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5년 전 오늘 - 축산 소식33] 500년전 경기도 안성에 젖소를 기르는 국가 목장이 있었다.
[565년 전 오늘 - 축산 소식33] 500년전 경기도 안성에 젖소를 기르는 국가 목장이 있었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8.08.1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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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49호, 양력 : 8월16일, 음력 : 7월 6일

조선왕조실록에 젖소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태종때 설치된 유우소(乳牛所)에 관한 것으로 당시 경기(京畿) 지역에서 수납(輸納)하여 바치던 곡초(穀草)를 농사가 바쁜 때는 피하여 추수가 끝난 후에 하라는 상소(上疏) 내용이었습니다.

우유(牛乳)에 대한 표현은 유락(乳酪)이라고도 했으며, 소나 말의 젖을 뜻하는 종락(湩酪), 유즙(乳汁)이라고도 적고 있습니다. 또한 우유(牛乳)의 지방을 이용하여 만드는 오늘날 버터(butter)의 일종인 수유(酥油)는 왕실에서 약으로 사용하였으며, 갈증과 기침을 그치게 하고(止渴嗽), 모발을 윤택하게 하며(潤毛髮), 폐 기능이 위축되는 것과 심장의 열증을 제거하고(除肺痿心熱), 피를 토하는 증상을 치료하는(除吐血) 효능이 있어, 늙고 병든 신하에게 주는 귀중한 하사품의 하나였습니다. 이 수유에 갈분(葛粉)을 넣어 쑨 죽인 제호(醍醐)는 팔다리가 저리고 아픈 증상을 치료하며(主風邪痺氣), 골수를 보해 주는(通潤骨髄)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젖을 끓여서 버터인 소(酥)를 제거한 다음 발효시켜 만든 일종의 발효유인 타락(駝酪)은 보양식으로 활용하였는데 소의 젖으로 만든 것은 우락(牛酪), 양의 젖으로 만든 것은 양락(羊酪)이라 하였습니다. 이외에 유부(乳腐)라는 표현도 이와 같은 타락(駝酪)의 일종으로 지금의 요거트(youghurt)와 흡사하여, 왕실 내의원(內醫院)에서 제조하여 진상하였고, 70세 이상의 은퇴한 대신(大臣)들이 머무는 기로소(耆老所)에서 공양하기도 하였습니다.

565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이러한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를 경기(京畿)의 민호(民戶)에서 색출(索出)하지 말고 안성에 있던 국가목장에서 길러 민폐(民弊)를 덜게 하자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단종실록 7권, 단종 1년 7월 6일 신유 기사 1453년 명 경태(景泰) 4

의정부에서 매를 부려 사냥을 하던 사복시의 관원 수를 늘려 주기를 청하다

(상략)

병조의 정문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황해도(黃海道) 여러 고을에 소 2백 5두(頭)를 나누어 기르고 있으나, 젖소(乳牛)는 없고 또 희생(犧牲)으로도 합당하지 않으니 꼴과 콩만 헛되게 소비하고 있습니다. 청컨대 추등(秋等)의 점마 별감(點馬別監)으로 하여금 살찌고 튼튼하여 수레를 끌 만한 것은 뽑아 사복시(司僕寺)에 보내고 나머지는 모두 관찰사에게 주어서 빈민(貧民)으로 농우(農牛)가 없는 자에게 균급(均給)하게 하소서. 사복시의 젖소는 모두 경기(京畿)의 민호(民戶)에서 색출(索出)한 것이나, 모두 오래지 아니하여 병으로 죽고 혹은 젖(乳汁)이 나지 않는 까닭에 다시 민간에서 구하니, 그 폐단이 무궁(無窮)합니다. 청컨대 여러 목장의 어린 말(兒馬)로써 암소 60우와 황소 10두를 사서 경기(京畿) 양성(陽城)의 괴태 길곶이(槐台吉串) 목장에 놓아 기르고, 젖소를 골라 본사에서 길러 민폐(民弊)를 덜게 하소서."

하니, 모두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3책 7권 3장

【주】추등(秋等) : 가을철

     점마 별감(點馬別監) : 각 목장(牧場)의 말을 점검하기 위하여 파견하던 사복시(司僕寺)의 별감(別監)  

     괴태 길곶 : 곶 이름. 지금의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양성면(陽城面) 지역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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