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도매시장법인의 장자 프리미엄 언제까지 유효한가?
[기고] 도매시장법인의 장자 프리미엄 언제까지 유효한가?
  • 팜인사이트
  • 승인 2020.11.0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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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김종근 경영본부장
▲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김종근 경영본부장 

우리말 중에 ‘무녀리’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인 의미는 문(門) 열이에서 온 말이다.

‘한 배에서 동시에 낳은 새끼들 중에서 유난히 성장이 느리고 약한 놈’ 또는 ‘여러 마리 새끼 중에서 맨 먼저 나온 놈’으로 네이버 사전에 소개되어 있다.

즉, ‘무녀리’란 일정 기간 제일 좋은 영양식과 지극정성으로 돌보아 약한 무녀리에게 생존력과 경쟁력이 생기면 다른 새끼들과 자연적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놓아두게 된다는 선조들의 지혜였다.

올바른 방향으로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모든 정책도 도입 초기에는 정책이 잘 정착되도록 법적인 혜택부터 예산까지 한시적으로 지원하고 때가 되면 일몰 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유독 공영농수산물도매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농수산식품유통분야에서는 무녀리에게 주는 혜택이 예외적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 농수산식품유통은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제정 이전 공영도매시장이 만들어지기 이전까지는 깜깜이 유통이었고 도매상인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복마전이었다.

이러한 폐단을 없애고 농업유통의 근대화를 위하여 1976년 농안법이 제정되었고 그 이듬해에 시행되었다.

농안법에는 농수산식품유통의 주요 골격인 ‘매매 방법에 있어서 수탁판매와 경매제 원칙’이 담겨 있었고 이 원칙은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절대 선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 당시의 유통 현실에 비춰보면 ‘수탁판매와 강제 경매제의 원칙’으로 귀결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1980년대에 ‘구걸 판매 방식’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는 도매상인들이 가격 조작을 일삼는 등 횡포에 이기지 못하는 힘없는 농민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농산물을 넘기는 행태를 말한다.

이러한 농업농민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었던 것은 농수산물 공영도매시장 건립과 경매제 위주의 도매시장법인 운영으로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한 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45년이 지난 지금 강제 경매제는 도매시장법인에게 강력한 무기를 쥐여 준 꼴이 되었고, 도매시장법인은 농수산식품유통의 절대 강자로 등극하였고, 도매상인들은 원죄가 있었기에 농수산식품유통에서 주도권을 뺏길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반백년이 지난 지금 농수산식품유통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고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강제 경매제라는 강력한 법의 지원을 안고 농수산식품유통의 문을 연 장자로 태어나 기준가격을 제시하고 투명성을 높인 것에 대한 도매시장법인의 성과를 넉넉하게 인정해 주더라도 “도매시장법인의 장자 프리미엄은 무한정 인정되고 용인되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점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으며, 농수산식품유통 주체 간의 자유로운 경쟁이라는 화두 앞에서는 도매시장법인에게 주어진 강제 경매제는 이제 구태의연하고 수구적인 산물로 전락하였다.

농민에게 출하의 자유와 가격 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할 때

이러한 수구적인 산물인 강제 경매제의 폐단 중 가장 큰 것 두 가지만 든다면 첫째로 출하자의 가격 결정 참여권을 원천 봉쇄한다는 것이다.

공익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을 경우에 법으로 영업의 자유를 강제적으로 제한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를 당연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어느 한 시점에서 사회적인 문제점을 개선하고 제도를 개혁하고자 만들었던 특혜는 제도의 목적이 달성되면 원상 복구되거나 건강한 사회를 위하여 보완되어야 마땅하다.

올해 어느 국회의원의 국감장에서 같은 출하자의 같은 농산물을 같은 도매시장에 다른 도매시장법인에 출하하였는데 경락가격이 터무니없이 차이가 나는 경매제의 폐단을 지적하였고, 이러한 일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사전 가격 협상 같은 수단은 강제 경매제 아래서는 생산자에게 없다.

힘 약한 생산자를 보호하겠다는 경매제의 맹점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둘째는 가락시장의 경우 출하자에게 출하 선택권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상장예외거래제도(경매를 통하지 않고 직접 농산물을 중매인에게 판매할 수 있는 제도)가 있지만 이는 소량 생산품목 등 경매가 어려울 경우 예외적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이다.

가락시장 도매시장법인 관계자들은 “경매제의 보완책으로 정가수의매매(경매가 아닌 정해진 가격으로 농산물을 거래하는 제도), 상장예외거래제도 운영되고 있으니 시장도매인제도 등 더 이상의 제도 도입은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가수의매매는 경매가 적합하지 않은 품목으로까지 도매시장법인의 수탁 독점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이고 상장예외거래는 경매제도를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하게 되는 것이니 논리의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도매시장법인에게 반백년 전의 ‘힘 약한 생산자 보호’라는 상황논리로 언제까지 출하자의 정당한 권리를 묵살할 것인지 묻고 싶다.

출하자에게 최소한의 권리이며 기본적인 권리인 출하 선택권과 더불어 가격 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되돌려 주어야 할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난 것이다.

건전한 경쟁과 체질 개선을 위한 골든타임 놓쳐선 안돼

최근 들어 농수산물 공영도매시장의 농수산식품유통은 크게 위축되고 있다.

이는 제왕적인 도매시장법인 위주의 획일화된 강제 경매제도가 한몫을 한다.

획일화된 시스템 하에서는 다양성과 건전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건전한 경쟁이 없으면 필연적으로 경쟁에서 도태할 수밖에 없다.

이참에 도매시장법인도 20여 년 동안 가십거리였던 경매제의 논란을 잠재우고 농수산식품유통의 성과를 입증할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또한 국민의 세금으로 건립된 국가 기간시설을 헐값으로 이용하면서 강제 경매제라는 강력한 무기를 바탕으로 도매시장법인 얻은 높은 수익률은 특혜가 아니라 농수산식품유통의 획기적인 개혁을 통해 얻은 정당한 대가임을 증명해 보여야 할 것이다.

농수산식품유통의 핵심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도매시장의 발전을 위해, 이제 전국 최대 규모인 가락시장에서 경매제와 시장도매인제라는 두 제도가 건전한 경쟁을 통하여 도매시장을 이끌어가는 양축으로 우리나라 농수산식품유통을 선도하여 국민 생활 안정에 기여하길 간절히 소망한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농수산식품유통 개혁의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지 않은지 지금이 바로 우리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할 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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