어오기만 하면 고객들은 다양한 육가공품 종류에 놀랍니다. 가격대도 저렴한 것부터 프리미엄까지 있으니 고를 수 있고요."

'숙성길'은 다품목, 소량 생산, 고품질을 추구한다. 1천만 원 상당의 독일제 숙성고는 고객들에게 보는 재미도 선사한다. 천연 재료와 일일이 손을 거쳐야 완성되는 육가공품은 대량생산체제에서는 불가능하다. 우 대표는 "소비 트렌드만 보고 창업을 자신해 섣불리 개업해서도 안되지만 시시각각 바뀌는 소비자들을 외면해서도 안된다"면서 "숙성길은 소비자 니즈에 부합하는 육가공제품을 만드는데 노력하는 한편 안정된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는데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소비자의 욕구와 현실 경영 사이 어디쯤에서 자신에게 맞는 포트폴리오를 포지셔닝 하는 게 실패를 줄이는 지름길"이라고 덧붙였다.
 

숙성고에서 숙성되고 있는 다양한 부위의 한우.
숙성고에서 숙성되고 있는 다양한 부위의 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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