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기욱 남사화훼집하장 대표
[인터뷰] 이기욱 남사화훼집하장 대표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7.12.22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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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화훼산업 소비자 지갑부터 공략
모든 정책의 출발은 마케팅 “신규수요 찾아라”
생산·유통·소비의 건전한 상생환경 조성 필요
기존 인프라 활용하는 유통생태계 만들어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에 자리한 남사화훼집하장의 내부 모습.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에 자리한 남사화훼집하장의 내부 모습.

화분으로 가득한 비닐하우스에 꽃내음이 가득하다. 이른 아침부터 삼삼오오 모인 젊은 아낙네들이 화분가격을 묻느라 분주하고 아기를 안아 올린 젊은 엄마는 아이에게 꽃 이름을 일러주며 꽃구경에 여념이 없다. 도매상으로 추정되는 나이 지긋한 상인은 물건을 고르는 눈썰미가 예사롭지 않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손님들로 북적이는 모습에 화훼산업이 위기라는 말이 무색하다. 이 곳 남사화훼집하장은 도소매 전문 시장으로 전국의 화훼농가들은 이곳에 출하한다. 이곳은 개인이 운영하지만 분화시장의 허브와도 같다. 매출액은 연간 180억원 가량. 민간도매시장, 그 중 분화업계에선 손에 꼽히는 규모다. 수도권과의 접근성도 좋아 3~4월 주말만 되면 방문객이 2천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2015년 기준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분화류 재배농가수는 약 2600농가. 이곳에서 한번이라도 거래한 농가수만 1300여 농가에 달할 정도로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품질의 분화류는 여기에 모인다. 분화시장의 메카인 이 곳 남사화훼집하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기욱 대표. 그는 화훼산업의 위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200만원으로 시작 분화시장의 허브가 되기까지

이기욱 대표.
이기욱 대표.

남사화훼집하장은 1993년 7월 개장해 규모를 키워오다 2010년 2월 증설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8,000㎡ 규모 하우스만 12동인 이 곳은 겉보기엔 허름하지만 분화시장에 있어 우리나라 최대 규모다.

대부분 분화만을 취급하며 종사하는 직원만도 30여명이다. 이곳에서는 전국의 화훼농가가 위탁판매를 의뢰하면 도매상들이 이곳에 모여 대량 구매를 하고 꽃을 필요로 하는 화원이나 상점에 납품을 한다. 한마디로 도소매 물류창고와 다름없다. 2003년부터는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개방해 꽃 소비촉진에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기욱 대표는 “도소매를 전문으로 하는 이곳을 일반 소비자들에게 개방하는 데는 리스크가 따르기 마련”이라면서 “구매 물량이 많지 않은 데다 품질을 확인하기 위해 일일이 손으로 만져보는 등 리스크를 감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소비자들이 품질 좋은 꽃을 직접 눈으로 보고 구매까지 이어져야 화훼소비가 활성화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이곳을 개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도매 90%, 소매 7%, 일반소비자 3%의 비율로 매출이 발생하고 있다.

남사화훼집하장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결코 순탄치는 않았다. 이 대표는 30여년전 아무런 지역 기반없이 200만원으로 맹지를 임대해 하우스도 직접 제작하고 배수로와 땅을 일구면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본이 없어 일용직을 전전하며 자금을 모으고 차츰 규모를 늘려나갔다. 생산부터 유통, 하우스 제작 등 화훼와 관련된 일은 닥치는 대로 하다보니 지금은 잔뼈굵은 화훼전문가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대표는 “결국 유통은 상생이라고 생각한다”며 “화훼산업에 관여된 모든 플레이어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게 지금까지 집하장을 유지해온 노하우”라고 말했다.

하우스에 숨어있는 가성비의 과학

이 대표가 고안한 운반차량. 각 트레이의 높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고안했다. 또한 이 상태로 차에 싣고 내릴 수 있으며 따로 상하차를 하지 않고도 소비자들이 구경할 수 있도록 해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대표가 고안한 운반차량. 각 트레이의 높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고안했다.
또한 이 상태로 차에 싣고 내릴 수 있으며 따로 상하차를 하지 않고도 소비자들이 구경할 수 있도록 해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30여년동안 자생적으로 발전해 온 남사집하장 시설에는 남들은 모르는 비밀이 숨어있다. 12개 하우스 동이 마치 하나의 하우스처럼 관리되는 데 기존 하우스는 위에서 아래로 천막을 내려 개별 하우스를 분리해냈다면 이 곳은 아래서 위쪽으로 분리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 때문에 시야확보가 용이하고 마치 커다란 하나의 하우스처럼 개방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천장에 있는 차광막과 보온비닐을 연결해 동시에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 하나의 동력을 사용해 조절이 가능토록 한 점은 이 대표의 고민이 녹아있는 부분이다.(원래 차광막과 보온비닐을 각각 움직이게 하는 2대의 동력이 필요하다) 때문에 하우스별로 온도조절이 가능해 난방과 냉방이 화훼류 특성이나 품목별로 가능해졌다.

