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 돼지에 대한 모든 것, 돼지문화원으로 오세요
[특집2] 돼지에 대한 모든 것, 돼지문화원으로 오세요
  • 옥미영 기자
  • 승인 2020.11.06 10:40
  • 호수 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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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모쿠모쿠 농장을 꿈꾸다-돼지문화원

*본 기사는 농장에서 식탁까지(통권 37호) 2020년 10월호 기사입니다.

[팜인사이트=옥미영 기자] 축산업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부정적 인식 확산, 여기에 악취 등 각종 환경문제로 인한 민원 증가 등 국내 축산업 여건은 갈수록 척박해지고 있다.

양돈산업의 경우 생산액이 7조원에 달해 전체 농업 생산액의 15%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 식량산업으로 자리매김 했지만 산업의 고속 성장이면에 드리워진 그림자들은 지속가능한 산업 유지에 어려움이 되고 있다.

이 같은 배경 때문에 ‘돼지’와 ‘문화’의 결합은 왠지 생뚱맞고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농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일반이라면, 특히나 축산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돼지와 문화’는 자연스러운 고유명사처럼 혹은 ‘하나’로 인식된다.

2011년 문을 열어 내년이면 벌써 개장 10년을 맞는 강원도 원주의 ‘돼지문화원’ 때문이리라.

 

▲ 돼지문화원 전경
▲ 돼지문화원 전경

원주시 지정면의 랜드마크 ‘돼지문화원’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송정리에 자리 잡은 돼지문화원에선 하루 몇 차례 돼지들의 ‘레이싱’이 펼쳐진다. 축사를 나온 돼지들은 출발 신호와 함께 계단을 올라가고 연못을 돌고, 미끄럼틀까지 통과해 마당에서 레이싱을 구경하는 아이들을 향해 내달린다.

“돼지문화원을 한 바퀴 도는 코스예요. 나름 흥미진진합니다. 마지막엔 피니시 라인(finish line)을 거쳐 관중석까지 달려와요. 아이들이 아무런 벽 없이 바로 앞에서 돼지와 함께 한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참 좋았습니다.”

인터넷 블로그(bingnews)에 올라온 돼지문화원의 생생한 체험기다.

주말과 공휴일엔 실내에서 돼지 운동회도 열린다.

해피츄밸리(동물원체험)에선 돼지는 물론 토끼, 염소, 양, 당나귀, 고슴도치, 기니피그와 각종 새들까지 수 십 여종의 동물들을 직접 만나 먹이를 주고 만지며 체험할 수 있다.

돼지고기 먹거리와 만들기 체험은 돼지문화원에서 빠질 수 없는 코스다.

문화원 내부에는 천연케이싱(돈장)으로 직접 만드는 소시지 만들기와 쿠키·피자 만들기 체험장과 함께 돼지문화원에서 직접 생산(치악산금돈)한 한돈을 구워먹을 수 있는 식당 그리고 돼지고기 가공장 안을 직접 들여다 볼 수 있는 견학코스도 마련됐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전시관에선 돼지의 습성과 품종, 돼지의 일생을 에니메이션과 조형물로 알기 쉽게 꾸며놓아 단순한 ‘맛있는 삼겹살’이 아닌 우리에게 친숙하고 가까운 가축, 돼지를 설명해 준다.

돼지아빠, 돼지와의 운명이 시작되다

돼지문화원 장성훈 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돼지아빠’ 다.

대학(강원대 축산학과)에선 낙농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국내 굴지의 종돈회사인 다비육종에 입사하면서 돼지와 인연을 맺게 됐다.

 

▲ 돼지문화원 실내에서 펼쳐지는 돼지운동회
▲ 돼지문화원 실내에서 펼쳐지는 돼지운동회
▲ 돼지문화원을 찾는 아이들이 돼지고기를 활용한 소시지 만들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쿠킹 스튜디오
▲ 돼지문화원을 찾는 아이들이 돼지고기를 활용한 소시지 만들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쿠킹 스튜디오

자타가 공인한 돼지전문가로 생산은 물론 특유의 친화력으로 영업력에 있어서도 다른 사람에 뒤지지 않으며 인정받았다.

