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진청 판도라] 공무원 '왕따'···농촌진흥청은 그녀를 이렇게 도려내고 있었다
[농진청 판도라] 공무원 '왕따'···농촌진흥청은 그녀를 이렇게 도려내고 있었다
  • 박현욱·이은용 기자
  • 승인 2020.05.1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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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인사이트=박현욱·이은용 기자]

"공무원 집단의 괴롭힘은 치졸하고 은밀했어요. 허위 소문을 기정사실화해 지적하거나 사생활을 거론하며 행실을 문제 삼았죠. 제가 수년간 연구한 분야와는 다른 분야를 연구하는 팀으로 발령 내거나 지난 3년간 과제를 올려도 배제당하기 일쑤였어요. 저는 점점 고립되어 갔고 연구조차 할 수 없는 환경으로 내몰렸죠. 저 같은 일개 연구사가 상사한테 찍히면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농촌진흥청에서 근무하는 A 연구사는 동료 이야기가 나오자 끝내 눈물을 글썽였다. "동료로부터의 수군거림은 물론 조직으로부터 표적 대상이 돼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며 말끝을 흐렸다. A 연구사는 특정 분야에서 차곡차곡 연구 실적을 거두고 있는 농업계 촉망받는 연구사다. 연구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열의로 그녀를 아끼는 상사도 많았다. 하지만 악몽은 2017년 농진청의 한 산하기관인 ㄱ부서로 오면서 시작됐다.
  
"ㄱ부서에는 저를 유독 싫어하는 부장님(ㄱ연구관)이 있었어요. 싫어하는 감정을 객관적인 지표로 표현하기 어렵잖아요. 처음에는 추정만 했었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제가 대학생 때 한 대학교수가 성폭력에 연루돼 학교에서 파면된 사건이 있었거든요. 그때 제가 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도와줬고요. 그런데 ㄱ부장님이 그 교수의 대학 동문이었더라고요. 저를 싫어한다는 감정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 일이 단초가 된 게 아닌가 싶어요."
  
직장 내에서 상사와 부하직원의 갈등은 다반사로 벌어진다.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 데는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상사나 부하직원이 단순히 싫어하는 감정을 갖는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싫어하는 감정이 권력을 등에 업고 부하직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준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실제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직장 생활 경험이 있는 만 20~64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73.4%가 직장 내 괴롭힘 경험을 당했다고 호소할 정도로 직장 내 괴롭힘은 우리 주위에 늘 있어왔다. 괴롭히는 주체도 당하는 사람도 괴롭힘의 범위를 재단하기 쉽지 않지만 A 연구사가 제기한 문제는 연구직 공무원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
  
추정만 하던 ㄱ부장의 괴롭힘은 인사 문제에서 툭 튀어나왔다. 직제 개편에서 특정 분야 연구를 지속해오던 A 연구사를 새롭게 구성되는 타 연구팀으로 추천한 것이다. 연구직 특성상 연구 당사자에게 사전에 의견을 물어 업무 공백을 최소화해야 하지만 A 연구사가 해외 출장을 간 사이 그녀의 상사들은 그녀를 기존 업무와는 무관한 팀으로 추천, 결국 그녀는 국내 복귀 직후인 2018년 9월 해당 연구팀으로 발령받는다. 더욱이 기존 특정 연구에서 꾸준한 성과를 보이고 있었던 A 연구사에게 전혀 다른 분야로의 인사는 청천벽력과 같았다. 이와 관련해 본지가 농진청에 A 연구사의 발령 이유를 물었지만 "이미 (A 연구사를 타 연구팀으로의 발령) 이야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른 복수의 연구기관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라고 답했다. 농업계 타 연구기관 관계자는 “연구직 특성상 관련 업무로 발령하거나 사전에 의견을 묻는 게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2018년 9월, 농진청으로부터 통보받은 인사발령 통지문(왼쪽)과 해당 원장에게 부당 인사발령 문제제기 후 받은 전보 취소 공문(신변 보호를 위해 모자이크 처리).
2018년 9월, 농진청으로부터 통보받은 인사발령 통지문(왼쪽)과 해당 원장에게 부당 인사발령 문제제기 후 받은 전보 취소 공문.

“황당했었죠. 사전에 저한테 언지라도 줬으면 갑질이라고 생각 안 하죠. 제가 미국에 있더라도 전화가 없나요. 메일이 없나요. 해당 인사가 부당하다고 생각해 인사가 난 당일, ㄱ부를 총괄하는 원장님을 찾아가서 사정을 이야기했어요. 자초지종을 들은 원장님은 그날부로 발령을 취소했고요. 정당한 인사였다면 취소하지 않고 저를 설득할만한 논리가 있었겠죠.”
  
