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1] 국내 돼지 브랜드의 발전과 과제
[특집1] 국내 돼지 브랜드의 발전과 과제
  • 황병무 편집위원
  • 승인 2020.11.03 15:22
  • 호수 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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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돈육브랜드의 시작 그리고 실패
좀 더 차별적 요소 접목 위해 도전해야

*본 기사는 농장에서 식탁까지(통권 37호) 2020년 10월호 기사입니다.

브랜드의 정의

브랜드(brand)는 기본적으로 소유와 차별화의 개념이 있다. 중세 유럽이나 19세기 미국에서 기르고 있는 많은 소를 구분하고 자신의 소유라는 표식으로 불에 달군 인두로 소의 엉덩이에 표식을 남긴 것이 브랜드의 시초라 한다. 서양에서는 소뿐만 아니라 자신의 소유물이나 상품에 대장간에서 불로 만든 철을 달구어 낙인을 찍어 소유권을 표시하는 습성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동서를 불문하고 죄인의 얼굴에 표시를 하여 사회적으로 차별적인 거리두기를 하였는데 ‘낙인(烙印)을 찍다’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면서 ‘악’과 ‘선’과의 차별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브랜드 또는 상표라는 용어는 대단히 포괄적이고 종합적이 의미를 갖는다. 학문적으로는 「판매자 또는 한 판매자 집단의 상품 및 서비스를 다른 경제자의 것과 구별해서 표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단어, 문자, 일군의 단어 및 문자, 디자인 흑은 이들의 결합체」라고 정의 한다. 우리나라 상표법에서는 「상품을 업으로써 생산·제조·가공·증명 또는 판매하는 자가 자기의 상품을 타업자의 상품과 식별시키기 위하여 사용하는 기호·문자·도형 또는 이들의 결합으로서 특별히 현저한 것」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경제학적으로 브랜드의 가치는 초과 수익력으로 표현된다. 타사와 완전히 동일한 기능·성능을 가진 상품을 판매하는 경우, 타사보다도 높은 가격을 매겨도 판매할 수 있는 것은 브랜드의 신용력에서 나오는 가치이다. 타사보다 높게 형성된 가격의 차액이 초과 수익력이 된다. 따라서 기업은 브랜드를 회계적으로 인식하여 브랜드의 자산 가치(Brand Equity)를 중시하여 그 가치를 높이는데 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것은 종종 기업의 영업가치(goodwill)와 결부되어 평가된다.

 

한편 소비자는 어떤 상표를 인지하고 그것을 구매와 연계시켜 자기만족을 이루는 소비행위를 하게 되는데, 소위 명품 브랜드를 무차별 구매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식품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소비자들은 식품기업의 고도의 광고 기법에 노출되면서 자신의 구매 체험과 상승 작용을 하여 특정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생겨나게 된다. 따라서 기업은 자신의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각종 수단을 통하여 소비자와의 접촉을 강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브랜드의 정의와 설명을 참고하여 필자 나름대로 축산 식육 브랜드를 정의한다면 “혈통과 사료 및 사양프로그램을 통해 차별성을 가지고 사육된 축산물을 위생적인 가공 단계를 거쳐 상품(식육)화 하고, 그것이 시장에서 타사의 식육상품과 차별성을 가지는 명칭이나 상징체계에 대한 총체”라고 정의하고 싶다.

 

