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축장, 축산물 유통 중심으로 거듭나다
도축장, 축산물 유통 중심으로 거듭나다
  • 김재민 기자
  • 승인 2020.09.08 1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팜인사이트=김재민 기자] 국내 도축산업은 크게 두 차례에 걸쳐 성장한다.
1990년대 축산물 소비가 급격히 늘어나고, 돼지고기 수출이 활성화되던 시기 그리고 2010년대 후반 도축장 구조조정이 끝난 이후다.
이 두 시기는 도축장에 대한 투자가 활발히 진행된 시기로 전자는 수출 때문에 그리고 후자는 주요 축산물 패커들이 유통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투자를 단행했다.
아무리 농장에서 좋은 원료 가축을 생산하더라도 도축 처리 과정이 받쳐주지 않으면 축산물의 품질은 보장받기 어렵기 때문에 수출을 위해서든 국내 내수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든 현대화된 도축설비의 확보는 필수가 됐다.

HACCP・도축장 구조 조정 도축산업 발전에 큰 기여

HACCP인증 사업은 도축장의 위생 수준과 위해요소 관리가 경쟁력으로 생각될 정도로 중요해 지면서 축산물을 가공하는 업체라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중요한 프로그램이 되었지만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이제는 HACCP제도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위생관리에 업체들이 투자를 아끼지 않게 되었고, 이번에 농장과 식탁에서 방문한 두 도축장의 위생 수준과 관리 수준은 상상 이상이었다.
도축장에 대한 막연한 부정적 이미지를 충분히 탈피할 수 있는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특히 최근 새롭게 가동에 들어간 도드람김제FMC는 우리 도축장이 어느 수준까지 위생적이고 또 축산물의 품질을 끌어 올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이러한 변화는 한계도축장의 정리를 가능케 한 도축장 구조조정 사업의 영향도 크다.
물량 확보를 위해 도축비 인하 경쟁을 펼쳤던 2000년대 어떤 주체도 비용을 증가시키는 시설투자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고, 도축효율을 떨어뜨리는 HACCP의 완전한 이행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구조조정사업의 결과 시장을 흐리는 한계도축장이 사라지고, 또 위생적인 설비에서 처리된 축산물을 인정하는 시장 환경이 조성되면서 도축장이 축산물 유통의 중심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
 

축산물 유통생태계 고려한 도축장 역할 고민할 때

지금 시점에서 더불어 고민해야 할 부분은 대형도축장과 중소도축장의 역할 분담 그리고 축산물 유통생태계에 대한 고민이다.
도축장 중심의 산업에 가장 먼저 관심을 둔 품목은 육계다.
1990년대 도계장을 중심으로 산업은 재편되기 시작해 현재는 유통의 영향력이 농장을 압도하는 상황에까지 놓이게 됐다.
현재 양돈업계도 이러한 것에 눈을 뜨며 주요 브랜드 경영체들이 도축 인프라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국내 축산업이 대형 도축장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되어서는 온전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위생 수준 강화, 도체 품질의 향상 등으로 인한 긍정적 효과가 크기는 하지만, 도축장 중심으로 산업이 전환된 육계처럼 다양성 상실과 그로 인한 상시 공급과잉이라는 문제를 똑같이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은 다양한 사육 주체, 다양한 유통 주체가 좋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 경쟁하고 또 협력할 때 만들어지는데, 대형 도축장 중심으로의 재편은 이를 가로막을 공산이 크다.
중소도축장은 새로운 상품을 기획하고 도전하는 양축농가와 이를 유통해 보고자 하는 유통업체가 이용하기 좋은 인프라이다.
사육분야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의 차별적 상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도축장을 비롯한 유통생태계가 존재할 때 가능하다.
이를 통해 가성비 중심의 단일 속성의 돼지고기나 닭고기가 불러일으키는 공급과잉 상황을 완화할 수 있다. 모든 농가가 똑같은 속성의 축산물 생산에 뛰어드는 대신 메인 시장은 시장대로 대형 도축장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도전의식이 있는 사육 주체들이 차별화된 상품을 출시하는 식으로 일부 농가와 유통 주체들이 틈새시장을 만들어 간다면 웬만한 부정적 이슈에도 잘 흔들리지 않는 건전한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앞으로의 도축산업

도축산업이 어떻게 디자인되느냐에 따라 국내 축산업의 지형 또한 달라질 수 있다.
1980~1990년대 사육 분야에서 일어난 혁신이 우리 축산업의 변화를 주도했다면, 앞으로 축산업의 혁신은 도축업계를 비롯한 유통업계에서 일어나고 그 혁신의 결과가 농장으로 전파되면서 사육분야 변화를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역 단위의 작지만 강한 도축장과 수출까지 염두에 두고 운영되는 대형 축산물종합처리장과의 공존문제도 우리 축산업의 건전한 생태계 조성 측면에서 바라보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소형도축장을 구조조정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위험의 분산, 양축농가들의 출하선택권, 상품의 다양성 등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고 함께 육성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