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지 못했던 "배추의 세계"
우리가 알지 못했던 "배추의 세계"
  • 김재민
  • 승인 2020.10.08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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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한 포기 가격이 1만 원을 돌파하며 물가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자 정부가 배추 수급 상황을 설명하며 여론 다독이기에 나섰다.

사상 최대의 긴장마와 태풍 때문에 여름배추의 수급이 원활치 못해 일어난 일이고 10월 중순부터는 가을배추 출하가 시작되니 조금만 참아달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배추의 몸값이 높아지니 배추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어 시류에 편승해 배추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번 전개하고자 한다.

 

채소 소비 1등 국가 그리고 배추

전 세계에서 채소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어디일까?

농촌경제연구원이 조사 발표하는 식품 수급표에 따르면 1인 1년당 식품공급량 중 채소 공급량을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2017년 기준 142.5kg이 공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일본은 102.2, 미국 113.9, 프랑스 97. 이탈리아 128.8, 독일 93.1 등으로 우리나라와 비교해 주요국들의 채소 소비는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2017년 기준, 나머지 국가 2013년 기준)

건강을 위해 채소를 많이 소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지만 우리나라의 채소 소비량을 고려할 때 이 같은 상식이 채소 소비가 많지 않은 미국 등 서양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채소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은 배추다.

배추는 보통 배추김치 형태로 가공되어 식탁에 오르고, 배추김치가 적당히 익으면 김치찌개, 김치전, 김치볶음밥과 같은 음식으로 거듭나고, 또한 여러 음식에 곁들여져 먹게 된다. 예를 들면 라면에 김치, 돼지 수육(보쌈)에 김치, 삼합 이런 식으로 소비가 되다 보니 그 양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사계절 공급체계 갖춘 배추

김치가 연중 소비가 되다 보니 배추는 1년에 산지를 바꿔가며 연중 공급될 수 있는 체계가 만들어져 있다.

크게 네 차례 공급이 되는데 겨울배추는 해남, 진도, 무안 등을 중심으로 9월 중순~9월 하순 정식 되어 12월 하순, 3월 중순까지 수확되어 공급된다.

봄배추는 나주, 예산, 아산, 영월 등지에서 1월 하순~4월 하순 비닐하우스 또는 노지에 정식 되어 4월 상순~7월 상순 수확되어 공급된다.

여름배추는 보통 고랭지배추라 불리는데 강원도의 높은 산간지대인 강릉, 태백, 정선, 평창 등에 3월 중순~6월 상순 정식 되어 6월 중순~10월 하순까지 수확되어 공급된다.

가을배추는 김장배추라고도 불리는데 해남, 춘천, 아산 등지가 주산지라고 하지만 이때는 전국 모든 밭에서 7월 하순~8월 중하순 정식이 이뤄져 10월 중순부터 12월 하순까지 수확되어 공급이 이뤄진다.

연중 배추가 가장 많이 공급되는 작기는 가을배추로 김장 수요에 맞춰 한반도 전체 밭에서 배추가 재배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가을배추는 약 130만 톤 정도가 공급되고 있고, 고랭지배추는 가을배추의 30% 수준인 39만 톤 정도가 생산된다.

2000년대 들어 김치냉장고가 각 가정에 설치되면서 김장김치를 연중 소비하는 패턴으로 저장되면서 각 작기별 가정에서의 배추수요는 예전만 못하나, 대신 김치공장에서 수요가 늘어나면서 배추의 수요는 매우 견고한 상황이다.

 

2010년 배추 파동과 2020년 배추 파동

2010년 8월 태풍과 폭우가 주요 고랭지 배추 산지를 강타하면서 배추가격이 천정부지로 높았던 때가 있었다. 배추 한 포기에 1만 원, 주요 마트의 채소 판매대에는 배추는 진열되지 못했을 정도로 배추 수급은 매우 어려웠으며, 지금의 코로나 19 관련 특집 보도처럼 배추 수급 상황과 관련한 뉴스 8월부터 11월까지 이어졌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 이야기로 물가가 매년 2~3% 상승했다고 가정할 때 2010년의 배추 1포기 1만 원과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돌파한 2020년의 배추 한 포기 1만 원의 무게는 달랐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배추 파동의 원인이나 배추가격이 높게 형성된 것 모두 같은데 당시 정부의 반응은 매우 달랐다는 데 있다.

2010년의 정부는 배추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중국산 배추까지 수입하는 무리수를 든 반면, 이번 정부는 8월부터 배추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갔지만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가 10월 들어서야 설명자료를 하나 내놓고 10월 중순 이후 가을배추가 출하될 거니 조금만 참으라는 메시지를 내놓는 것으로 대책을 마무리했다.

 

 

배추산업 생태계 산지유통상인이 주도

배추는 가장 많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품목이지만,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가격은 낮은 데 비해 부피는 매우 커 취급이 매우 까다롭다.

이로 인해 국내 최대 채소시장인 가락시장에서도 배추는 천덕꾸러기처럼 취급을 받아, 주요 청과법인들이 배추와 무, 대파와 같이 부피는 커 자리는 많이 차지하지만, 매출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품목을 취급하는 것을 꺼리기도 했다.

결국, 서울시와 농림부는 가락시장 내에 배추와 무를 전문으로 유통하는 청과법인 설립을 하도록 했으며 ‘대아청과’가 바로 가락시장에서 배추를 전문으로 취급하고 있다.

산지에서도 배추의 낮은 부가가치 때문에 배추 생산에 있어 농민들의 역할보다는 산지유통 상인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보통 판매를 목적으로 생산하는 배추는 농민들은 정식 정도만 담당하고 이후 관리와 수확, 유통은 산지 유통인들이 담당한다. 배추 출하 시 가격 등락에 따른 손실과 이익은 산지유통 상인들이 담당하며 농가들은 이른바 밭떼기라 하여 배추가 정식된 밭을 상인들에게 통째로 넘기는 식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배추가격의 등락이 워낙 심하다 보니 일어나는 현상인데, 그렇다면 산지 유통인들은 어떻게 해서 수익을 낼까 궁금해할 것이다.

바로 앞서 설명한 1년에 네 차례 배추 작기를 산지 유통인들은 모두 생산에 가담할 수 있지만 농민들은 밭에 묶여 있으므로 여러 차례 배추 생산에 가담할 수가 없다. 한번 실패하면 1년 농사를 망치기 때문에 위험 회피적으로 되지만, 산지 유통인들은 네 번의 작기 모두 생산에 가담하기 때문에 한 작기를 망치더라도 다른 작기에서 이익이 발생하면 손실을 만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올해와 같이 배추가격이 어느 작기에서 폭등하게 되면 산지유통인들 입장에서는 거의 로또를 맞은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되는 것이다.

국내 최대 고랭지배추 생산단지인 강원도 강릉의 안반데기 풍경
국내 최대 고랭지배추 생산단지인 강원도 강릉의 안반데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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