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히스토리] 농업기본법의 역사 그리고 철학
[팜히스토리] 농업기본법의 역사 그리고 철학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8.09.06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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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인사이트= 박현욱 기자] 농업은 우리나라 경제성장과 함께 발전해왔다. 역사적으로 볼 때 6.25 전쟁 이후 황폐화된 국토를 재건하고 국민의 먹거리를 담당하는 역할을 해왔을 뿐만 아니라 산업화를 이룬 후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는 보통의 경제모델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보통 농업이 발전하고 생산성이 향상되면 농업잉여가 축적되는데 이를 산업화의 재원으로 활용된다는 게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경제이론이다. 특히 서유럽과 같은 국가들은 이 같은 모델을 잘 따라 왔지만, 개방경제체제에서는 농업잉여 창출이 반드시 산업화의 전제조건이 되지 않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개방경제의 영향으로 산업화가 먼저 진행되면서 외자를 재원으로 하여 산업화가 진행됐다. 산업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농업은 인력공급, 도시민의 식량 공급, 이농한 젊은 세대의 교육투자 등 간접적인 형태로 한국의 경제성장에 이바지해왔으며 산업화를 한 이후 농업발전이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형태는 농업이 점진적이고 체계적으로 발전했다기보다 산업발전이 오히려 농업발전을 가속화 시킨 측면이 있다.

농업발전이 급속히 이뤄진 탓에 농업과 관련한 법규의 제정이 시급해졌고 농공간 산업 불균형이 발생함에 따라 이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법들이 제정되고 수정되고 사문화되기도 했다. 농업의 바탕을 이루는 법은 1960년대 농업기본법이란 이름으로 만들어졌는데 이후 농업·농촌기본법, 농어업·농어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등으로 이름을 바꿔 달고 확장됐다.

기본법이 중요한 이유는 법을 기초로 농정방향을 확립하고 농업의 청사진을 만들기 위한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선언적 성격의 농업기본법 ‘농업이 국민경제의 기반’

급속한 경제발전 과정에서는 농업과 공업의 불균형 성장이 문제가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부흥과정에서도 농공간 격차가 심해지자 유럽 각국은 법을 제정하면서 이를 타개해 나간다. 1951년 스위스의 ‘농업개량 및 농업 인구유지에 관한 연방법’, 1955년 서독의 ‘농업법’, 1957년 영국의 ‘1957년 농업법’, 1960년 프랑스의 ‘농업의 방향설정에 관한 법률’ 등이 제정되면서 유럽 각국은 농업의 구조정책을 전개해 나간다. 당시 일본도 유럽의 영향을 받아 농업기본법 제정에 힘을 실었고 1961년 농업법을 제정한다.

한국도 일본의 농업기본법 제정에 영향을 받아 법령제정에 힘을 받기 시작한다. 1964년 안동준 의원 외 20인이 ‘농업기본법안’을 의원 입법으로 국회 농림위원회에 제안을 시작으로 9차에 걸친 회의를 거쳐 법안이 작성됐고 이후 공청회 등을 거쳐 마침내 1967년 1월 16일 농업기본법이 제정되기에 이른다.

농업기본법은 농업이 국민경제의 기반임을 규정한 것이 특징이다. 농업기본법의 목적은 농산물의 생산, 가격·유통구조의 개선, 농가소득의 증진, 타산업 종사자와의 소득 균형실현 등이다. 정부는 법을 통해 자연적·경제적·사회적 제약을 극복해 농업경영을 근대화하고 농업생산력을 발전시켜 식량과 기타 농산물의 증산을 위한 기조를 유지했다. 또한, 농촌의 생활과 문화 수준을 높여 농공간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방점을 뒀다.

위와 같은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농업기본법은 중요한 정책수단의 근거가 됐으며 정부의 기본시책 방향을 규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처럼 농업기본법에는 농업 분야에서의 각종 시책을 큰 틀로써 규정하고 유도하는 데 의의가 있었고 이념이나 방침은 추상적이었으며 개별 법률이나 시책에 대해 법적 규범력을 갖지 않기 때문에 법의 방향대로 정책이 집행되기 위해서는 당국의 의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법의 성격상 이념, 목표, 방향이 선언적으로만 제시되고 있고 구체적인 정책에 관해 권리와 의무를 명문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은 없었다. 게다가 농업기본법은 일본의 법을 참고해 국내 농업에 대한 심도 있는 조사가 빠져 있어 실효성이 떨어졌고 정부의 의지가 부족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결국 사문화됐다.

시대 흐름을 쫓은 농업·농촌 기본법의 제정

농업기본법은 농업의 발전 방향만을 제시하는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에 시대 흐름에 맞는 새로운 법 제정이 절실했다. 농업기본법은 선언적 성격이 강했고 1990년대 시행됐던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은 집행적 성격이 강해 두 법을 양립하는 법이 필요했다.

또한, 농업·농촌 발전 방향과 정부의 책무를 규정할 필요가 있었다. 이전의 법들이 식량증산 중심으로 만들어지거나 가격지지 등을 내포하고 있어 2000년대 시대상과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농업은 UR 타결로 개방과 경쟁의 시대에 진입했으며 WTO에서는 우리 정부에 수매 등 보조감축, 관세인하 등 시장지향정책으로의 압박에 나섰다.

