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썰] 시장도매인 검증 청문회? 유통계 '확증편향' 도 넘었다
[팜썰] 시장도매인 검증 청문회? 유통계 '확증편향' 도 넘었다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0.04.07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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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인사이트=박현욱 기자] 농업 관련 공공기관 중 여론이 가장 야박하게 구는 곳은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다.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과 강서농산물도매시장, 양재동 양곡도매시장을 관리하는 서울시공사는 국내 도매시장 1, 2위를 관리하는 곳인 만큼 유통업계에서는 '유통의 총사령관'으로 꼽히는 기관이다. 

하지만 단순히 중요함 때문인 것만은 아닌 듯하다. 수년간 농업계를 취재한 입장에서 보면 서울시공사의 '심리적 지위'는 다른 어떤 농업계 기관보다 낮다. 매번 여론의 뭇매를 맞아서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곳보다 '전문가 냄새'가 풀풀 풍김에도 공사는 어딘가 모르게 주눅이 들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서울시공사의 태생이 농림축산식품부가 아닌 서울특별시로 DNA가 달라서는 아니다. 서울시공사가 관리하는 도매시장에는 소위 '꾼'들이 넘쳐나고 있어서다. 이들은 유통분야에서 수십 년간 경력을 쌓고 현장에 닳고 닳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도매시장에 모여 판을 벌이고 연간 수 조 원의 '쩐'을 굴리고 있으니 공사 입장에서도 이들과 '대거리'를 하는 게 쉽지 않다는 하소연이 나올 법 하다. 

한때 농업계 '소통의 제왕'으로 불렸던 박현출 전 서울시공사 사장은 농촌진흥청장에서 공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매년 혈색이 달라졌고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소통이 안된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박 사장의 전임인 이병호 사장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얼굴이 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으니 서울시공사의 수장 자리가 '가시방석'인 것 만은 분명해 보인다.

'체리피커'가 난무하는 유통계

최근 시장도매인과 관련해 다시 유통업계가 들끓고 있다. 시장도매인이 있는 강서시장에서 출하자가 돈을 지급받지 못하면서 시장도매인 전체가 '공공의 적'이 된 것이다. 팩트는 시장도매인 중 한 상인이 불법으로 점포를 받아(불법 전대) 송품장 없이 임의 거래를 했다는 것인데 이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유통업계에서는 시장도매인의 거래 제도 검증 청문회가 된 양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경매의 '공포'가 자리한다. 강서시장에는 '시장도매인'과 '경매' 두 거래 제도가 병행돼 운용되고 있는데 시장도매인의 성장률이 경매제를 압도하자 이에 위기감을 느낀 세력이 끊임없이 시장도매인을 헐뜯고 '힐난'하고 있다. 순화하면 '검증', 나쁘게 말하면 '스토킹'이다. 

논리학에서는 체리피킹(cherry picking)이란 말이 있다. 논지를 전개하는 사람이 포도와 체리가 담겨 있는 접시에 달콤한 체리만 골라 먹는 얌체 같은 행동을 빗댄 말이다. 유통업계에서는 체리피커가 난무한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달콤한 체리만 보고 있는 셈이다. 

도매시장의 불법전대만 봐도 그렇다. 불법전대가 강서시장에서만 국한돼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경매제만 운용되고 있는 가락시장에서는 지난해 불법 전대로 적발된 사례가 5건이나 된다. 최근 5년간 통계를 살펴보니 가락시장 청과부류에서만 점포 전대, 허가권 대여 등 불법이 총 30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의 논리대로라면 거래 제도 자체를 없애야 하는 게 타당하다.

하지만 불법은 어느 곳에서든 똬리를 튼다. 특히 '쩐'의 전쟁터라 불리는 도매시장에는 더욱 그렇다. 이를 감시하는 공사가 있는 것도 불법을 저지른 사람을 처벌하는 법이 존재하는 이유도 불법을 막기 위해서다. 사람이 병에 걸리면 아픈 곳을 적출하고 적절한 치료를 해야지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과 꼭 같다. 세상에 완벽한 제도는 없다. 제도를 보완하는 시스템과 구멍을 막기 위한 법체계를 꼼꼼히 설계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서울시공사가 불법전대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가락시장과 강서시장은 불법전대를 전수조사하고 강력 처벌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유통 종사자가 정부를 비판하고 제대로 일을 하는지 감시의 눈을 치켜뜨는 건 당연한 권리지만 도매시장을 개혁하고 치료하겠다는 의지를 꺾고 비난만 일삼는 행동은 유통인, 농민, 소비자에게 아무런 지지를 받지 못한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이와 반대되는 논리는 무시하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은 도매시장의 시계를 뒤로 가게 하는 '적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유통업계도 인지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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