국내 돼지 브랜드
▲ 국내 돼지 브랜드

브랜드 돈육 시장의 형성 경위

우리나라는 7,80년대의 고도 경제 성장기를 거치면서 국민 소득의 신장으로 가계의 가처분 소득액이 늘어나 소비의 확대로 이어졌으며 기업들의 상품광고가 봇물 터지듯이 시작되었는데, 소비자의 선택권이 강화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의 육류의 소비가 대폭 늘어난 것도 당연한 현상이었다. 1인당 육류 소비량을 보면 ‘70년에 5.3kg(돈육 2.6kg), '80년에는 11.3kg(돈육 6.3kg), ’90년에 19.9kg(돈육 11.8kg), 2000년에 31.9kg(돈육 16.5kg)으로 늘어났는데 이 해부터 일본의 육류 소비량(28.4kg)를 넘어서는 육류 소비국이 되었다. 한편 돈육이 주 원료가 되는 햄, 소시지 등의 축산가공품은 요리 시 사용의 편리성으로 도시락 반찬용으로 인기를 끌며 유례없는 호황기를 이루며 각사의 육가공 상품브랜드가 공중파를 타고 난무했다. 축산가공품은 소비자에게 호소해야 판매로 이어지는 상품 특성상 돈육 브랜드보다 일찌감치 제조 회사별 상품 브랜드화가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생육의 돈육 브랜드가 시장에서 유통된 시기는 언제부터였을까? 대략 90년대 초가 그 출발점이다. 축산물의 생육 브랜드의 등장은 정부의 축산물 관련 유통 제도와 냉동 냉장 설비의 발전과 관계가 깊다. ‘90년을 전후하여 정부는 축산물의 장기적 발전 도모와 유통구조 개선을 위해 일련의 정책을 시행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축산물 부위별차등가격제와 도체등급제의 실시이다. 또한 위생적인 축산물 유통을 위해 난립하던 영세 도축장의 구조조정 정책과 HACCP 제도 도입 및 '92년부터 선진국형 권역별 축산물 종합처리장(LPC)의 건립도 추진되어 ’94년 축협중앙회의 김제종합육가공 공장을 필두로, 한냉 중부공장, 안성 LPC, 군위 LPC 등이 건립되었다. 이 무렵에는 수입개방의 확대와 더불어 국내산 축산물 가격 하락을 반복되며 개별 축산농가의 불만이 커지기 시작하자 대기업의 축산업 진입 금지, 전업농의 육성 정책도 병행된다.

한편 유통 측면에는 재래시장, 동네 슈퍼(정육점 포함)에서 주로 팔리던 축산물이 대형 할인점 등 선진국형 유통업태가 속속 출현하면서 냉장 설비가 완비된 위생적인 시설 내에서 팔리게 되었다. 소위 축산물 유통의 콜드 체인화가 시작된 것이다. 단순히 축종만 구분하여 붉은 형광등 빛 아래 소비자가 요리 용도를 말하면 한 근, 두 근 잘라 팔던 축산물이 밝은 조명이 비치는 냉장 쇼케이스 안에서 부위별로 진열되어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시대로 변한 것이다. 생산 가공 및 유통 단계뿐만 아니라 각 가정에도 냉장고를 보유함으로 식육의 위생관리 및 보관 이용도가 획기적으로 증대되었는데, 이러한 냉장시설의 발전은 육류 소비의 확대와 브랜드 돈육의 유통에 크게 기여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브랜드 돈육 유통 확대 요인의 하나로 눈여겨 볼 점은, 국내 돼지의 사육이 증가하면서 저수요 부위의 발생으로 인한 부위별 소비 불균형이 양돈산업의 발전에 장애가 되면서, 정부는 이를 해결하고자 돼지고기 수출로 정책 방향을 돌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도체등급제 실시 등의 일련의 정책을 통해 양돈농가에게 도체중 110kg의 수출 규격돈을 장려하게 된다. 생체중 90kg에 익숙했던 돼지의 유통시장에 일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정부의 정책과 맞물려 안심, 등심, 후지 등 비수요 부위의 해소책으로 대일 돈육수출이 활성화 되면서 국내 시장에서는 인기 부위를 경쟁적으로 팔기 위한 돈육의 브랜드화가 본격적으로 막을 열었다. 돈육의 대일 수출은 일본의 돈육 수입의 47%를 차지하던 대만의 구제역 발생(‘97년)으로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은 수출을 통해 비수요 부위를 해소하며 ’98년에는 물량기준으로 88,325톤이라는 최대 수출실적을 달성하고 ‘98년에는 금액기준으로 332백만 불이라는 최대의 수출실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양돈산업의 발전을 선도했던 돈육의 수출도, 2000년 우리나라에서의 구제역 발생으로 아쉽게도 수출이 전면 금지되었으며, 그 여파로 국내 시장에서의 돈육브랜드 각축전은 더욱 심화되었다. 특히 90년대 초에 대형 유통점의 등장으로 업체별 이전구투의 양상을 보이며 피를 말리는 돈육 브랜드 대전이 시작되었다. 소비자와 유통을 선점하기 위해 업체들은 우후죽순 격으로 제각기 특성 있는 돈육브랜드를 추진하여 브랜드의 춘추전국 시대가 열린 것이다. 더구나 2004년 2월 정부의 축산물 브랜드 육성 대책에 힘입어 축산물 관련 브랜드가 가장 많았을 때는 2005년 기준 845개였으며, 2014년 기준 한우 213개, 돼지 218개, 닭 48개, 계란 66개, 기타 45개였다. 가히 브랜드의 제자백가 시대라 할 만하다.

