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9년 전 오늘 - 축산 소식37] 중국에서 가장 좋아 했던 조선의 동물중 하나는 사냥개
[589년 전 오늘 - 축산 소식37] 중국에서 가장 좋아 했던 조선의 동물중 하나는 사냥개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8.08.2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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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53호, 양력 : 8월29일, 음력 : 7월 19일

[팜인사이트 축산실록] 조선왕조실록에 개에 관한 기록은 구(狗), 견(犬)등으로 표기되어 700여건의 기사가 있으며, 강아지는 구자(狗子), 구아(狗兒)등의 표기로 60여건의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색상별로는 순황견(純黃犬), 순백견(純白犬), 순흑견(純黑犬)이 나타나 있으며, 삽살개인 방구(厖狗), 주둥이가 뾰족하여 사냥을 잘하는 사냥개인 전견(田犬), 주둥이가 짧고 잘 짖어서 집을 지키는 폐견(吠犬)등의 기록도 있습니다. 이중에 왕실기록과 관련되어 가장 많이 언급되어 있는 개는 사냥개인 전견 또는 엽견(獵犬)으로 100여건의 기록이 있습니다.

이 같은 사냥개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 임금이 신하와 백성을 모아놓고 대규모로 함께 실시하던 사냥 의식을 겸한 군사훈련인 강무(講武)와 수행 군사들과 함께 하루나 이삼일의 단기간 일정으로 소규모로 하던 사냥인 타위(打圍)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실제로 강무에는 임금을 비롯해서 대군 · 왕자 및 의정부 이하 문무관 등이 참석하여, 기본적으로 적게는 수천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의 군사들을 동원하는 종합적인 군사훈련의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강무 활동 중에 사냥은 짐승 몰이를 바탕으로 활을 이용하는 사렵(射獵), 매와 사냥개를 활용한 응렵(鷹獵)과 견렵(犬獵) 등의 형식이 있었습니다.

이같은 대규모 사냥 훈련인 강무는 조선 초기인 태조 대부터 시작되어 태종, 세종, 세조대에 매우 활발하게 시행되었으나 이후에는 군사 훈련이라는 본래의 기능이 점차 약화되어 제물(祭物)이나 어찬의 마련이라는 명분으로 변질되면서, 타위가 많이 이루어져 세조대에는 타위법(打圍法)이 정해지기도 하였습니다. 이 타위법에는 호랑이, 스라소니, 멧돼지, 사슴 등을 보고 여러 위(衛)에서 다투어 잡다가, 만약 황룡기(黃龍旗)와 교룡기(交龍旗)를 세우면 본소로 돌아가며, 초요기(招搖旗)를 세우면 장수가 와서 교룡기 아래에 서면서 여러 장수가 모두 오게 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냥에 쓰인 조선의 사냥개는 중국 황실이나 사신들이 애호하던 동물로 589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중국에 보내는 진헌(進獻) 품목 중에 큰개 40여마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종실록 45권, 세종 11년 7월 19일 계해 기사 1429년 명 선덕(宣德) 4

임금이 왕세자와 백관을 거느리고 서토를 축하하는 표·전문을 배송하다

(상략)

아뢰기를,

"선덕 4년 5월 초2일, 흠차 태감 창성(昌盛)·윤봉 등의 관원이 우리 나라에 와서 공손히 선유를 전하기를, ‘네가 조선국에 가서 국왕(國王)에게 알도록 설명하고 개(狗)와 매(鷹)를 구하여 가지고 오라. ’고 하였습니다. 공손히 이 뜻을 받들어 이제 여러가지 새매와 큰 개를 배신 좌군 동지총제 권도를 보내어 관리하여 북경에 가서 진헌하게 합니다. 아골(鴉鶻) 30연(連), 황응(黃鷹) 10, 조응(皂鷹) 4, 큰 개 40마리입니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4책 45권 6장

【주】아골(鴉鶻) : 수컷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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