이뿐만이 아니었다. A 연구사가 추진하려는 과제도 번번이 낙마했다는 게 그녀의 주장이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그녀가 기획해 추진한 과제는 심사에서 대부분 반려됐다. 예산이 없다는 게 핑계였다. 하지만 A 연구사가 제안한 연구와 비슷한 연구가 다른 사람 이름으로 진행되거나 내용은 비슷하나 주제만 수정돼 진행된 과제도 있었다. 그녀는 지난해 해당 과학분야 상위 3% 단독 제1주저자로 논문을 게재한 성과가 있을 정도로 실력이 입증됐지만 제안한 과제는 번번이 고배를 마시는 수모를 겪었다.
  
“아 이런 식으로 괴롭힐 수도 있구나 생각했어요. 연구자에게 연구하지 말라는 거죠. 정말 이건 연구 윤리고 뭐고 없는 거잖아요. 우리 조직의 민낯을 까발리는 건데 제 마음이라고 편할까요. 하지만 이건 제가 아닌 또 다른 연구사, 연구원, 연구관 누구든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이라서 용기 내서 말하는 거예요.”
 

A 연구사와의 인터뷰 장면(신변 보호를 위해 모자이크 처리함).
본지와 A 연구사와의 인터뷰 장면.

A 연구사에 대한 교묘한 괴롭힘은 ㄱ부장의 부하 직원인 ㄴ연구실장에게서도 자행됐다. 밤 12시가 인접한 시간에 술에 취해 전화를 한다거나 출장지에서 손등에 뽀뽀하는 성희롱을 하기도 했으며, 허위 소문에 대해 메일로 행실을 거론하며 질책하기도 했다. A 연구사가 또 다른 상급자 차를 얻어타고 가는 광경을 목격한 ㄴ연구실장은 "A 씨도 여자이니 알 거야. 언젠가 신문에서 본 적이 있어 내 남편이 다른 젊은 예쁜 여자를 태우고 가는 것을 부인이 보면 눈이 확 뒤집힌다고. 조심하라"라는 식의 메일을 보냈다. 
  
A 연구사는 사소한 곳에서도 '은따(은근한 따돌림)' 신세를 면치 못했다. 보통 국가 연구기관에서는 실험실 기기를 공동으로 사용하는데 A 연구사가 실험기기를 사용하려고 하면 항상 실험실 문을 잠그거나 동료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이 잦았다. 주말까지 시간을 내 사용하려고 하면 주말에는 기기가 쉬어야 한다는 답이 돌아오거나 검은 비닐봉지에 싸서 숨겨놓거나 하는 일까지 반복됐다는 게 A 연구사의 말이다. 실험기기 부족 문제는 어떤 연구실이나 늘 반복되는 일이지만 애초부터 실험기기가 매우 부족한 깡통 실험실에서의 실험기기 확보는 연구의 속도와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보통 이럴 경우 외부로부터 데모 장비를 빌려와 부족한 실험 인프라를 대신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는데 제가 실험기기 욕심이 있다는 소문까지 돌더라고요. 연구실장에게 조율을 부탁해도 방관만 하셨고요. 국가 일을 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건지. 아 이렇게 사람을 말려 죽이는구나 생각했죠."
  
부당한 일이 지속되자 A 연구사는 결국 농진청 감사실의 문을 두드려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감사실에서는 절차대로 진행해 문제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오히려 A 연구사가 빌린 데모 장비를 청탁금지법을 들어 2018년 11월 22일 경찰에 형사 고발했다. 당시 외부로부터 빌린 장비들은 A 연구사 이외에도 많았지만 유독 A 연구사가 빌린 장비만을 표적 감사했다는 게 A 연구사의 주장이다. 수사기관은 약 9개월에 걸친 장기간 수사를 벌였지만 해당 사건에 대해 2019년 8월 23일 ‘금품 등을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혐의 없음'으로 결론냈다. 하지만 감사실은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해당 사건을 법원에 제기해 과태료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해당 사건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농진청에서는 A 연구사의 중징계 여부를 심의 중이다. A 연구사는 "농진청 문화가 보수적이라는 말은 들었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면서 "찍히면 죽는구나"를 절감했다고 표현했다.
  
"감사실은 지금 권력의 친위부대 역할을 하고 있어요. 농진청이라는 큰 조직에서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을까요. 지금은 저의 일이지만 사실 우리 일이에요. 제가 잘려나가면 또 누군가 당하지 않겠어요." 
  
농촌진흥청은 그렇게 그녀를 도려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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