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쌀 개방의 역사와 2000년 이후 양곡정책②
한국 쌀 개방의 역사와 2000년 이후 양곡정책②
  • 연승우 기자
  • 승인 2018.09.04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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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추곡수매 폐지와 변동직불금

[팜인사이트= 연승우 기자] 한국의 양곡정책 중 가장 중요한 정책이었던 추곡수매제가 2004년 쌀관세화 협상 후 폐지됐다. 2005년 3월 쌀소득보전기금법 개정안과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로서 추곡수매제가 없어지고 쌀값 보전을 위한 공공비축제와 농가소득 직불제가 본격 도입됐다. 공공비축제는 국회 동의절차 없이 시장가격으로 정부가 쌀을 사서 필요할 때 파는 제도이다.

추곡수매제 폐지되다

FAO에서는 비축수준을 소비량의 17∼18%를 권장, 우리나라의 경우 600만석 내외 수준이 되며 이는 2개월간의 식량이다. 쌀 소득보전직불제는 쌀 수입개방으로 떨어진 쌀값을 보전하기 위해 농가에서 생산한 모든 쌀에 대해 직접 소득을 지원, 가격 차이를 보전해주는 제도다.

공공비축제 도입과 추곡수매제 폐지로 쌀 수급은 공공의 영역에서 민간의 영역으로 넘어갔고 이에 따라 정부의 수급조절기능이 약화됐다. 이후 정부수매량은 1995년 137만5천톤(생산량의 29%)에서 2008년 40만톤(14.2%)으로 감소했다. 당시 공급 과잉의 기조가 보였던 쌀 생산 감축을 위해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년간 한시적으로 쌀 생산조정제 시범사업을 시행 후 중단하기도 했다.

추곡수매제가 폐지된 첫해인 2005년 쌀 생산량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내려가는 기현상이 일어난다. 2005년 생산량 감소에 따른 수확기 시장공급량이 전년 대비 2.5% 감소했지만 산지가격은 13.6% 하락했다. 이에 농림부는 생산량이 전년보다 4.5% 감소했다는 작황 조사와 농협을 통한 100만석 추가 매입 대책을 10월에 발표했지만 11월 초까지 쌀값 하락이 이어졌다. 추곡수매제 폐지에 따른 시장의 불안감 확산이 수확기 쌀 가격 폭락의 주요 요인인 것으로 보고 있다.

풍년이면 쌀값 하락, 부족하면 수입

2015년의 쌀값 하락은 2008년, 2009년의 재판이다. 2008년, 2009년 연속 대풍으로 인해 쌀값이 하락하고 농민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농식품부는 시장에는 개입할 수 없다며 직접적인 대책이 아닌 쌀 생산량 감소를 위한 장기적 대책으로 ‘논 소득기반 다양화사업’을 도입했다. 논 소득기반 다양화사업은 논에 벼 이외 콩, 조사료 등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농가에 1ha당 30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2010년 이후 3년 연속으로 평년보다 생산량이 감소하고 2013년 큰 폭으로 쌀 생산량이 줄자 농식품부는 이 사업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업과 함께 2003년에 도입했던 쌀생산조정제도는 탁상공론으로 만들어진 대표적 정책이다.

2012년 쌀 생산량 감소에 따른 정부의 대책은 수입이다. 2013년 농식품부는 브리핑에서 쌀 생산량이 민간 신곡 수요를 맞출 수 있는 수준이지만, 향후 수급과 쌀값 동향을 면밀하게 보아가며 필요한 수급안정 조치를 선제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3년까지 흉년이 이어지면서 재고 부족의 문제가 드러났다. 3년 연속 쌀 생산량 감소 원인이 정부의 쌀 생산량 축소 정책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상 기후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고 이후 풍년이 연속되면서 쌀값 대폭락의 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2004년 유예했던 10년의 기한이 끝난 지난 2014년 농식품부는 쌀 관세화를 선언했다. 그해 9월 말까지 WTO에 쌀 관세화 의사를 담은 양허표 수정안을 통보하고, 관세화 협상에 들어가 513%로 관세율을 결정했다.

농식품부는 관세화의 대책으로 쌀 수입량이 일정 수준 이상 증가하는 경우를 대비 관세율을 더 높여 국내시장을 보호할 수 있는 특별긴급관세(SSG)를 도입했지만 저율관세할당물량(의무수입물량) 40만9천톤은 매년 계속해서 5%의 저율관세로 수입을 허용했다.

1980년의 교훈을 기억하자

1994년 가공용 쌀이 수입돼 2004년 밥쌀용 쌀, 2015년 전면개방까지의 과정에서 한국의 쌀산업은 가격 변동의 취약성을 드러냈지만, 정부의 대책은 효과를 보지 못했다. 1980년 쌀이 모자라자 곡물메이저가 보여준 행위를 기억해야 한다. 무계획적인 쌀 감산 정책과 쌀 전면개방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6년 역대 최악의 쌀값 폭락의 사태가 발생했고 정부는 2017년 쌀 생산조정제를 다시 도입했지만, 효과는 미비했다.

2016년 쌀값이 20여년 만에 최저 수준인 12만원대까지 내려가면서 쌀 변동직불금 예산이 사상 최대치가 발동되면서 농업보조금 상한(AMS)인 허용보조한도인 1조4천900억원을 넘겼다. 이로 인해 쌀농가는 실제로 받아야 할 보조금의 일부를 받지 못했다. 추곡수매제가 폐지된 2004년 이후 쌀값은 폭락과 폭등을 반복하고 있다. 그만큼 생산이 일정하지 못하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고, 쌀 정책은 가격을 통한 생산조정 또는 생산지지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물론 농가의 입장에서는 쌀값을 제대로 받는 것이 중요하지만 국가 전체의 차원에서 우선순위는 안정적인 쌀 생산이다. 가격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는 것이 1980년의 교휸을 되새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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