아무튼 대형 유통점의 등장과 더불어 돈육수출은 우리나라 양돈업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며 발전을 선도했다. 수출 조건에 맞는 돈육의 생산을 위하여 식품 안전성이 보장되는 돼지의 사육은 물론이고 위생적인 도축·가공 과정이 필수였는데, 그러한 여건이 구축되면서 브랜드 돈육의 기반이 조성되었다고 볼 때, 돈육수출은 브랜드 돈육의 기반 조성에 큰 역할을 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브랜드 돈육의 출시 유형

돈육 브랜드의 탄생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사료회사가 사료의 판매 확대를 목적으로 육가공업체와 제휴하여 브랜드를 개발하는 경우이다. ‘92년 퓨리나사료에서 출시한 퓨리나의 ’린포크‘가 그 효시이다. 얼리지 않은 돼지고기의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브랜드 돈육의 효시인 퓨리나의 '린포크'. 이후 퓨리나는 디자인포크로 다시 시장을 노크한다.
▲ 브랜드 돈육의 효시인 퓨리나의 '린포크'. 이후 퓨리나는 디자인포크로 다시 시장을 노크한다.
▲ 1세대 돈육브랜드인 도드람포크의 초기 신문 광고
▲ 1세대 돈육브랜드인 도드람포크의 초기 신문 광고

출시 당시는 브랜드 돈육에 대해 생소한 시장 환경, 돼지 가공업체의 영세성, 소비자 반응 미약 등으로 크게 발전하지는 못했다. 동회사는 ‘94년에 디자인포크로 다시 시장을 노크하며 브랜드 돈육 시장의 선발 주자 역할은 톡톡히 하였다고 생각한다. ’93년에 출시된 선진의 ‘크린포크’도 이 유형에 해당된다 하겠는데, 자체 농장과 육가공장을 가지고 당시 시장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하였다.

두 번째로 돈육 가공유통회사의 브랜드 추진이다. ‘93년에 출시된 대상의 ’하이포크‘와 ’96년 한냉의 ‘생생포크’, ‘96년 롯데의 후레쉬포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대상의 ‘하이포크’는 돈육 냉장육 유통에 새로운 장을 쓸 정도로 시장에서 인기를 끌며 냉장 돈육의 대명사 역할을 했다.

세 번째로 생산자 단체에 의한 돈육브랜드 출시이다. ‘92년 도드람유통의 ’도드람포크‘, ’95년 축협중앙회 목우촌의 ‘프로포크’ 동년 부경양돈의 ‘포크밸리’, 2004년 대충양돈의 ‘포크빌’ 등이다. 목우촌은 ‘95년 김제종합육가공공장을 완공하고 목우촌 브랜드를 모브랜드로 하여 사업을 시작하였다. 김제육가공공장은 최초로 건립된 축산물종합처리장(LPC)으로서 냉장육 위주의 대일돈육수출, 잔여부위 햄·소시지의 생산, 프로포크를 통한 냉장육 브랜드육 유통으로 사업 효율성을 높이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하였다. 아울러 가맹점을 통한 프로포크 판매로 소매판매까지 병행하는 한편, 대형 유통업체로부터 브랜드 돈육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으며 브랜드 돈육시장을 선도하였다. 100% 국내산 냉장 돈육을 원료로 한 육가공품과 돈육의 품질 수준을 한 단계 높이며 소비자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으며 이후 건립되는 LPC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다.

네 번째로 유통점이 주도하는 돈육 브랜드의 출시이다. 대형 유통점은 브랜드 축산물의 판매를 통하여 터득한 사업 노하우를 바탕으로 협력업체를 통한 PB브랜드 돈육을 출시하게 되는데 직접 육가공공장을 만들어 브랜드 돈육 상품을 자체적으로 조달하는 단계까지 발전하게 된다. 이마트의 이플러스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대형 유통점의 PB 브랜드 돈육은 가격 경쟁을 더욱 부채질하며 브랜드 돈육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대형 유통점은 돈육뿐만 아니라 여러 품목에 자사 PB상품을 확대하며 경쟁적인 저가 판매 공세는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다.

브랜드 돈육의 출시는 기본적으로 3통에서 출발한다. 돼지의 혈통, 사료, 사양프로그램 등을 통일하여 추진하기 때문에 양돈계열화 사업이 전제된다. 따라서 업체들은 너도나도 양돈계열화사업에 뛰어 들었다. 당시 브랜드 돈육이 시장에 넘쳐나면서 수평계열화니 수직계열화니 하는 용어가 업계에서는 유행어처럼 회자되었다.

 

▲ 지역과 지역 특산물을 결합한 브랜드.
▲ 지역과 지역 특산물을 결합한 브랜드.

