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찌개 찾던 소녀가 치즈 마니아로…손민우·손현정 부녀
된장찌개 찾던 소녀가 치즈 마니아로…손민우·손현정 부녀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8.08.30 15:52
  • 호수 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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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형 유가공농장에서 본 치즈산업의 미래
소비트랜드 변화…프릴 등 숙성치즈 정조준
치즈원유 먼저 확보 잉여원유 사용은 옛말

[농장에서 식탁까지= 박현욱 기자] 초등학생 소녀는 좀처럼 치즈가 입에 맞지 않았다. 숙성치즈 특유의 쿰쿰한 향과 강한 맛은 된장찌개처럼 전통식단을 좋아하는 입맛엔 ‘꽝’이었다.

아버지는 늘 새로운 치즈를 딸에게 맛보게 했다. 푸른곰팡이 치즈(Blue Cheese)를 들고 나올 땐 질색을 했다. “아빠가 딸에게 곰팡이를?”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목장에 태어났으면 밥값을 하라”던 무뚝뚝한 경상도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늘 일을 가르쳤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목장 일을 돕던 그녀는 주말에도 고사리 손으로 요구르트(yogurt)를 포장했다. 어린 초등학생은 “맛이라도 알아볼 요량”으로 치즈를 먹기 시작해 마니아가 됐다. 깊고 풍부한 맛에 길들여진 탓이다.

치즈와 관련된 콘테스트에는 빠짐없이 참가하면서 이젠 어엿한 치즈목장의 일원으로 성장했다. 우유 가공과 목장 홍보는 그녀 몫이다. “외부인은 위생 때문에 가공장에 출입할 수 없다”는 ‘똑순이’가 됐다.

치즈 기술에서 미래를 본 소녀

삼민목장 손민우 대표와 딸인 손현정 씨
삼민목장 손민우 대표와 딸인 손현정 씨

경상남도 함양에 소재한 삼민목장은 전형적인 ‘목장형 유가공농가’다. 초등학교 때부터 목장에 일손을 보탠 손현정 씨(27)는 삼민목장 막내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목장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 “낙농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특수분야지만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밴 노하우와 치즈에 특화된 아버지의 기술에서 미래를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인 손민우 대표(60)는 2009년 축산분야에서는 최초로 농촌진흥청에서 주최한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에 선정될 정도로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손 대표는 1983년 낙농에 뛰어들어 치즈산업에 매력을 느꼈다. 순천대학교 배인휴 교수에게 몇몇 선도농가와 함께 치즈기술을 전수받고 삼민목장에 맞도록 숙성기술을 발전 시켜나갔다.

소비자 트랜드 숙성치즈로 옮겨갈 것

보통 치즈는 우유를 바로 굳혀 먹는 신선치즈와 숙성기간을 거치는 숙성치즈로 나뉘는데 우리나라 농가들은 대부분 신선치즈를 생산한다. 가공이 쉽고 간편해서다. 숙성치즈는 숙성기간만 짧게는 3~4개월이 길게는 6개월 이상 걸릴 정도로 까다로운 기술을 요구한다.

저장고에서 숙성하고 있는 고다 치즈. 상단의 숫자는 제조 연원일 표시.
저장고에서 숙성하고 있는 고다 치즈. 상단의 숫자는 제조 연원일 표시.

삼민목장은 신선치즈뿐만 아니라 숙성치즈까지 다룬다. 아직까지 저변이 넓지 않지만 점차 소비자들의 관심이 맛이 깊고 풍부한 숙성치즈로 옮겨갈 것이란 예측에서다.

손 대표는 “일반 농가에서 숙성 치즈를 생산하는 게 쉽지는 않다. 치즈를 숙성시킬 인프라와 기술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라면서 “삼민농장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기술개발과 설비투자를 해왔다. 숙성치즈로 바뀔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민목장은 신선치즈와 숙성치즈 라인업을 모두 갖췄다. 요구르트부터 시작해 간편하게 맛보는 스트링 치즈, 구워먹는 치즈, 고다(Gouda) 치즈, 카망베르(Camembert) 치즈 등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생산되는 프릴(Frill)치즈도 삼민목장만의 자랑거리다.

