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칼럼] 우유 소비 감소 원가연동제 때문일까?
[편집자 칼럼] 우유 소비 감소 원가연동제 때문일까?
  • 김재민
  • 승인 2021.08.19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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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극한으로 치달았던 유업체와 낙농가 사이의 원유가격 협상에 대한 부작용을 해소하고자 낙농-유가공업계는 정부의 중재에 따라 ‘원유가격 원가 연동제’(이하 원가 연동제)라는 우유 도매가격 결정 방식에 합의한다.

그동안 원유가격은 생산 농가와 수요자인 유업체 간 협상을 통해 결정하였는데, 합의가 쉽지 않아 전년도 우유 생산비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포괄하는 공식을 만들어 협상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 우유 도매가격을 결정하기로 하였다.

다만 너무 자주 원유가격이 조정되면 여러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서 인상 요인과 인하요인 모두 5%를 넘어설 때만 조정하게 된다.

이러한 합의에 따라 원가 연동제가 도입된 2013년 이후 원유가격은 두 번의 인상과 한 번의 인하를 단행한 바 있다.

지난해 2020년 리터당 21원의 우유 도매가격 인상을 단행하여야 했으나 코로나19의 여파로 학교급식이 중단되면서 어려움에 빠진 유가공업계를 배려해 적용 시기를 2021년 8월 1일 이후로 연기하기도 하였다.

올해 21원 인상안이 적용되면 원가연동제 도입 이후 총 네 차례 가격 조정이 이뤄지는 것이다.

 

연동제 폐지 논거 무지의 산물

낙농가들 입장에서 원유가격 인상은 생존의 문제이고, 유업체는 원가 상승의 요인인지라 서로의 입장이 상충할 수밖에 없어 협상이 쉽게 타결된 역사는 없었다.

원가연동제의 도입은 1980년대부터 이어온 낙농가들의 거친 투쟁의 역사를 종식했고, 유업체 입장에서도 원가 변동을 예측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유업체들은 원가연동제 도입 이후 인상 요인이 발생할 때마다 원가연동제 때문에 국내산 우유 판매가 저조하다는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유업체들의 언론플레이는 8월 1일 원유가격 조정 시기가 다가올수록 노골적인 언론플레이로 원가연동제 폐지 주장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원가연동제를 비롯한 낙농제도 개편 논의로 이어지게 된다.

언론들의 주된 논거는 국내산 유제품 재고가 매년 늘어날 정도로 소비가 부진한데 오히려 가격을 높이는 결정을 내리려 한다며 비판을 가하고, 원유가격을 낮춰 소비를 촉진하고, 생산자들이 가격신호에 따라 원유 생산량을 줄이도록 해야하는데 현재는 경제법칙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국내 원유시장과 거래 방법의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국내산 원유는 도매시장에서 경매를 통해 거래물량과 가격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낙농 목장과 유업체가 계약을 통해 물량과 가격을 미리 정하고 거래를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수급에 따라 가격이 형성되고, 가격 신호에 의해 소비와 생산량이 조절되도록 해야한다는 주장은 낙농유가공업계의 거래 방식의 무지에서 오는 잘못된 주장이다.

만약 우유 판매가 부진하다면 유업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완제품 가격을 인하해 판매하거나 낙농가로부터 구매하는 원유량을 조정해 구매 물량을 다시 계약하는 방식으로 대처해야 한다.

 

납유권에 프리미엄 붙으며 구매량 조절도 쉽지 않아

그렇다고 유업체가 낙농가로부터 구매하는 원유의 양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2003년 이후 낙농 유가공업계는 이른바 납유할 권리를 농가 간 사고팔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용인해 왔다. 낙농진흥회 소속 농가 간 납유권(쿼터) 거래가 먼저 시작되었고, 모든 집유 주체에서 납유권 거래가 시행되게 된다. 20년 가까이 납유권 거래가 이뤄지면서 납유권에는 이른바 웃돈이 붙어 농장의 규모를 키우려는 농가들 상당수가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납유권을 구매해 목장을 규모를 키우게 되었다.