2000년에 접어들면서 소비자의 건강지향 열풍을 타고 기능성을 강조한 브랜드 돈육이 나타나기도 했는데 원조 격인 보성녹돈(녹차먹인돼지)을 필두로 황토포크. 의성마늘포크, 문경약돌돼지, 인삼포크 등의 브랜드 돈육이 시장에 나와 소비자의 눈길을 끌었다. 이중에 의성마늘포크는 의성군이 주도가 되어 개발한 돈육브랜드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제주도의 브랜드 돈육이다. 2000년에 발생한 구제역으로 소비자의 돈육에 대한 막연한 불신감이 팽배했던 시장에서 유일한 청정지역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마케팅에 활용한 것이 제주도산 돼지이다. 제주도는 재래종 흑돈이 있다는 것과 청정지역이라는 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도새기 축제를 2003년부터 매년 개최하여 도차원에서 브랜드를 홍보했다. 대형 유통점에서도 제주도산 돼지코너를 별도 만들어 판매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다른 브랜드돈육보다 고가로 판매해도 소비자에게 인기가 있었고 그런 인기를 등에 업고 제주도산 돼지를 취급하는 음식점도 여기저기 등장했다. 제주도의 브랜드 돈육은 제주도라는 명칭 자체가 후광이 되어 브랜드 돈육의 한 획을 그었다.

 

2. 협동조합 브랜드 효시 목우촌 프로포크

프로프크 초기 깐깐한 품질관리로 명성

소비자 트렌드 변화 감안, 브랜드 업그레이드 필요

‘95년에 개장한 축협중앙회의 김제육가공공장은 정부의 대일돈육수출 정책사업의 일환인 축산물종합처리장(Livestock Packing Center, LPC)으로서는 최초로 건립된 공장이었다. 당시의 시장상황을 살펴보면 돼지고기 시장에서 비수요부위의 적체 현상이 심화되고 있었고, 영세 도축장의 난립으로 인한 위생상의 문제와 축산물의 부정유통(물먹인 소, 수입 축산물의 둔갑판매 등)으로 소비자의 축산물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축산물유통구조 개선과 관련된 일련의 정책을 추진하게 되는데, 유통의 투명화를 위해 부위별차등가격제, 도체등급제를 실시하는 한편, 권역별 LPC 설치로 위생적인 육류 유통 유도와 돈육수출을 통한 비수요 부위의 해소를 도모하고자 했다. 당시 브랜드 돈육으로는 ‘92년 퓨리나의 린포크를 시작으로 ’93년 대상의 하이포크가 시장에서 냉장육 유통의 물꼬를 트고 있었다.

축협중앙회는 정부의 축산물유통구조 개선 시책 추진과 관련하여 전문 인력의 필요성을 일찌감치 인식하여 ‘88년부터 일본 군마현에 있는 일본전국식육학교에 매년 1~3명을 파견하여 전문 인력을 육성하여 왔으며, 특히 김제공장 개설에 대비하여 10명의 인력을 덴마크의 협동조합과 제휴하여 육가공전문 학교에 6개월 과정으로 농가부문, 도축공정 부문, 식육 및 육가공 생산 부문, 판매부문의 2인 1조로 5개 부문에 대한 특별연수를 실시했다.

‘92년부터 추진하기 시작한 김제육가공공장 건립에 대한 정부와 업계의 관심은 비상했다. 이에 축협중앙회는 유통부내에 전담 TF팀을 설치하고 본격적인 사업추진에 착수했다. 단순히 위생적 도축 가공하는 공장이 아니라 비수요 부위을 처리하는 육가공시설 설치 병행하여 육가공 시장에 진출하기로 방향을 정했다. 육가공 시장은 푸시(push) 마켓이 아니라 풀(pull) 마켓이어서 상품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필요했으므로 ’94년에 목우촌 브랜드를 개발하게 된다. 당시 조직내부에서도 생소했던 브랜드와 마케팅 개념을 사업에 처음으로 도입한 큰 사건이었다. 목우촌 브랜드는 장기적 사업 확장성을 감안하여 여러 사업군류에 상표등록을 하여 가맹사업, 사료사업, 요식업 등 전방위로 사업을 진출할 수 있도록 대비하는 한편, 일본수출을 통한 한식 시장 개척을 위해 일본에도 상표등록을 마쳤다. 축협중앙회는 종돈사업소, 사료공장 등 양돈계열화사업을 추진하는 인프라가 다 갖추어져 수직계열화의 강점도 있어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목우촌 사업은 철저히 민간기업 방식으로 추진되었으며 목우촌 브랜드를 모브랜드로 하여 프로포크 돈육을 ‘95년에 출시하기에 이른다. 프로포크라는 상표명은 사육단계부터 도축·가공·유통단계에 이르기까지 ’전문가(professional)'들이 위생과 품질에 신경을 써 까다롭게 만든 돼지고기라는 의미이다.

