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칼럼] 낙농유가공업계 명예혁명의 산물 ‘원유가격원가연동제’
[편집자 칼럼] 낙농유가공업계 명예혁명의 산물 ‘원유가격원가연동제’
  • 김재민
  • 승인 2020.07.09 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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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에 의한 가격 조정 아닌 시스템에 의한 가격 조정으로 전환

극한의 갈등과 커다란 사회적 비용 절감한 우수한 제도

국내 품목 농민조직 중 가장 투쟁적인 곳을 꼽으라 하면 으레 사람들은 한우를 떠 올린다.

2000년대 생우수입반대투쟁, 미국산 쇠고기수입반대 운동 그리고 최근 농협개혁운동까지 십수년간 이어온 한우협회의 투쟁의 역사는 한우가 가장 역동적이고 투쟁적인 조직으로 생각하게 했다.

하지만 이는 최근의 일이고 시간을 길게 늘여 생각해 보면 낙농이 가장 투쟁적인 조직이라 평가하고 싶다.

이유인즉 국내 대부분의 농축산물이 시장기구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지만, 낙농가들이 생산하는 우유만은 고정된 가격으로 거래가 되다 보니 가격 변동요인이 발생할 때마다 원유가격 인상을 요구하는 극한의 투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원유가격을 정부가 고시하던 1990년대까지는 대정부 투쟁이 주기적으로 일어났고, 원유가격을 민간 자율로 결정하도록 한 이후부터는 원유가격 협상장인 낙농진흥회 그리고 협상의 파트너인 주요 유업체에서 농가들의 투쟁이 일어났다.

원가연동제가 도입되기 이전 낙농가들은 유업체들을 찾아다니며 유가 인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개최하였다.

 

협상은 노동자대표와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등이 참여하는 최저임금위원회와 비슷하게 유업체 대표, 낙농가대표, 공익위원으로 구성된 낙농진흥회 이사회가 담당하며 지루한 협상을 진행하고, 협상 대표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대규모 장외 투쟁과 여론전이 진행된다.

협상이 고착상태에 빠졌을 때는 낙농가대표인 낙농육우협회 회장이 단식하며 협상 대표들을 압박하기도 수차례였고 갈등이 정점에 달했을 때 정부가 양측의 요구안을 수렴한 절충안을 제시해 합의를 종용하면서 어렵게 가격이 정해지는 게 순서였다.

몇 달씩 진행되는 끝나지 않는 협상은 낙농가들도 유업체도 또 중재하는 정부와 낙농진흥회 관계자들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낙농 산업의 파트너들 간의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것은 두 번째고, 여론전이 지속되면서 유업체는 낙농가들에게 갑질을 하거나 야박하게 구는 좋지 않은 기업으로 소비자들에게 인식되면서 우유 판매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원유가격 인상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 지도부 단식이라는 극한의 투쟁을 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원가연동제 도입 이후 사라진 풍경이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자 나온 것인 원유가격원가연동제이다.

통계청의 우유 생산비가 발표되면 원가에서 4% 이상 인상 또는 인하요인이 발생했을 때 자동으로 원유가격을 조정하는 제도이다.

누적적용을 허용해 지난해 3%, 올해 2% 인상요인이 발생하면 합산해 인상하거나, 반대로 지난해 –3%, 올해 –2% 인하요인이 발생했다면 합산해 가격을 조정하기도 한다. 지난해 –2%, 올해 5% 인상요인이 발생하면 합산해 인상은 다음해로 이월되는 식이다. 이로 인해 지난 10년간 원유가격은 별로 인상되지 않았다.

필자는 원유 가격연동제를 낙농육가공업계의 명예혁명이라 부르고 싶다.

‘명예혁명’이란 영국에서 1688년에 일어난 혁명으로 의회와 네덜란드의 오라녜 공 빌럼이 연합하여 제임스 2세를 퇴위시키고 잉글랜드의 윌리엄 3세로 즉위하였는데, 이때 일어난 혁명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명예롭게 이루어졌다'라고 해서 명예혁명이라 이름 붙였다. 프랑스 대혁명이 피의 혁명인 것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이처럼 낙농유가공업계가 2010년대 합의한 원가연동제는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투쟁과 반대가 아닌 시스템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도록 했다는데 그만큼 의미가 있다.

하지만 최근 8월 원유가격 조정시기를 앞두고 낙농유가공업계의 갈등이 첨예하다.

한참 협상이 진행되던 시점에서 유가공업계가 일간지 등을 동원하여 원가연동제가 매우 나쁜 제도라는 취지의 여론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론전은 가격 조정을 앞두고 여러 차례 있었으며, 가격 인상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소비자를 등에 업고 낙농가들을 압박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시스템에 의한 가격 조정은 그간의 사회적 갈등에 대한 반성에서 나왔음에도 이를 부정하는 태도는 좋지 않다고 본다. 현재의 가격 결정방식이 문제가 있다면 제도 보완을 위한 공론의 장을 만들어 논하는게 맞다고 본다. 유가공업계가 당장의 눈앞에 이익에만 현혹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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