외국에서는 농업기본법에 구체적 시책까지 포함하는 경향이 강했다. 프랑스의 경우 계약 개념을 도입해 국가와 개인의 계약을 체결해 국가는 농민에게 지원을 약속하고 농민은 국가 목적달성을 추진하는 경영영토계약 등 구체적 시책을 다수 포함하는 추세였다. 미국의 경우는 생산탄력계약지불제 등 직불제 시책과 예산지원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내기도 했다.

이에 우리도 기본법의 내실을 다지고 시대 상황에 맞도록 재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정부는 21세기 농업·농촌의 발전 방향을 법제화하고 앞으로의 농정방향과 이념을 제시하겠다는 목표 아래 농업·농촌기본법 제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농업·농촌 기본법은 기존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의 조문을 많이 빌려 1999년 2월 제정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1차산업에서의 농업이라는 개념을 탈피하고 농업 관련 전후방산업의 체계적인 육성을 통해 농업과 농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시기로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되면서 이 법은 시행되기에 이른다.

법의 핵심은 농업·농촌 시책의 기본원칙으로 시장경제원리를 바탕으로 했으며 효율성을 추구한 것이다. 또한, 농업의 공익적 기능과 가치를 법적으로 명시하고 이에 따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농업인의 역할을 규정해 놓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나아가 단순히 농업인의 역할을 규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모든 국민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차원에서 농업을 이해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농업 철학을 견지했다는 데서 한 단계 진보한 법안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농민을 단순히 농사짓는 사람이라는 소극적인 개념이 아니라 산업에 종사하는 경영 주체로서의 위상을 확실히 정립했고 농촌을 도시의 배후, 지원기능에 그치지 않고 고유한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는 산업·생활공간으로 발전시켜나간다는 미래상까지 포괄하면서 농촌의 범위를 넓혔다.

기존 농업기본법에서 한계로 제시됐던 이행방침에 대한 구체적 근거가 없는 점을 보완해 직접지불제도나 벤처농업육성, 지속가능한 친환경농업 등을 추진한다는 구체성을 띠기도 했다.

그러나 한계도 있었다. 법 내용에도 포함됐듯 국민의 이해와 합의에 따른 농업을 명시해 놓고도 제정과정에서 농업이 아닌 계층과의 활발한 논의와 토의가 미흡한 점 등이 단점으로 지적됐으며 먹거리 중요성과 함께 식품을 농업의 범주 안에 포함하지 못했다는 점은 흠으로 남았다.

농어업·농어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과 시사점

1960년대 제정된 농업기본법은 농업의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면 2000년대 제정된 농업·농촌 기본법은 농업은 단순히 농업경제만으로 부족하고 농촌발전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시장개방의 흐름에 맞춰 시장경제원리를 담았다는 점에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이후 FTA, 외환위기 등 많은 위기가 다가오면서 점차 농업은 규모화가 진전됐고 상업적인 성격이 짙게 배어들었다.

농민들은 경영체로 거듭나면서 생산에서 벗어나 유통에도 관심을 보였고 소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2000년대 이전의 농업은 생산자를 중심으로 모든 정책과 지원이 집중됐다면 2010년 이후로는 농업과 식품의 경계가 더욱 긴밀해졌고 농민들도 소비자의 중요성을 인지하면서 농업정책도 바뀌기 시작했다. 이는 과학기술과 영농기술의 발달로 농업생산품의 과잉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소비가 농민들의 소득과 직결되자 더욱 가속화됐다.

농업은 식품산업과 긴밀하게 연관되면서 식품산업 발전이 농업발전으로 이어지는 순환적 관계가 더욱 굳어졌다. 이에 정부에서는 농업·농촌 기본법을 ‘농어업·농어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으로 개정을 추진하게 된다. 농업과 농촌을 생산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는 물론 소비자까지 아우르기 위해서다.

농어업·농어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은 직접지불제도, 벤처농업육성, 친환경농업육성, 통일농업전개, 생산·유통·품질·안전성 등 종합적 경쟁력을 강화하고 농업인과 소비자, 정부와의 협력의 강화, 농어촌 복합산업화를 위해 식품산업과의 연계하는 21세기 농정시책의 새로운 근거를 마련하면서 2013년 7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다.

법 내용으로는 그간 수립주기에 관한 규정이 없었으나 농업 관련 산업의 육성 등을 위해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도록 했으며 식량 및 주요 식품의 자급목표 수립 시 열량 자급률을 포함하면서 과거 곡물중심의 식량자급률을 보완했다. 경제위기 등으로 수급 위기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비상식량과 주요 식품이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했으며 농가소득이 지속해서 낮아지는 현상에 대비해 정책 지원의 사각지대에 처할 우려가 있는 영세농업인에 대한 지원을 원활히 추진할 수 있도록 했다.

나아가 환경보호와 같은 농업·농촌의 공익기능에 관한 사항을 도입했으며 여성농업인의 사회 경제적 지위를 인정하는 시책을 수립하도록 했다. 아울러 통일에 대비해 북한의 농업 관련 조사·연구 및 남북한의 상호 보완적 발전을 도모하고 국제협력 강화를 위한 지원시책까지 담았다.

기본법은 그동안 깊이 있는 연구 없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먹구구식으로 개정됐다는 점에서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농업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농수산물의 가격 폭등에 대한 대비가 수출·수입 정책에 한정했다는 한계점은 여전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