 

목우촌 프로포크의 차별화 요소는 기능성 성분인 카르니틴이 함유한 사료를 공급하고 일본 바이어가 요구하는 비육후기 기간 설정 사양프로그램 수행, 도축 시 경동맥 절단 및 방혈 후, 3분 이내 내장적출 하고 -25℃의 냉각터널을 통과시켜 지육 심부온도를 7℃로 관리하여, 등심과 안심의 선도가 탁월했다. 돼지 냄새나 오염의 한 요인이 될 수 있는 방혈도 자체 개발한 저전압에 의한 도살로 돈육의 품질을 크게 향상시켰다.

 

▲ 농협목우촌의 프로포크 초창기 광고
▲ 농협목우촌의 프로포크 초창기 광고

이런 차별화된 상품으로 안심, 등심은 일본바이어가 지정한 인스펙터가 김제공장에 상주하다시피하며 작업 스펙의 확인과 특히 육색을 세심히 관리하여 거의 전량을 냉장육으로 수출하게 된다. 공장 개장 후, 대만 구제역 발생의 영향 등으로 한국산 돈육에 일본 바이어의 관심이 돌려지자 국내에서 가장 많은 냉장 돈육을 일본에 수출하는 쾌거를 이룬다. 대일돈육 수출을 성과를 잠깐 살펴보면 공장 개장 이듬해인 ‘96년에는 수출 1,000만불을 달성하고 ’97년에는 국내 최초로 일본후생성 검역 면제 업체로 지정받았는데, 김제공장의 도축가공 시설 및 식품안전성 품질관리 시스템의 우수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대일돈육 수출에 날개를 단 목우촌은 ‘98년에 수출 3,000만불이라는 최대의 성과를 내고 농림부로부터 농산물수출 금탑상을 수상하게 된다.

목우촌 프로포크는 이러한 외부적인 수출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국내 시장에서 난무하는 브랜드 돈육과의 경쟁우위 확보를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소비자에게 신뢰를 구축하는 국내시장에서의 브랜드 내실화가 필요하다고 내다보고 ‘98년 ISO9001인증(한국생산성본부), ’99년에는 목우촌 프로포크에 KS인증(한굯식품개발연구원), 2000년 업계 최초 도축장 HACCP 작업장 내정 등을 추진하며 품질경영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목우촌 프로포크의 품질관리는 도축 가공 등의 첨단시설에만 국한되지 않고 품질관리의 첫 출발지인 농장관리를 위해 공장 내부직제에 농가지원부를 설치하여 지역별 담당자 지정에 따른 농가 밀착 지도·지원을 통해 철저한 품질관리를 선행했다. 김제공장으로부터 반경 50~100km 이내에 있는 농가에서 원료돈을 조달하여 수송 스트레스를 최소화 하였고 계류장에 상하로 움직이는 데크를 설치하여 하차 시 발생되는 골절이나 스트레스 방지 등 세심한 관리를 하고, 2000두를 계류할 수 있는 넓은 계류장에서 1일간 분무 샤워를 해주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여 PSE돈 발생을 최소화 했다. 아울러 식품 안전성을 위해 원료돈 출하 일정 1주일 전에 농가에 항생물질 잔류에 대한 오줌 간이 검사를 실시하여 합격한 농가만 출하하도록 사전 관리를 하고, 도축 후에는 농장 군별 샘플을 품질관실에서 항생물질 잔류여부를 분석한 리스트를 일본 바이어에게 제공하여 신뢰도를 높였다. 당시 김제공장의 품질관리 시스템은 일본 바이어가 부러워할 정도였고 국내외의 견학 희망자가 몰려들었다. 특히 당시 주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김제육가공공장 패키지 견학 코스는 소비자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고, 브랜드 돈육에 대한 인식 전환 유도와 목우촌 프로포크 충성고객을 육성하는 데 나름대로 일조를 하였다고 생각한다.

