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 등심 이대로 가다간 '프리미엄' 사라진다
한우 등심 이대로 가다간 '프리미엄' 사라진다
  • 옥미영 기자
  • 승인 2021.08.31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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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유통 No.1 이정익 음성공판장 23번 중매인‧(주)과연미트 대표
"한우 등심이 남는 이유?.. 등심에 기타 부위 붙여 판매하는 관행 원인"

[팜인사이트= 옥미영 기자] 

한우농가들에게 음성축산물공판장은 ‘꿈의 무대’로 통한다.

일일 7~8백여두, 전국 도매시장에서 가장 많은 소와 좋은 품질의 소가 출하되고 가장 좋은 가격을 받는 곳. 때문에 한우농가들은 30개월 이상 정성 들여 출하한 소가 ‘음성’에서 평가받길 원한다. 음성공판장이 이처럼 한우 가격 형성과 지지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능력 있는’ 중매인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우 도매시장의 중앙 무대로 꼽히는 음성공판장에서 가장 많은 소를 구매하는 중매인은 누굴까. 한 달에 3~4백두의 소를 구매‧유통하는 음성공판장 ‘경매왕’ 이정익 중매인을 만났다.

농협경제지주 음성축산물공판장 경매왕 이정익 중매인.
농협경제지주 음성축산물공판장 경매왕 이정익 중매인.

특상등급 한우 2,200만원에 구매

지난 8월 말 시세가 좋지 않다는 금요일 장임에도 2천만원이 넘는 가격이 나왔다.

전남 영암에서 출하한 한우가 kg당 3만9233원에 낙찰받아 8월 20일 음성축산물공판장 최고가를 기록한 것이다. 마리당 지육 금액은 2,200만원.

최고가를 쓴 주인은 23번, 이정익 중매인이다.

이날 이 중매인이 구매한 소는 25마리. 농협유통을 제외하면 최다 마릿수다.

이정익 중매인은 음성축산물공판장에서 가장 많은 소를 사는 ‘경매왕’으로 꼽힌다.

지난해 한 해 동안만 3468두의 소를 매입했다. 금액으로 따지면 무려 278억 원에 달한다.

“오늘 매입한 지육은 마블링지수가 No.9번을 훌쩍 넘는 11번, 12번쯤에 해당합니다. 엉덩이까지 마블링이 꽉 차 있어요. 지육도 563kg으로 육량과 육질에서 완벽한 ‘특상등급’ 인거죠.”

거래처의 ‘선주문’ 없이 최고가를 썼다는 그는 이처럼 다양한 품질의 지육을 상시 구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특상 등급의 거세우부터 낮은 등급 암소까지 그가 거래하는 소매점으로부터 어떤 주문이 들어와도 상시 유통이 가능하단다.

국내 수도권과 서울의 육류 유통의 공급기지로 불리는 ‘마장동 시장’에선 코로나 위기 이후 한우유통업체 수 십여 곳이 문을 닫는 등 구조조정이 본격화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지만, 이정익 중매인의 구매량은 지난해에도 올해도, 어제도 오늘도 변화가 없다.

이정익 중매인이 경매에 앞서 한우지육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는 모습.
이정익 중매인이 경매에 앞서 한우지육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는 모습.

식당·정육점·인스타그램까지 유통채널 다양화로 ‘승부’

이정익 중매인은 직원 30여 명이 있는 육가공업체 ㈜과연미트의 대표이기도 하다. 식당과 카페의 9시 이후 영업이 금지되는 등 코로나로 인한 방역이 강화되는 위기 속에서도 그가 선방하고 있는 데는 전국에 점조직처럼 분포되어 있는 다양한 유통채널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 음식점에서의 소비는 줄었지만, 대신 가정용 소비가 늘면서 정육점에서의 주문량은 전보다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구매가 줄지 않고 있다.

유통채널을 다양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 20여 년간 축산물 유통에 몸담으며 소비 패턴을 몸소 체험하면서부터다.

입학과 졸업 시즌, 5월 가정의 달, 추석과 설 명절 등 계절과 월별 이벤트에 따라 거래처별로 매출 변화가 뚜렷하게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며, 거래처별로 적절한 생존전략을 세우고 대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최근엔 인스타그램으로 자신이 구매한 한우를 직접 홍보하면서, 소비자들과 직접 소통하며 외연을 더욱 넓히고 있다. '육가공업체를 운영하는 중매인'이라는 특별한 이력으로 주목받으면서 이 대표는 한우 한마리에 대해 SNS로 ‘공동구매’를 진행 중이다.

