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맛남의광장] "코로나로 마이너스 통장 위기 시장도매인이 도와줬어요"
[제2맛남의광장] "코로나로 마이너스 통장 위기 시장도매인이 도와줬어요"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0.04.2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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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맛남의광장] "코로나로 마이너스 통장 위기 시장도매인이 도와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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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에서 감자 농사를 짓고 있는 정상봉 씨가 폐기되는 감자를 보고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에서 감자 농사를 짓고 있는 정상봉 씨가 폐기되는 감자를 보고 있다.

[팜인사이트=박현욱 기자] 4월 초,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에 위치한 감자밭 한 켠에 먹음직스러운 감자가 수북이 쌓여있다. 포클레인으로 폐기 작업을 하다 만 농민이 우두커니 앉아 하릴없이 감자만 바라본다. 버려진 감자들도 당장 쪄 먹으면 설탕물에 담근 것처럼 맛있는 최상급 감자들이다. 벌써 수십 톤을 맨땅에 폐기한 정상봉 씨는 하루하루가 고역이다. 저장성이 떨어지는 감자가 더 이상은 냉동고에서 버티기 힘든 이유에서다. 매일같이 밭에 버려지는 감자만 해도 수십 킬로그램. 110톤 이상 저장해놨던 감자 중 절반은 이미 땅속에 묻혔다. 코로나로 인해 수요가 사라지자 팔아야 할 시기를 놓친 감자들이 속절없이 폐기되고 있다.
 
소비자들이 흔히 하는 질문 중 하나는 '왜 농산물을 버리느냐'는 질문이다. 농산물 유통과정을 모르는 일반인에게 농촌에서 들려오는 농산물 폐기 소식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 중 하나다. 소비자와 직거래로 생산비라도 건질 수 있지 않느냐는 게 그들의 물음이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소비자 앞까지 농산물이 도착하기 위해서는 좋은 농산물을 선별하기 위한 인건비와 포장비 그리고 소비지까지의 운송료 등이 필요하며 이는 모두 비용으로 청구된다. 한꺼번에 대량으로 살 수 있는 소비력도 필요하다. 하루만 지나도 품질이 크게 떨어져 절반도 팔지 못하고 버려지는 경우가 잦아서다. 자칫 고생만 하고 손해만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소비자와의 직거래는 전문 유통인이 조율하는 플랫폼이 아니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소비자와의 직거래는 생각도 못 해요. 그냥 가져가라고 해도 누가 가져가겠습니까. 코로나로 인해 소비가 안되니 농산물이 적체되고 더구나 코로나로 학교 개학이 연기돼 급식에 나가지 못한 농산물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면서 겨울에 출하하는 농민들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어요. 올해는 어디서 망까이(손실된 부분을 채우고자 할 때 쓰는 경상도 방언) 할 수 있을지 암담하죠."
 
매년 5ha에서 약 110톤의 감자를 생산하고 있는 정 씨는 올해 벌써 50톤을 땅에 묻었다. 정 씨가 재배하는 '하지 감자'는 여름에 수확한 이후 곧바로 냉동고로 들어가 겨울이 되면 세상 밖으로 나온다. 냉동고에서 숙성된 감자는 보통 2월이면 모든 물량이 소진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모든 경매장의 유통로가 끊겼다는 게 정 씨의 설명이다.
 
"보통 단북면의 감자는 품질이 좋아 여기저기서 출하하라고 연락이 오는데 올해는 공판장이나 산지 수집상에게 연락을 해봐도 오지 말라고 하거나 안된다고 하데요. 벌써 4월이잖아요. 수녀원에 기부까지 하지만 폐기 물량은 감당이 안 됩니다. 이 좋은 먹거리가 땅에 버려지는 상황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몰라요."
 
정 씨가 버린 감자들은 하루 만에 싹이 올라 파릇파릇 해졌다. 냉동고에 저장하는 것도 값비싼 전기세를 물어야 하는 통에 하릴없이 출하 기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는 "몽땅 버릴 날만 바라보면서 냉동고를 비우려고 하고 있었다"고 당시 심정을 회고했다.
 

출하하기 위해 저장 감자를 선별하고 있는 모습.
출하하기 위해 저장 감자를 선별하고 있는 모습.

정 씨의 소식을 전해 들은 유통인들이 그를 돕기 위해 나섰다. 강서농산물도매시장의 노계호 강서지사장과 시장도매인연합회 임성찬 회장, 한국마트협회 김성민 회장이 머리를 맞댄 것이다. 감자 유통에 일가견이 있는 시장도매인 중 한 곳인 신영진청과(주) 장희철 대표와 소매 유통 제일식자재 조영렬 대표가 직접 물량을 컨트롤 하는 손발이 됐다.
 
4월 초는 햇감자 출하시기와 맞물리는 통에 저장 감자는 경매시장에서 제값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경매와 다르게 사전에 가격 협상을 하고 다양한 소매처와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는 시장도매인 특성상 농민이 어려운 시기 도울 수 있다는 게 임성찬 시장도매인엽합회장의 설명이다.

임 회장은 "시기를 놓친 농산물은 경매장에 낼 수도 없고 출하한다고 하더라도 운송비도 안 나오는 게 현실"이라면서 "출하할 곳을 찾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농민을 위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탰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유통인이 이익만 내는 집단처럼 오해하지만 농민과 어려움을 공유하는 일도 많이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버려질 뻔한 정 씨의 단북 감자는 벌써 60톤 가까이 소비자에게 팔렸다. 소비자와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유통업을 하는 제일식자재 조영렬 대표는 "햇감자 출하시기와 겹쳐 빠른 물량 소화가 힘들긴 하지만 감자를 맛본 소비자의 반응이 뜨겁다"면서 "이렇게 좋은 감자들이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현장 반응을 전했다.
 
정상봉 씨는 "사실 시장도매인에 관한 안 좋은 소문이 많아 주저했던 게 사실"이라면서 "이번 기회를 계기로 시장도매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어 "버려질 뻔한 감자가 팔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신 것"이라면서 "코로나로 인해 마이너스 통장이 될 뻔했는데 시장도매인이 구해주셨다"고 덧붙였다. 정 씨는 앞으로도 시장도매인과의 거래를 하고 싶다면서 "은혜는 반드시 갚는다"고도 말했다.
 

각계각층의 노력으로 판로가 확보된 감자를 선별하며 환하게 웃고 있는 정상봉 씨.
각계각층의 노력으로 판로가 확보된 감자를 선별하며 환하게 웃고 있는 정상봉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