 

한편 국내에서 최초로 도체등급제에 의한 농가정산의 실시로 정부 정책의 조기 정착 및 농가 사육의지 제고를 도모하였고 도체등급제에 의한 A·B등급만 엄선하여 프로포크에 제공하였다. 목우촌의 돼지구매 시 등급제 정산은 원료돈 품질관리 체계와 맞물려 농가의 소득 증대로 이어져 자신 있게 사육한 농가들이 김제공장으로 출하가 몰리면서 A·B등급율이 최고로 출현하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이러한 철저한 품질관리를 통해 생산된 프로포크를 소비자에게 적접 공급하는 유통전략도 추진하여 국내산 축산물만 파는 목우촌 가맹점 사업을 추진한다. 수도권 위주로 설치된 목우촌 가맹점은 국내산 축산물에 대한 신뢰도 제고 및 목우촌브랜드의 인지도 제고에 첨병 역할을 하며 그 세를 넓혀갔다. 아울러 프로포크는 대형 유통점에서 내부적으로 실시하는 공급사별 블라인드 시식 테스트에서 항상 1위로 선정되는 등 식육 바이어들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목우촌 프로포크는 초기 브랜드 돈육 시장에서 참신한 바람을 일으키며 시장의 브랜드 돈육간 품질 경쟁에 불을 댕겼다. 프로포크의 철저한 품질관리는 농가의 후기사료 사용, 휴약기간 준수, 농장 출하의 엄격한 상하차관리 및 수송관리에까지 농가가 신경을 쓰게 만들었으며 도체등급제에 의한 정산으로 사육 농가들에게 고등급 출현을 위한 사양관리 의욕을 일깨웠다. 목우촌 김제육가공공장의 첨단 도축가공 시설은 그 후에 건립되는 권역별 축산물종합처리장(LPC)에 큰 영향을 미쳤고 대일 돈육수출을 통한 돼지고기 품질 제고로 국내산 돼지고기의 품질향상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많은 브랜드 돈육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름만 붙이는 돼지 브랜드가 아니라 더욱 다양해지고 까다로워진 소비자의 요구를 좀 더 세밀히 분석하여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브랜드 돈육이 출현할 때다. 앞으로 점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동물복지와 나만의 차별성의 가지는 브랜드 돈육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

 

3. 일본의 브랜드 돈육

소규모지만 정밀한 차별화 요소로 무장한 것이 특징

일본 양돈 소사

일반적으로 돼지의 가축화는 수렵채취에서 농경 정착 생활이 시작된 13,000~12,000년 전으로 보고 있는데 일본에서도 석기시대의 고분에서 그 흔적이 나오고 있다. 자생의 멧돼지를 가축화 함으로서 재래종 돼지가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6세기 중엽에 도래인에 의해 돼지를 사육했다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나온다. 562년에 고려를 원정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유제품의 제법이나 돼지가 도입된 것으로 백저(白猪)의 미야케(屯倉, 일종의 창고)을 두고 돼지를 키우는 도래인에게 후백저(白猪)의 비토(史) 성(姓)을 하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속일본서기』에 732년 7월 정미(丁未)의 항목에 「관내 백성의 개인 가축인 돼지 40두를 산야에 방목하다」라고 기록된 것에서도 돼지의 사육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토쿠사와(德川)시대(1603~1868년)의 양돈의 특징은 나가사키나, 홋카이도의 하코다테 등 외국인과의 왕래가 왕성한 곳에서는 재류 외국인에 의해 양돈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며 이것이 각 현으로 전파되는 양상을 보인다. 물론 오키타와현이나 카고시마현이 자생적인 양돈의 역사가 긴 곳도 있다. 1827년에 사토 노부히로(佐藤信淵)의 『경제요록(經濟要錄)』에 「근래에 돼지가 상당이 많아졌다. 번주의 저택 안에 키우는 백색털의 돼지는 특히 상품이다」라고 언급하고 있어, 소규모이지만 돼지의 사육이 곳곳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들의 양돈은 그 고기를 취해 요리에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고 일반적인 양돈의 시작은 농경에 필요한 비료를 얻기 위한 방편이 대부분이었다.

 

메이지(明治)시대(1868~1912년)는 부국강병을 일환으로 축산지도소를 설치하여 양돈장려 정책을 정부차원에서 추진하였다. 이 시기에 육종장이 여러 곳에 생기면 외국의 종돈을 도입하여 사양시험과 번식사업을 전개했다. 이리하여 1872~1873년 사이에 전국적인 양돈 열기가 투기로 변해 일시적인 쇠퇴기를 맞이하기도 했으나 양돈사업에 대한 반성을 통해 다시 진흥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1889년 2월 22일 관보에 따르면 전국 27개현 양돈사육두수가 41,902두였는데, 카고시마현 이 63.6%, 치바현 16.2%, 나가사키 5.8%, 토쿄 3.6%로 4개 지역이 88.2%를 점유하여 지역적 편중이 있었다. 양돈업이 부흥하는 것은 서양식의 유행과 일본의 대륙 진출로 군급식 공급의 수요 확대와 맞물리며 발달이 촉진된다. 1899년에는 제국양돈협회가 설립되었고, 1902년에는 종돈을 구매하여 조합원에게 불하하고 그 자돈을 구매하는 최초의 양돈구매조합이 설립되었다. 또한 이러한 민간 차원의 양돈업에 대하여 정부의 행정측면에서 1900년 5월에 최초로 종돈을 영국에서 21두(요크셔와 버크셔) 수입하여 양돈업 번성의 기반을 조성한다.