1997년 금보종돈을 설립하면서 직접 종돈장 경영에 나선 장 대표는 그해 IMF가 발발하며 큰 위기를 맞는 듯 했지만 오히려 이를 기회를 받아들여 당초 1백두 규모의 종돈장을 3백두로 늘리는 사업수환을 발휘했다.

이후 다비육종과 완전히 결별한 그는 우연치 않게 GGP와 GP농장 2곳을 연달아 인수한 뒤, 인공수정센터까지 경영을 맡게 되면서 GGP와 GP 그리고 AI 센터까지 갖춘 종합육종회사를 설립하게 됐다.

이렇게 태동한 (주)금보육종과 금보유전자가 현재 한돈 브랜드로 명성이 자자한 ‘치악산 금돈’의 모회사인 셈이다.

경기도 안성에서 시작한 종돈장들을 모두 정리하고, 2000년 중반 이곳 원주로 종돈장을 이전하면서 장 대표는 모돈 사육규모를 1천두 수준까지 늘렸다. 장대표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몇 년 뒤 국내 굴지의 대기업 투자까지 유치하는 등 ‘돼지아빠’의 큰 계획이 빠르게 완성되어 가는 듯 했다.

하지만 2011년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구제역 파동’은 수 십 여 년간 일궈온 돼지아빠의 생산기반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말았다.

한국의 사이보꾸, 한국의 모쿠모쿠 농장 만들기

안동발 구제역으로 장 대표는 돼지 2만 2천마리를 땅에 묻는 엄청난 시련을 맞닥뜨려야 했다.

돼지를 살처분 할 때만 해도 정부는 끌어 묻은 돼지 전 두수에 대한 보상을 약속했었지만, 당시 살처분 두수가 3백여만두에 이르면서 결국 정부마저 두 손 두 발 모두 들고 말았다.

때문에 손에 쥐어진 보상금은 고작 1억 5천만 원.

당시 돼지를 중심으로 한 6차 산업에 대한 구상을 모두 마치고 사업 시작 직전이었던 그때 장 대표는 가장 어려운 순간임에도 또다시 모험을 감내하기로 했다.

당분간 돼지 사육이 어려워진 만큼 돼지와 문화가 결합한 ‘테마파크’에 더욱 집중하겠다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 장성훈 대표
▲ 장성훈 대표

결국 2014년 오랜 기간 그가 계획하고 꿈꿔온 돼지 테마파크가 문을 열었다.

돼지농장을 중심으로 한 테마파크는 90년대 그가 종돈장을 경영하기 훨씬 이전에 도드람양돈농협의 전신인 도드람양돈사업회 주선으로 방문하게 된 일본의 체험형 양돈장 ‘사이보꾸’ 농장을 견학한 뒤부터 마음속 오랜 꿈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이 농장에서 종돈 6~7백 마리를 구입해 용인에 자연농원을 마련한 것으로도 유명한 사이보꾸 농장은 돈육 직매장과 돈육 전문 레스토랑은 물론 농장에서 생산된 유기질비료를 뿌려 수확한 농산물과 채소, 과일 등을 농부들이 직접 나와 판매하는 등 순환농법을 실현하는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더욱이 인근 주위에 온천이 터지자 각종 놀이시설과 연못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빵과 와인까지 만들어 판매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됐다.

돼지 농장이 소비자들과 친숙해져 어우러진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몇 년 후 일본의 돼지 테마파크 농장인 ‘모쿠모쿠’ 농장을 수차례 방문하면서 한국의 사이보꾸, 한국의 모쿠모쿠 농장을 만들겠다는 꿈을 품어왔다.