반응도 폭발적이다. 겉지방과 근간 지방을 모두 손질한 알짜베기 한우 등심을 시중 판매가 대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면서 품질은 물론 가격에서까지 만족감을 준다며 호평을 얻고 있다. 

내가 진짜 소장수 (@jung_ik_lee). 이정익 대표가 올린 인스타그램의 한우공동구매 사진과 등심 지육 사진.
내가 진짜 소장수 (@jung_ik_lee). 이정익 대표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한우공동구매 사진과 등심 지육 사진.

한우등심 인기가 시들하다고요?

이 대표는 한우 등심에 대해선 할 말이 많다고 했다.

한우 값이 계속 오르고, 식당 경영이 어려워지다 보니 식당에선 등심이 아닌 부위들을 등심에 섞어 판매하는 일이 잦아졌고, 언제부턴가 소비자들 사이에선 ‘한우 등심은 질기고 맛이 없다’는 평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근 한우 등심 재고가 크게 늘고 채끝 가격이 등심 가격을 앞지른 게 된 것 역시 이러한 배경이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채끝의 경우 특별한 지방 손질이 필요치 않다는 장점도 있지만, 식당에서 ‘진짜 한우 등심’을 찾아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한우 등심이 채끝이나 갈빗살의 인기에 밀리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식당 영업이 크게 위축되면서 등심 소비가 줄어든 것도 맞지만 한우 등심에 대한 소비자들 인식이 예전같지 않아지면서 소비자들로부터 서서히 외면 받게 됐습니다. 식당을 경영하는 분들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한우 등심’만 정직하게 내놓는 것이 아니라 등심에 주변 부위를 붙여 판매하는 관행이 일반화 되면서 등심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채끝이나 갈빗살보다 맛없는 부위로 인식되고 있다는 거죠. 진짜 한우 등심이 제대로 팔리면, 채끝의 인기나 가격은 언제든 역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근내지방도 10,11번 신설하고 ‘2등급=저가한우’ 인식 깨트려야

경매왕이 전망하는 코로나 팬더믹 이후의 한우 시황 그리고 장기적인 전망의 한우산업은 어떨까.

코로나 상황이 종식되어 전처럼 여행이 자유로워지면 한우 소비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일반적 전망에 그역시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한우의 선호도와 소비층이 공고한 만큼 소비자들의 다양성을 갖고 보완해 갈 경우 분명한 경쟁력은 있다고 자신했다.

특히 이 대표는 근내지방도를 완화시킨 등급판정 제도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면서도 ‘하이마블링’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있는 만큼 기름기 적은 한우의 담백한 맛과 고유의 풍미를 좋아하는 소비자 등 선호가 다양해지고 있어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매인 사이에서 특상등급으로 통하는 근내지방도 9번 이상의 하이마블링 소들은 kg당 2만5천~3만원 선에서 거래됩니다. 그만큼 근내지방도 높은 한우에 대한 수요는 여전합니다. 근내지방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된 소 등급판정에 아쉬움이 많은 이유입니다. 더 좋은 품질의 한우를 생산할 수 있지만, 제도가 오히려 높은등급 생산 의지를 제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 대표는 유통 현장에서 통용되고 있는 근내지방도 10번, 11번, 12번을 새롭게 신설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내지방의 최고치를 보다 설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한우 특유의 육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저지방육에 대해서도 새로운 마켓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3등급=싸구려 고기라는 등식을 깨야 한다는 거죠. 요즘 젊은이들은 근내지방 9번 한우를 먹고 SNS에 공유하며 플랙스(과시)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열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넘버9을 먹으면 금세 느끼해진다’는 얘기가 적지 않습니다. 반면에 지방이 적은 2, 3등급 한우에 깊은 맛과 풍미를 느낀다는 소비자 반응들도 많습니다. 소 등급체계는 이처럼 소비자들의 다양성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더 많은 소비자에게 한우가 지속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정익 사장은...

농협음성축산물공판장 중매인 23번이며 (주)과연미트 대표를 맡고 있다. 중매일은 2009년 도드람LPC에서 시작해, 2011 음성공판장에서 중매인 공채모집에 합격한 뒤 음성을 주 무대로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밭 가는 소를 활용해 농사를 지으셨던 할아버지와 낙농목장을 하셨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 축산과 인연이 깊다. 독산동, 안양 협신식품  등 축산물 도매시장 가까이 자라면서 육류 유통업계와 자연스럽게 연이 맺어졌다.

2002년 육류 유통에 첫 발을 들여 놓은 뒤 2000년 구제역 발생, 2003년과 2008년 광우병 파동, 2010년 구제역 대유행까지 소와 함께 인생의 산전수전을 모두 겪었다.

축산 그리고 가축, 특히 소는 그 자체가 ‘나의 인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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