 

▲ 일본은 불교문화 영향으로 메이지유신 이전 1000년 동안 육식을 즐기지 않았다. 메이지천황이 1872년 육식을 허용한 이후 6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후 돈까스가 소비되기 시작했는데, 돈까스는 채식주의자인 일본인들이 육식을 배운 음식이라 할 수 있다.
▲ 일본은 불교문화 영향으로 메이지유신 이전 1000년 동안 육식을 즐기지 않았다. 메이지천황이 1872년 육식을 허용한 이후 6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후 돈까스가 소비되기 시작했는데, 돈까스는 채식주의자인 일본인들이 육식을 배운 음식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메이지(明治)시대에는 일본의 식육역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일어난다. 일본은 불교가 전래되면서 오랫동안 육식금지령에 따른 식육의 금기로 고기를 안 먹는 민족으로 알려졌지만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고기를 먹는 전통은 예로부터 있었다. 다만 공공연하게 먹는 것은 엄격히 제한되었지만, 수렵을 통한 멧돼지, 사슴, 조류 등의 고기는 보양식으로 일반서민에게 음성적으로 유통되고 있었다. 그러나 나라(奈良)시대에 불교가 일본에 전파되면서 675년 텐무(天武)천황에 의해 육식금지령이 내려진다. 길고 긴 식육의 단절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맥이 끊긴 것이 아니라 불교의 종교적 입장과는 거리가 먼 일반서민들은 수렵한 고기를 먹고 있었고, 정권 실세들도 외국과의 교역에 따른 육식이 면면히 이어져 왔다.

오랫동안 일본 사회를 지배했던 사회 통념상의 육식의 금지가 메이지(明治) 시대에 접어들면서 크게 바뀌게 된다. 1869년에 츠키지(築地)에 반민반관의 식품회사인 「우마(牛馬)회사」가 설립되어 축육의 판매를 개시했다. 1870년에 메이지(明治)유신의 주역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서양 문물의 견문했을 때 서양인의 체력의 강인함과 사회적 부강이 육류를 먹는 것에 기인한다고 생각하여 『육식지설(肉食之說)』을 집필하며 육식장려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이해에 이미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메이지(明治)천황이 1872년에 궁내에서 소고기를 시식하며 육식금지령을 폐지를 선언하기에 이르고 1877년까지는 궁중의 정식요리가 서양요리로 대체되기도 했다. 이 선언을 계기로 일본은 1200년간의 육식금지가 폐지되면서 일반 대중들의 음식에서도 본격적으로 육식이 도입되기 시작한다. 이 무렵의 토쿄의 소고기집이 558개소나 되었다고 하며 신문이나 잡지에 서양요리가 빈번히 소개되면서 육식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사회 전반에 일어난 것이다.

이렇한 사회적 배경을 배경으로 출발한 양돈업은 1945년 종전을 거쳐 고도 경제성장기, 수입자유화, 가축질병 발생, 버블경제기 등의 격변의 시기를 거치며 2018년 기준 현재 세계 17위 규모인 9,189천두를 사육하고 있다.

일본 양돈의 특징은 일본 특유의 서양문물의 적극적 도입에 따른 육식요리의 보급에 따른 소비 환경이 조성되었고, 일찍이 1877년부터 조성된 햄 소시지 등의 돈육가공품 시장, 시장대륙진출을 위한 대외 전쟁 시 군급식을 통한 양돈업 및 돈육가공사업이 발전한 특이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68년 동경올림픽을 전후한 고도의 경제성장기를 통한 육류소비 확대 등을 거치면서 돼지 한 마리에서 나오는 부위들의 큰 소비 불균형이 없이 성장해 온 점이다. 이런 점은 우리나라 양돈산업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 일본의 모쿠모쿠팜은 우리나라 양돈농가들이 일본으로 견학을 가면 꼭 들리는 돼지체험목장이다.
▲ 일본의 모쿠모쿠팜은 우리나라 양돈농가들이 일본으로 견학을 가면 꼭 들리는 돼지체험목장이다.

