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산 목장우유 감산만이 해답일까?
국내산 목장우유 감산만이 해답일까?
  • 김재민
  • 승인 2020.09.2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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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농목장, 우유 가공과 유통 내부화 통해 원유 감산 문제 접근해야
가성비 중심 유제품에서 가치 중심 유제품 시장으로 전환 호재
목장형 유가공 등 새로운 유제품 생태계 구축에 낙농업계 관심 필요

 

낙농업계가 2002년, 2013년에 이어 또다시 잉여원유 문제로 내홍을 앓고 있다.

20여 년 전 220만 톤 가량 생산되던 원유는 205만 톤까지 줄어든 상황이며 유업계는 최근 10% 내외의 물량이 또 잉여 된다며 감축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낙농산업은 우유의 가공과 유통을 유업체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유업체의 요구에 마땅한 대응할 카드가 없다.

국내 우유 수요자들은 국내산 원유는 높은 가격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며 20년 넘게 생산 감축을 요구해 왔다. 대신 유제품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수입분유, 수입치즈 등을 대규모로 수입해 생산한 제품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3년 전 국내산 유제품 비중은 50%가 붕괴된 것도 국내산 원유는 감산하고, 수입량을 계속해 늘려온 결과다. 이번 유업체의 요구에 낙농업계가 응할 경우 국내산 유제품 비중은 40%대를 지키는 것도 어렵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남양유업은 계속된 판매 부진에 가장 많은 원유 감산요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업체에 의존한 낙농목장의 성장모델이 한계에 왔다는 이야기다.

 

유업체 의존 성장 방식 한계

우리 낙농업계는 사육기술은 배합사료회사에 의존해 발전시켰고, 유통은 유업체에 의존해 성장해왔다.

서울우유와 부산우유와 같은 낙농가들이 설립한 협동조합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 협동조합도 농가들이 생산한 우유를 전량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것을 버거워할 정도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우유협동조합의 경쟁사인 유업체들이 원가절감을 이유로 값싼 수입분유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통에 가격 경쟁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십여 개에 달했던 유가공조합들이 2002년을 전후해 구조 조정된 것도 경쟁사들이 수입 분유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을 때, 상대적으로 비싼 국내산 원유만을 이용해 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때 낙농가들은 우유를 생산만 하면 우유협동조합과 유업체들이 모두 구매해 주면서 우유 유통에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나 2002년 이후 시장개방의 여파로 유업체들이 원료를 수입품으로 조금씩 전환하기 시작했고, 낙농가들은 더이상 유업체에 의존한 성장전략을 폐기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유업체 감산의 감산만

유업체들이 저출산 등의 여파로 국내산 유제품의 판매가 감소할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구매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치즈와 같은 새로운 유제품 시장이 있기는 했지만, 새로운 시장은 유제품을 수입해 대응하면서 확대되는 유가공시장 규모와 비교하면 국내산 유제품의 설 자리는 계속 축소됐다.

낙농가들이 자조금을 거출해 국내산 유제품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국내산 원유만을 사용한 제품에 인증마크를 부여하는 등 국내산 우유에 홍보에 치중하였지만, 유업체들의 마음을 돌려놓는 데 실패했다.

 

우유 가공과 유통의 내부화 필요

낙농가들의 바람과 달리 유업체와 우유를 원료로 쓰는 식품업체들은 국내산 원유로 만든 제품을 기획하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데는 소홀했다 볼 수 있다.

시장이 완전히 개방된 상황에서 낙농가들의 바람처럼 유업체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업체를 농가들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하는 최선을 방법은 서울우유협동조합, 부산경남우유협동조합처럼 농가들이 유업체를 설립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들 대형 우유협동조합도 농가들이 생산한 우유를 전량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것을 버거워하는 상황이다. 인구구조의 변화, 소비트렌드의 변화 등으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우유소비를 늘리는 것도 한계에 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전략은 서울우유나 매일유업과 같은 대규모 유가공모델이 아닌 목장형 소규모 유가공사업을 통한 잉여원유의 제품화다. 기존 유가공기업들이 원유 구매를 줄이고 있으니 낙농가가 생산한 원유를 제품화할 주체는 사실 낙농가들 밖에 남지 않았다.