 

▲ 소비자에게 친숙한 돼지와 양돈산업은 장성훈 대표의 오랜 꿈이자 목표다.
▲ 소비자에게 친숙한 돼지와 양돈산업은 장성훈 대표의 오랜 꿈이자 목표다.

위기를 기회로, 돼지아빠의 또 다른 도전기

2014년 개장한 돼지문화원은 돼지와 함께하는 아기자기한 체험공간과 탁월한 돈육 품질로 입소문을 타며 소비자들에게 친숙하고 맛있는 돼지, 돼지와 연관된 각종 체험이 결합한 테마파크로 한돈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한 때는 1년 한 해 동안 가족단위의 방문객이 7~8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호응도 높았다.

하지만 메르스 발병과 세월호 참사 여기에 최근의 코로나19 사태까지 큰 이슈들이 터지는 등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외출 자제 등으로 방문객이 크게 줄어 돼지문화원도 어려움을 피하지 못하고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장 대표의 끊임없는 연구와 도전은 돼지문화원의 위기를 돌파해 또 다른 기회가 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그가 터득한 소시지와 떡갈비, 앞다리·뒷다리살 훈제돈육 등은 이곳을 찾은 소비자들의 입소문은 물론 문화원이 운영하는 각종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한 홍보로 품질을 인정받으며 매니아 수준의 고정소비층이 생겨나고 있다.

 

▲ 2019년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에 선정된 장성훈 대표
▲ 2019년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에 선정된 장성훈 대표

“그 흔한 발색제 없어 투박하지만 돼지고기 고유의 맛을 그대로 살린 정통 가공품”이라는 돼지문화원이 만들어낸 가공품에 푹 빠진 소비자들의 반응이다.

특히 GGP와 GP, AI센터까지 양돈업계의 대부로 알려진 장성훈 대표가 생산한 ‘치악산금돈’은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최고의 한돈브랜드 중 하나로 원료육에서부터 차별화된 맛의 차이가 돈육은 물론 가공품에서의 질적 차별화로 이어지며 호평받고 있다.

최고급 품질의 돼지고기 생산을 위한 연구를 지속해온 장 대표는 지난해 농촌진흥청이 선정한 ‘올해의 최고농업기술’ 명인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돼지와 소비자의 거리 좁히고 싶어요

“한국인들 삼겹살 사랑은 유별나잖아요. 하지만 맛있는 한돈을 저렴하게 생산하기 위해 애쓰는 농가의 노력은 터부시된 채 양돈장은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소비자와 양돈장, 소비자와 돼지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렵다고, 사람이 안온다고 당장 문 닫으면 앞으로 한돈산업은 영영 소비자와 멀어지게 되지 않을까요.”

여러 차례 닥쳐온 위기에도 장성훈 대표는 단 한 번도 돼지문화원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단다. 오히려 더욱 크게 넓고, 멋지게 짓지 못한 것이 지금에 와 아쉬울 뿐이다.

당장에 돈이 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때문에 그렇단다.

돼지문화원에는 장 대표와 함께 대학에서 축산을 전공한 아들(현웅 씨)과 딸(현주 씨)이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아들은 금보육종에서 종돈 생산책임자로, 딸은 돼지문화원의 홍보와 기획, HACCP 관리 등을 맡고 있다.

“어린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돼지와 함께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행복해집니다. 혐오감이란 단어를 찾아볼 수 없죠. 비록 단 하루지만 돼지와 농장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달라질 거라 기대합니다. 단순한 생산에서 벗어난 6차 산업의 테마파크는 축산을 전공한 청년들에게도 색다른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보람도 있습니다. 돼지문화원이 소비자와 농장을 잇고, 청년 축산인과 축산업을 잇는 창구가 된다면, 더는 바랄게 없겠습니다.”

 

*본기사는 농장에서 식탁까지(통권 37호) 2020년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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