일본의 브랜드 돈육

일본에서의 브랜드 돈육은 자체 농장에서 개량을 통해 육종을 차별화 하고 사육단계나 먹이 등을 차별화하여 브랜드 돈육을 생산하는데 공식적인 인증제도는 없고, 다만 생산자 단체에서 일정한 기준을 만들어 그것을 지키는 경우 브랜드 돈육으로 생산하여 판매하고 있다. 생산자의 자체기준에는 사료, 등급기준, 출하일령 등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으며, 특이한 점은 돈육의 마블링을 강조한다. 따라서 브랜드 돈육의 특성을 홍보하는 문구에 감칠맛 나는 지방의 맛, 풍부한 육즙 등을 강조한 브랜드가 많다. 출하일령은 120일부터 150일, 180일, 200일이 넘는 것도 있으며 가장 긴 것은 360~400일도 있다. 이 품종은 오키나와현의 재래돼지인 섬돼지(흑돈)로 1년에 400두 정도만 출하되어 희소성을 강조하는 브랜드 돈육이다. 브랜드 돈육에서 공통적인 특징은 모두 비육후기 기간을 설정하고 사료에도 신경을 써서 품질의 최적화 하는 점이다.

돼지의 품종은 대부분이 대요크셔, 렌드레이스, 듀록의 삼원교잡종이 많으며 버크셔를 순종으로 하는 흑돈(黑豚) 브랜드가 있다. 오키나와 지방은 재래종인 「아구-」종을 브랜드화 하고 있으며 버크셔 암컷에 중국 원산의 금화돈(金華豚)을 교배하여 희소성을 강조하는 브랜드 돈육도 있다. 농장관리를 철저히 하여 각종 독소와 중대한 질병이 없는 것이 인정되는 어미돼지로부터 생산된 돼지(SPF돈)임을 강조하며 식품 안전성을 보장하는 브랜드 돈육도 있다.

 

▲ 일본을 대표하는 돼지품종인 가고시마 흑돈은 가고시마지역 특산품으로 명성이 높다.
▲ 일본을 대표하는 돼지품종인 가고시마 흑돈은 가고시마지역 특산품으로 명성이 높다.

최근에는 동물복지를 강조하는 방목과 ISO22000인증 농장을 강조하는 농장도 늘어났다. 사료차별화의 경우는 고구마, 사료쌀, 해조류, 한방재료, 허브, 보리, 콩가루, 에코사료(빵부스러기, 주정박 등 음식 잔사류) 등을 급여한다. 식품 안전성을 위해 항생물질이 잔류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사료의 주원료가 되는 곡물도 수확 후 농약처리를 하지 않은 PHF(Postharvest Free)나 유전자 변형이 없는 NON-GMO라는 것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안전하고 깨끗한 음용수를 내세우는 것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심층 지하 암반수, 일본 100대 명수(銘水), ○○산맥의 물 등 수려한 자연환경에서 스트레스 없이 건강하게 키운 돼지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렇듯 소규모이지만 아주 세심한 데까지 소비자를 배려하여 맛과 안전성을 내세우는 것이 일본 브랜드 돈육의 특징이다. 생산물량이 한정되다보니 일본의 브랜드 돈육은 자연스럽게 6차 산업으로 발전한다.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그 지역에서 소비하는 개념인 지산지소(地産地消)는 일본 브랜드 돈육의 기본 유통형태이다. 입소문으로 방문객을 유도하며 돈육의 맛은 물론이고 그 이외의 자연경관이나 지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소비자에게 즐거움과 만족감을 더하는 것이다. 일본 브랜드 돈육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생육 유통만으로 부위의 완전판매가 되지 않으니 자가 육가공이나 육가공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브랜드 돈육을 원료로 한 육가공품이나 부식으로 상품화 한다.

일본 브랜드 돈육의 브랜드 명칭 패턴을 보면 지역을 강조하거나 사료나 성분, 품종을 강조한 것이 많다. 에를 들면 지역의 경우는 지역명+돈(豚), 지역명+포크로 작명하고, 사료나 성분을 강조한 경우는 고구마돈, 육곡(六穀)돈 등으로 작명한다. 품종을 강조하는 경우는 삼원돈(三元豚), SPF돈(豚), 흑돈(黑豚), 금화돈(金華豚), 오키나와 재래 토종은 「아구-」라는 것을 강조한다. 자연경관이나 방목을 강조하는 경우에는 ○○목장으로 작명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일본의 브랜드 돈육의 수는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전문잡지에서 설문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 179개, 2005년 255개, 2009년 312개, 2014년 398개, 2018년 441개, 2020년 420개이다.

소수 정예라는 말이 있다. 일본의 브랜드 돈육은 물량 면에서는 소량이지만 양돈업이 앞으로 극복하고 개척해야할 모든 과제를 선도적으로 해결하며 새로운 양돈을 추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나라 돈육 브랜드도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양돈업을 위해 벤치마킹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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