삼민목장은 분업체계로 목장을 운영한다. 손 대표의 두 아들이 생산과 판매를 담당하고 있다. 큰 아들은 ‘유통’ 작은아들은 ‘생산’, 막내딸은 ‘가공·홍보’에 집중하면서 가족형 기업 분업체제 시스템을 완성했다.

인구절벽, 우유과잉시대 도래

서구인의 김치로 불리는 치즈는 비교적 늦게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우유를 마시는 서양 식문화는 유지방을 굳힌 버터나 크림, 단백질은 굳히거나 발효시킨 치즈와 요구르트로 발전했다. 우리의 청국장, 메주와 마찬가지로 지역별, 국가별로 맛도 천차만별이다. 전문가들은 장소, 시간, 작업과정, 사용하는 균의 종류에 따라 치즈 종류만도 대략 2천여 종이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치즈 문화가 발전한 서양과 달리 국내 치즈산업 발달은 더디다. 최근 폭발적으로 치즈소비가 늘고 있긴 하지만 90년대 중반만 해도 우유는 귀한 음식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과거 낙농가들은 유제품 제조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유업체에게만 공급해도 충분한 소득이 보장됐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우유의 주 소비층인 유아나 청소년 인구가 급속히 줄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우유과잉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삼민목장 제품군 라인업
삼민목장 제품군 라인업

잉여 원유로 치즈 만든다? “NO!"

인구구조 변화로 촉발된 원유수급불균형은 2003년 우유생산쿼터제가 도입되는 시발점이 됐다. 쿼터제 도입 후 쿼터 초과물량을 고시가격의 20~30% 수준인 형편없는 가격으로 정산받자 낙농가들은 스스로 원유 소비의 탈출구로 ‘목장형 유가공사업’에서 찾았다.

우유만 납품하던 시대에서 스스로 가공하고 판매에까지 나선 것이다. 매일 고품질 우유를 생산해야 하는 고된 일상을 딛고 가공과 판매라는 영역의 도전은 쉽지 않았다. 공식적인 통계로 전국의 70여 곳 만이 목장형 유가공농장의 명맥을 잇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삼민목장도 1990년대 중반에는 유업체에 우유를 공급한 후 조금씩 남는 물량을 가지고 요구르트나 치즈를 만들었다. 보통 잉여원유로 유제품을 생산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지금은 다르다는 게 손대표의 전언이다. 비싼 값을 치루더라도 치즈를 만드는 우유 확보가 먼저라는 얘기다. 치즈를 기다리는 소비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손민우 대표는 “보통 잉여 원유를 활용해 치즈를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변했다”면서 “몇몇 낙농가들은 한번 개척한 치즈 소비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유업체에 납품하는 원유가 부족하더라도 치즈를 생산하기 위한 물량 확보를 우선한다”라고 전했다. 삼민목장에서는 연간 약 500톤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으며 이 중 40톤은 유제품을 위한 원유로 확보하고 있다.

건강식품 선호 치즈 소비량 급성장

치즈는 영양학적으로 우수한 성분을 자랑한다. 보통 우유 10kg이 1kg의 치즈가 되는데 수분 등이 빠지고 영양소는 그대로 압축된다. 열량은 낮고 평균적으로 단백질 25%, 지방 27%, 비타민과 미네랄은 약 8%로 건강식품 중 으뜸으로 꼽힌다.

특히 치즈에는 칼슘과 인이 풍부해 성장기 아이들에게 좋은 영양간식이다. 휴대하기도 편해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지참해야할 필수품 1호다. 국내 치즈 소비량이 최근 7년간 연평균 10.3%의 성장 흐름을 타고 있는 것도 맥락을 같이 한다.

