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터뷰] 김용환 서울대학교 교수(전 팜한농 대표이사)
[화제의 인터뷰] 김용환 서울대학교 교수(전 팜한농 대표이사)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0.07.08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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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리 하러 논에 들어갔던 시대에서... “'센싱'과 '빅데이터'가 좌우하는 농산업으로 전환될 것”

[팜인사이트=박현욱 기자] 1980년대 동양화학(현 OCI) 연구원으로 출발해 신젠타코리아 대표, 팜한농 대표이사를 역임한 김용환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산학협력중점 교수는 국내 농약산업을 이끌어 왔던 거목이다.

연구원 시절부터 글로벌 기업인 바스프 등 굵직한 회사들과 협업을 통해 국제 농자재 시장을 지켜봐 온 그는 농약산업이야말로 20세기 대표적인 ‘파괴적 기술(destructive technology)'의 하나라고 말한다. 우리의 삶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킨 농약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인류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한국도 1960년대 농자재 산업이 농촌 인력의 공백을 메꾸면서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으며, 인도의 아이들이 잡초를 뽑는 농사일에 투입되지 않고 교육으로 눈을 돌릴 수 있던 이유도 농자재 산업 덕택이다.

아직 획기적인 변화는 아니지만 ICT 기술의 발달로 4차 산업혁명 시대 중심에 서 있는 지금, 국내 농산업도 이런 변화에 발맞춰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다. 김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거치면서 '센싱(sensing)'과 '빅데이터(bigdata)'가 미래 농업을 디자인할 것이라며 농약 산업의 미래를 이렇게 진단했다.

 

김용환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산학협력중점 교수.
김용환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산학협력중점 교수.

김 교수는 우선 국내 농약산업 생태계에 대해 '쉽지 않다'고 표현했다. 모든 산업은 스타트업 기업들의 진화와 멸절을 반복하며 발전하고, 건실한 스타트업 기업 배출이 산업의 성장 동력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 농약 업계 현실은 벤처기업을 뒷받침해줄 만한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이스라엘에서 건실한 농약 스타트업 회사가 나오고 그 기업들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벤처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돼서다. 

"미국의 팜 테크 스타트업인 인디고 애그리컬처(Indigo Agriculture)라는 회사는 시가총액 30억 달러 규모의 큰 미생물 농약회사로 발전했죠. 아직까지 국내에서 이렇다 할 벤처기업이 탄생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참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외국 사례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농약 벤처기업들이 성장한 배경에는 가치사슬(Value Chain)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있었는데요. 우리나라 농약 기업들도 이제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인디고 애그리컬처는 쌀 종자를 코팅하는 미생물 농약을 생산해 맥주회사와 협업하고 있다. 버드와이저를 생산하는 유명한 맥주기업인 아노이저 부시는 인디고와 장기공급계약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미생물 농약을 코팅한 쌀을 전량 사용한다.

아노이저 부시는 소비자에게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마케팅으로 활용, 결국 미생물 농약의 부가가치까지 높이고 있다. 이는 작물보호분야의 가치사슬이 소비자까지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단순히 농약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고민과 상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농약 업계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죠. 국내에서 손꼽히는 농화학 기업 팜한농 매출액이 7천억 원 규모니까요.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R&D 투자 비용이 대략 3억 달러가 투입된다고 보면 국내 기업이 무턱대고 기술 개발에 뛰어드는 게 망설여질 만하죠.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말고 산학연이 세계시장을 향해 협업해야 합니다. 정부가 열악한 농산업을 위해 플래트폼 기술에 투자하고 이를 통해 좋은 후보물질을 찾은 국내 기업들이 독자적 또는 굵직한 글로벌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성장 동력을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미래 농약 산업, 나아가 농업의 미래는 '센싱'과 '빅데이터'가 좌우할 것으로 전망한다. 무엇을 찾아내고 측정할 것인가(sensing)와 그동안 농업이 쌓아왔던 노하우를 차곡차곡 데이터(bigdata)로 구현해 농민을 컨설팅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의미다.

"우리가 4R이라고 부르죠. 작물보호를 위해 알맞은 물질(Right product)을 적기에(Right time)에, 그리고 정확한 장소(Right place)에 정확한 양(Right amount)을 줄 수 있는 것. 농업 기술, 아그리텍(Agri-tech)이 그 일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벌써 이런 기술은 구현되고 있죠. 과거 농사를 짓는 땅 전체에 농약을 살포했다면 이제는 로봇이 작물중에서 잡초를 인식하여 최소량의 제초제를 뿌려주고 있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잖아요. 작물보호 단위가 개체 단위로 축소되고 정밀해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거창하고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미 산업 전반에서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김 교수는 제조업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기술혁신이 농업에서 차용할 수 있는 원천기술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제조업에서 흔히 거론되는 스마트팩토리(smart factory)란 말 들어 보셨죠. 제조업에서 디지털 혁신기술로 활용하고 있는데 농업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어요. 스마트팩토리의 4단계가 측정(monitoring), 제어(control), 최적화(optimization), 자율화(autonomy)인데, 어떤 조건에서 작물이 잘 자랄 것인가 측정하고, 제어하기 위해 노력하죠. 또 여러 가지 변수(parameter)를 최적화할 때 원하는 작물을 제대로 얻어낼 것인가. 이런 것들이 기계가 알아서 자율적으로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 다시 말하지만 결국 과학기술이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고 핵심 기술은 '센싱'과 '빅데이터'로 귀결된다고 봅니다."

김 교수는 농약 업계에 만연해 있는 '패배의식' 극복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소비자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이 큰 농약산업이지만 농업현장에서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고 노동강도를 지속적으로 낮출 수 있었던 핵심 산업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1970년대 이전 우리가 벼농사를 지으려고 할 때 피사리(모내기 후 '피'라는 잡초를 제거하는 작업)를 했죠. 이제는 논에 발을 담글 필요가 있나요. 우리가 쉬운 농업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도 농자재 산업이 발전했기에 가능한 일이죠. 농약 업계 구성원들은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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