유업체와 낙농가의 원유거래계약 즉 구매 수량을 조절하려 해도 이 권리를 구매한 농가들이 너무 많다 보니 어느 정도 이에 대해 보상을 해주지 않으면 큰 분쟁이 발생하고 많다.

상가에 붙는 권리금에 대한 보상 문제로 건물주와 임차인 간에 분쟁이 발생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낙농 유가공업계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납유권의 가격도 집유 주체에 따라 다른데 서울우유협동조합 납유권의 경우 1kg당 90만 원 내외, 낙농진흥회는 60만 원 내외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쿼터 가격이 50만 원에 거래가 되는 유업체가 농가당 일 20kg의 감산을 결정할 경우 이를 보상해 주지 않을 경우 농가 당 1000만 원 정도의 집유권의 손실을 입는 것이고, 우유 출하량이 감소하며 농가당 연간 720만 원의 수입 감소를 추가로 겪게 된다.

원유 매입량을 조절하려면 쿼터에 대한 보상이 최소한 뒤따라야 한다.

 

‘우유 소비 감소’ 높은 원유가격 때문일까?

연동제 폐지에 동조하는 언론은 연동제로 인해 우유 가격이 상승하며 소비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원유가격은 원가연동제 이후 연간 1.2% 상승하였다. 실제 인상 금액도 8년간 총 92원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소비자 물가 지수는 매년 1.3%가 상승하였고, 1인당 국민총소득은 매년 2.8% 늘어나며 원가연동제 도입 당시 2만7천 불이었던 소득은 3만 불을 돌파했다.

소득에 따른 가격 탄력도가 같다고 가정하면 원유가격 인상률이 국민 소득 증가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소비를 제약하는데 원유가격 인상은 매우 제한적이라 할 수 있다.

 

우유 소비를 제약하는 가장 큰 요인은 아기가 과거보다 덜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 인구통계학적 원인을 뒤로하고 원유가격이 문제라고 지적한 것은 문제다.

실제로 과거 영유아와 청소년 중심의 유제품 소비문화는 청장년층으로 확대가 이뤄졌는데, 현재 50대 이하 장년층의 경우 앞선 세대와 다르게 어린 시절부터 유제품을 소비해오면서 우유 소비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고, 유업체도 컵 커피, 기능성 발효유와 같은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유제품을 선보이며 판매량을 확대하고 있다.

성인들의 유제품 소비가 늘면서 국내 유가공업계와 식품회사들은 매년 엄청난 양의 탈지분유와 치즈 등의 유제품을 수입하고 있으며 몇 년 전에는 유제품 자급률 50% 선이 무너지기도 하였다.

 

정부 낙농현실 정확히 파악하고 공정한 중재자 역할해야 

이상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국내 유제품 시장의 불황은 원가연동제 때문이 아니다. 우유의 원료가 되는 원유의 가격은 원가연동제 도입 이후 92원 올랐을 뿐이다.

2001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저출산이 결정적 원인 임에도 불구하고 원가연동제 때문이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정말 원유가격 결정방법에 문제가 있다면, 아니 국내산 원유가격이 너무 비싸 경쟁력 있는 제품을 출시할 수 없다면, 낙농목장의 생산성을 향상할 방법을 모색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원가에 원유가격을 연동하기 때문에 생산성을 향상하면 원유의 원가가 하락해 유업체의 매입 가격도 하락할 수 있을 것이다.

낙농가들이 자조금을 거출해 국내산 원유 소비 촉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낙농가들은 손해를 보고 유업체를 비롯한 식품업체들이 많은 혜택을 보고 있는 만큼 유업체는 국내산 원유를 활용한 제품 개발에 더 노력하는 성의를 보여줘야 하고, 낙농가들도 생산성 향상으로 유업체들의 부담을 낮춰주는 상생을 모습을 서로가 보일 때라 본다.

정부도 이 복잡다단한 낙농-유가공업계의 상황을 직시하고 모든 주체가 동의할 수 있는 최적의 제도 마련을 위해 공정한 중재자로서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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