손현정 씨는 “치즈에 대한 문의가 점점 많아진다”면서 “특히 아이들에게 먹일 국내산 신선치즈와 숙성치즈에 관심이 높다”고 말한다. 일반인들이 흔히 볼 수 있는 가공치즈에 비해 가격이 높지만 치즈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삼민목장 치즈만 찾는 건 품질이 월등해서다.

삼민목장 입구
삼민목장 입구

“삼민목장 치즈는 가공치즈와 달라요”

원유탱크에서 살균을 거친다. 냉각을 한다. 유산균을 접종한다. 렌넷(rennet, 응유 효소)을 접종한다. 굳으면 컷팅하고 교반과정을 거친다. 온도를 올리며 수분을 제거한다. 이는 치즈를 만드는 과정이다. 신선치즈를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원료는 우유, 유산균, 렌넷 3가지다. 치즈의 향과 맛의 풍미는 숙성의 조건 등 목장이 보유한 기술이 좌우한다. 가공치즈의 경우 여기에 색소와 첨가물 등이 들어간 후 고열로 가공한다. 손씨가 가공치즈보다 신선이나 숙성치즈를 추천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삼민목장에서는 주문을 잊어버렸을 때 즈음 도착하는 치즈도 있다. 스위스 꽃치즈라 불리는 프릴치즈다. 프릴치즈는 삼민목장에서만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주름을 잡아 만든 옷 장식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프릴치즈는 지롤(girolle)이라는 전용 기구에서 치즈를 돌려 깎으면 꽃잎처럼 포슬포슬하게 모양이 만들어진다. 얇게 잘린 치즈가 혀에 닿는 표면적을 증가시켜 숙성치즈의 깊고 풍부한 맛을 빠르게 느낄 수 있어 전문가를 위한 치즈라고도 불린다.

유제품 가공 수익 높지 않아

치즈산업은 연평균 12%로 급격히 성장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한 건 치즈자급률은 높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통계(2015년 기준)로 국내산 치즈 자급률은 약 4.3%를 기록 중이다. 2011년 2.0%에서 두 배 이상 오른 수치지만 아직까지 갈 길이 멀다.

단순한 수치개념으로 살펴보면 유제품을 만들어서 팔면 남는 장사다. 치즈를 판매할 경우 우유보다 약 7배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값싼 수입산과 경쟁해야 하고 가공과 관련한 시설투자와 인건비, 검사비용, 부재료까지 더하면 유업체에 납품하는 원유와 비교해 수익에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각종 관리비용으로 들어가는 품이 더 많다. 낙농가들이 치즈산업에 쉬이 진출하기 꺼려하는 건 이 때문이다.

손민우 대표는 “현재 치즈산업으로의 진입을 타진하는 농가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추천은 하고 싶지 않다”면서 “목장을 운영하면서 소요되는 인력과 기술개발, 각종 장비, 정부의 규제 등 우리나라는 축산을 하기에는 쉬운 환경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치즈산업 활성화 권역별 관리 시스템 구축

손 대표는 우리나라 치즈산업 활성화에는 물음표를 던진다. 소비시장이 아직까지 제한적인데다 정부의 위생 기준에 맞추기 위해 해썹(HACCP)까지 의무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농장 주변의 민원과 축산 폐수처리 비용 등 생산과 유제품 가공 이외에도 수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손대표는 치즈산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권역별로 치즈를 관리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 농가에서 치즈를 보관하는 데도 값비싼 저장시설 등이 갖춰져야 하는데 권역별로 일원화해 관리하자는 취지다.

그는 “농가는 생산과 가공에 집중하고 관리와 유통을 전문 조합이나 단체가 해주면 치즈산업에 진출하는 진입장벽이 낮아질 것으로 본다”면서 “정부에서 수입산과 경쟁할 만한 장기적인 치즈 마스터 플랜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