하루에 수 백대의 차량이 드나드는 집하장에도 과학이 숨어있다. 우리나라는 물류 특성상 1톤, 1.5톤, 2톤과 같은 소형 트럭이 주로 운송을 담당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집하장에 차량을 들어 올릴 수 있는 리프트를 따로 설치하지 않고도 콘크리트의 경사도만을 다르게 해 쉽고 빠르게 차들이 집하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고안했다.

이 대표는 물류는 결국 노하우라면서 직접 고안한 화훼운반차량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따로 상하차를 하지 않고도 고안된 운반차량은 국내 운송업계에서 주로 사용하는 소형 트럭에 맞도록 크기를 조절했다.

이 대표는 “별거 아닌 것 같은 시설이지만 그동안 시행착오를 수 십 번 경험하고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면서 “결국은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인프라조성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화훼산업이 풀어야할 첫 번째 과업 ‘소비촉진’

“이 사장. 내가 납품하는 화원 다섯 개가 문을 닫았어.”
취재를 하는 도중 한 도매업자가 이기욱 대표에게 건낸 말이다. 현장에서는 청탁금지법의 영향을 쉽게 체험할 수 있다. 도소매 상인들뿐만 아니라 화원을 운영하는 사장들은 매출이 크게 줄었다며 한목소리다.

이 대표는 “화훼농가와 이를 유통하는 사람들의 체감온도는 다르지만 집하장 자체 통계에 따르면 분화시장의 30%가 순간적으로 가라앉았다”면서 “난시장의 경우 더욱 심각해 현장 도매업자들은 50~60% 정도 매출이 떨어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전했다.

2005년은 국내 화훼시장의 전성기였다. 당시 생산액은 1조원에 육박했으며 국민 1인당 화훼류 소비액도 2만원을 뛰어넘었다. 청탁금지법 영향이 아니더라도 이후 화훼류 소비는 지속적으로 줄었으며 김영란법은 화훼산업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 대표는 정부정책에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그동안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 중 소비를 활성화하는 정책은 많지 않았다”면서 “화훼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소비를 촉진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들이 쏟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정부는 농업유통과 관련된 사업 대부분을 대규모 시설을 증축하는데 집중했다. 시장의 개방폭이 넓어지면서 국내 산업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명목이었다. 인프라를 구축하는데는 막대한 비용이 들고 그에 상응하는 소비가 뒤따라야 수익을 맞출 수 있다. 현재 시설을 규모화하는데 막대한 자본을 들인 영농조합법인 중 성공한 법인은 손에 꼽는다. 수익성 분석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대규모 시설 증축이나 단지조성은 리스크가 매우 큰 사업”이라며 “특히 소비시장이 얼어붙은 화훼산업이 경우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현실에 맞지 않아 독이든 성배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남사화훼집하장의 다육식물 코너. 수많은 다육식물이 소비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남사화훼집하장의 다육식물 코너. 수많은 다육식물이 소비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각 유통주체간의 건전한 경쟁 필요

화훼산업의 꼬인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기존 유통을 인정해주는데서 시작해야 된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앞서 남사화훼집하장의 시설을 설명한 이유도 수 십 년간 체득한 노하우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다. 노하우는 단순히 시설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유통을 효율화시키고 견고하게 만든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 화훼유통이 굉장히 비효율적으로 보이겠지만 저마다의 역할이 분명히 있다”면서 “특히 생물을 유통하는 일은 20~30%의 재고를 부담하고 있는 등 리스크를 감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지금의 유통질서가 혼란해지면 중간 유통체계부터 무너지면서 리스크를 감당할 주체들이 사라지고 결국 피해는 농가들과 소비자들에게로 전가된다는 설명이다.

그가 생각하는 올바른 유통정책은 현실을 인정하고 새롭게 인프라를 건설하기 보다는 그동안 자생적으로 발전해 온 유통 인프라를 견고하게 가다듬는 일이다. 법정도매시장과 민간도매시장은 선의의 경쟁을 통해 발전하면서 농가들에게 자유롭게 출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모든 플레이어들이 윈-윈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보자는 것이다. 물론 소비확대를 위해서는 서로가 협력하고 중지를 모아야 한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진짜 재밌는 사실 알려줄까요. 이 꽃들은 같이 있으면 더 잘 크더라구요. 학술적으로 증명되진 않았는데 30년동안 꽃만 관찰하다보니 그래요. 화훼산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지금이 화훼산업의 존폐위기라면 상생하지 않으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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