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년 전 오늘 - 축산 소식34] 왕실마 1천여필에 기녀를 싣고 야외 유희를 즐긴 연산군
[512년 전 오늘 - 축산 소식34] 왕실마 1천여필에 기녀를 싣고 야외 유희를 즐긴 연산군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8.08.17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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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50호, 양력 : 8월17일, 음력 : 7월 7일

조선시대 왕실에서 쓰는 말인 내구마(內廐馬)는 병조(兵曹) 예하의 내사복시(內司僕寺)에서 관리하였는데, 내사복시에서는 임금이 사용하는 수레와 궁궐의 마구간인 내구(內廐)를 관리하는 일도 담당하였습니다. 내사복시의 관원으로는 내승(內乘) 3명이 있었으며, 그중 1명은 사복시 정(正)이 겸직하며 실무를 집행하였고, 나머지 2명도 종2품 이하의 관원이 겸임하며, 1명은 내사복시에, 1명은 왕실목장인 뚝섬 일대 살곶이(箭串)목장에 배치되어 내구마의 관리를 맡아보았습니다.

살곶이 목장에서 사육되던 말들은 국왕이 사용하는 어승마를 비롯해 왕실의 수요에 맞추어 공급되었으며, 도성 방어에 필요한 전마(戰馬)로 공급되기도 하였고, 왕족과 고위 관료에게 주던 하사품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실록에 연산군의 기행(奇行)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조선 팔도에 채홍사(採紅使),채청사(採靑使)를 파견하여 아름다운 처녀와 건강한 말(馬)을 뽑아 각 고을에서 관리하게 하고, 이중에 여기(女妓)들을 뽑아 운평(運平), 계평(繼平), 속홍(續紅) 등으로 칭하며, 미모가 출중한 이들을 흥청(興淸)이라 하고 궁궐을 출입시켰습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100여명 정도였으나 후에 1천여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512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이러한 흥청들을 왕실마 1천여필에 태우고 삼각산 아래 창의문 밖에서 야외 유희(遊戱)를 즐긴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연산군일기 63권, 연산 12년 7월 7일 갑신 기사 1506년 명 정덕(正德) 1

대비에게 잔치를 들이고, 나인과 길가에서 음행을 하다

왕이 미행으로 경복궁에 이르러 대비에게 잔치를 드리고, 잔치가 파하자 내구마(內廐馬) 1천여 필을 들이게 하여 흥청(興淸)을 싣고 탕춘대에 가, 나인(內人)과 길가에서 간음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7책 63권 2장

【주】내구마(內廐馬) : 조선시대에 내사복시에서 기르던 왕실용 말

      흥청(興淸) : 연산군 때 궁중에 출입하던 여기(女妓)

      탕춘대(蕩春臺) : 삼각산 아래 창의문 밖 장의동(藏義洞)에 있던 연회(宴會) , 주변에 흐르는 물 위에 장주초석을 세워 세웠던 정자가 탕춘정(蕩春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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