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썰]누가 이들을 아스팔트 위로 내몰았는가.
[팜썰]누가 이들을 아스팔트 위로 내몰았는가.
  • 이은용 기자
  • 승인 2018.09.13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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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로 향할 수밖에 없는 분노한 사과 농민들.
밀양 얼음골사과 생산 농민들이 "경농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농약피해를 입은 농가들에게 보상하라"고 촉구했다.
밀양 얼음골사과 생산 농민들이 "경농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농약피해를 입은 농가들에게 보상하라"고 촉구했다.

[팜인사이트=이은용 기자] 날씨가 점점 선선해지고 있지만 한낮 도심의 온도는 뜨겁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나고 힘들 정도의 날씨지만 이런 상황인데도 상여를 메고 강남 도심을 지나 청와대를 향하는 농민들을 지난 12일 볼 수 있었다.

이들은 경남 밀양 산내면 일대에서 ‘얼음골사과’를 생산하고 있는 농민들이다. 지금 사과농장에서는 추석 대목을 맞아 한창 수확에 들어가 포장하고 판매에 열을 올릴 시기이지만 이들은 그럴 수가 없다고 한다.

상품으로 내놓을 수 있는 사과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과연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왜 이들은 상여를 메고 청와대로 갈 수 밖에 없었을까.

이들의 사연은 이렇다. 400여 농가가 농약회사인 경농에서 만든 살균제(미사일)를 사용한 후 사과 표면에 녹이 슨 것처럼 누렇고 거칠게 변하는 현상이 발생해 수확을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박 모 씨는 5000평 규모의 농장에서 얼음골사과를 생산하고 있는데 사과가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유과기인 4월 말부터 5월 초 사이 이 업체 농약을 사용했고, 농약을 친 후 왁스층이 형성되기도 전에 대부분 사과 표면이 거칠거칠하고 녹스는 현상이 나타나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전언이다.

박 씨는 “한해 농사를 다 망쳤다. 상품성이 있는 사과가 없다. 팔수가 없을 지경이지만 농약회사에서는 자연재해라는 답변만 하고 아무런 보상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농민들이 자체 조사한 결과 피해규모는 400여 농가 230㏊ 이상에 이르며 금액으로는 120~18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여기서 거론되고 있는 경농이라는 업체는 국내에서 가장 역사가 길고 규모가 큰 농약업체 중 하나다. 최근에는 남북경협주로 각광을 받기까지 하고 있는 기업이다.

경농은 이 사태가 벌어진 이후부터 줄 곧 농약 품질이나 약해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 시기 전국적으로 영하로 기온이 떨어지고 일부지역에서는 눈이 오고 서리가 내려 개화한 꽃이 냉해를 입어 동녹현상이 발생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다시 말해 냉해피해 때문에 발생한 것이지 농약 문제는 아니라는 것.

그러면서 내년 봄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 시험해본 뒤 과실비율을 정확히 산정해 보상할 부분이 있으면 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해 농사를 망친 농민들이 일그러진 얼굴로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한 해 농사를 망친 농민들이 일그러진 얼굴로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피해 농민들은 어이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상저온 탓이면 어떻게 이 회사 농약을 쓴 사과밭에만 피해가 나타날 수 있겠냐는 반문을 하고 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박 씨는 “경농의 제품을 사용한 농가에서만 이런 현상이 나타나 피해를 보고 있다”며 “주변에 다른 회사 제품을 사용한 농가에는 피해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올해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해 어떠한 사과도 안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경농에 분노를 느끼고, 내년 시험을 걸쳐 보상을 결정하겠다는 발상 자체도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트리며, “계속해서 진정성 없는 사과와 보상책이 안 나오면 불매운동과 상경집회, 법적 투쟁도 각오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그렇다면 이를 중재하고 피해를 조사해야할 정부(농식품부, 농진청 등)와 지자체(밀양시)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제대로 된 조사와 중재를 했을까. 결론은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먼 산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

이처럼 농민과 업체 간 이견차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고, 정부와 지자체는 먼 산만 바라보고 있으니 해결책이 나올 수가 없는 구조다.

올해 한 해 농사를 망친 피해농민들만 발만 동동 굴리다가 밀양시 앞에서 항의집회도 가져보고 경농 본사 앞에서 상경집회를 몇 차례 가졌지만 돌아오는 것은 똑같은 상황뿐.

그래서 이들이 선택한 것은 12일 경농 본사 앞에서 상경집회를 한 후 상여를 메고 수 시간을 걸어 강남을 지나 청와대 앞에 가서 대통령과 국민들을 향해 억울함과 분노한 마음을 표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누가 이들을 아스팔트 위로 내몰았고, 이들은 왜 청와대로 향할 수밖에 없었는지. 분명히 누군가는 책임 있는 자세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고, 이들을 위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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