이미 유럽의 경우 많은 낙농가들이 유업체나 낙농조합의 박한 단가 때문에 스스로 우유를 가공해 시유나, 치즈, 버터 등을 만들어 유통하고 있다.

그 수가 절대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스위스는 소규모 유가공공장이 전국에 1500개 산재해 있고, 수출 치즈의 80%를 소규모 유가공공장들이 점유하고 있다. 프랑스도 400여 종의 치즈를 생산하는 소규모 치즈 공장이 전국에 산재해 있다.

스스로 우유 가공과 판매에 나서는 농가들이 새로운 우유 시장을 형성하면서 우유 가공과 유통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국내 낙농 산업도 2000년대 후반부터 목장형 유가공에 관심을 두고 진출한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지원할 전문적인 조직이 미비하고, 잉여원유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있는 주류 낙농업계와의 형평성을 이유로 생산량을 제한하는 방향만 생각할 뿐, 우유의 가공과 유통에 있어 농가들이 주체가 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도 잉여원유가 많이 발생할 때만 반짝 관심을 보일 뿐이고 유가공산업의 체질 개선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와 유업체의 입장은 유제품 수입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국내산 원유생산량을 감축하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연천애심목장의 수제 요거트

 

이제 목장이 브랜드인 시대

2000년대 후반,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목장형 유가공은 몇몇 자본력이 뒷받침되는 소수의 대형목장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농가들이 착유라는 고된 작업도 하면서, 유제품도 생산하고 또 이를 판매까지 하는 모델을 성공시키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진입한 농가들도 너무 고생스럽다는 이야기를 쉽게 꺼내 놓았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 들어 상황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소비자들이 대형 유업체가 가공 판매하는 유제품뿐만 아니라 목장에서 직접 가공한 유제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돌파하면서 가성비 중심의 유제품 시장이 조금씩 축소되고 가치 중심의 유제품 시장이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많은 지자체가 로컬푸드 운동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도 호재다. 이전에 목장형 유가공 사업을 하는 농가들은 각자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가치 중심의 소비가 이뤄지는 로컬푸드 직매장은 목장형 유가공제품의 주요 유통경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생산 측면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ICT 활성화에 정부가 대규모 예산을 집중시키면서 농가의 노동시간을 대폭 낮추고 생산성을 높이는 사업이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농가가 착유 등 고된 노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되면서 자연스럽게 우유를 가공하고 유통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목장이 브랜드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볼 수 있다.

낙농체험과 목장형유가공사업을 병행중인 화성시 또나따목장

 

유업체가 포기한 물량 이제 농가가 제품화 해야

매년 유업체 그리고 낙농진흥회는 낙농가로부터 구매하는 물량을 축소시키고 있다. 그럴 때마다 계속해서 낙농업을 지속하기 원하는 농가들은 값비싼 쿼터를 매입해 대응하면서 생산비를 과도하게 상승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비싼 원유가격은 우유 소비를 다시 제약하는 요인이 되는 악순환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이를 벗어나는 일은 잉여되는 우유를 직접 가공해 제품화 하고 판매하는 것이다.

낙농협동조합의 역할도 이러한 상황을 종합할 때 바뀌어야 한다. 농가가 생산한 원유를 집유해 유업체에 운송해 주는 사업은 중간에 유통비용만 증가시키는 요인이 된다. 그렇다고 덜컥 집유조합이 조합원들의 원유를 모두 제품화하기 위해 유가공공장을 건설하는 것은 막대한 투자비와 기존 우유와 차별화가 쉽지 않아 성공하기 쉽지 않은 모델이다.

원유의 집유뿐만 아니라. 농가가 생산한 유제품의 유통을 돕거나, 유가공 시설을 갖출 수 있도록 투자를 하는 등의 새로운 지원 모델을 만들어 내야 한다.

소비트렌드의 변화는 새로운 상품, 새로운 가치를 담은 상품에 대한 수요로 이어지고 있다. 기존 내셔날 우유브랜드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유제품 시장을 만드는데 전 낙농주체들이 관심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목장형 유가공이 뒷받침 되지 못한다면, 저출산이라는 사회경제적 변화를 이유로 우리 낙농산업은 계속 축소될 수 밖에 없다.

목장형 유가공사업을 하고 있는 삼민목장의 치즈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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