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가속화에 탄소세·탄소 국경세에 주목한다
기후 위기 가속화에 탄소세·탄소 국경세에 주목한다
  • 김재민 기자
  • 승인 2021.09.01 10:15
  • 호수 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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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출권거래제보다 제도 도입 용이
조세 저항·탄소 저감 수준의 불확실성은 극복해야 하는 문제

[팜인사이트=옥미영 기자]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한 수단 즉 정책에는 ①온실가스 배출기준을 정하고 이를 어겼을 경우 법적·행정적 제재를 가하는 직접 규제 ②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사업자에게 배출허용량을 할당하고 기업들이 시장에서 배출권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배출권거래제(Emissions Trading System) ③제품이나 물질에 포함된 이산화탄소의 양에 따라 세금의 형태로 부과하는 탄소세 등이 있다.

온실가스 감축 정책은 직접 규제는 시장 기구를 통하지 않고 온실가스의 감축을 강제하는 수단인 반면, 배출권거래제와 탄소세는 탄소 배출량을 ‘가격화’한다는 점에서 시장유인 규제 수단으로 분류되고 있다.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개최된 환경 및 개발에 관한 유엔 회의에서 기후 온난화 방지협약 이후 탄소세와 배출권거래제는 탄소 저감 주요 정책 수단으로 등장하였고 둘 다 시장 유인 규제 수단이라는 특징 때문에 둘 중 하나의 제도만 있으면 탄소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리고 탄소의 가격을 정부가 책정하는 탄소세보다는 시장에서 탄소의 가격을 결정하는 배출권거래제도가 좀 더 시장 친화적이고, 탄소 감축 유인 효과가 크다는 게 일반적인 관점이었다.

가격 신호를 이용한 저탄소 전략

탄소세(Carbon Tax)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탄소를 함유한 제품이나 제조공정 중 탄소를 배출하는 상품 등에 탄소량에 따라 부과하는 세금이다.

각 상품의 탄소 배출량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탄소 함유량을 기준으로 과세하며 납세자는 탄소를 배출하거나 함유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된다.

상품 원가에 탄소세가 포함될 수밖에 없으며, 고 탄소 제품에 대한 소비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 제조기술 등의 발달로 저탄소 기술이 적용된 상품의 경우 탄소세가 부과되지 않거나 상대적으로 적은 세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상품의 가격은 하락하게 된다.

탄소세는 비시장 재화인 탄소 배출에 가격을 부여함으로써 소비자에게 가격 신호를 보낼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상품의 소비 과정에서 나오는 부정적 외부효과를 완화하거나 없앨 수 있게 된다.

즉 탄소세는 소비자에게는 고 탄소 제품의 소비를 줄이고, 저탄소 제품의 소비를 확대하는 유인이 되고, 기업 입장에서는 저탄소 기술의 개발과 적용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탄소세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 약점

탄소세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은 탄소세 도입으로 고 탄소 제품의 소비 감소를 유도한다는 명분은 좋으나 얼마만큼의 온실가스가 감축될 수 있는지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탄소세는 제품 가격에 지구온난화 비용을 세금을 통해 소비자가 납부하도록 함으로써 가격 신호에 의해 고탄소 제품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것이지만, 얼마만큼의 탄소가 감소할 수 있는지를 알 수는 없다.

만약 고탄소 제품에 일률적으로 10%의 탄소세를 부과한다고 하면 제품 가격은 10% 인상된다고 해서 탄소 배출량도 비례하여 10%가 감소할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소득에 대한 가격탄력성 등을 고려해 탄소세를 부여한다고 해도, 해당 제품이 필수재화일 경우 가격 상승에도 소비량은 줄어들지 않을 수 있고, 경제가 발전하여 국민소득이 올라가면 소비가 다시 증가할 수도 있는 등 여러 가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많은 소비자가 탄소세를 부담하고 제품 사용량을 줄이지 않을 경우 정부는 다시 세율을 인상할 수밖에 없는데, 조세 저항이 크게 일어나면서 이를 추진한 정치 세력들이 부담을 느끼고 탄소세 세율이 실제 탄소가 감소할 수 있는 수준보다 낮게 책정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탄소세 부과 추진 현실의 벽에 부딪히다

탄소세 도입 논의는 2008년 녹색성장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는 교토의정국에서 온실가스를 의무적으로 감축해야 하는 대상국이 아니었지만, 2008년 당시 이미 세계 10대 온실가스 배출국으로 눈총을 받고 있었고, 녹색성장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하에 신재생에너지 등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고탄소 제품이나 에너지에 대한 세율 인상이 필요로 했다.

문제는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유럽과 달리 제조업 중심이고, 에너지에서 화석연료의존도가 매우 높아 탄소세 도입 시 산업경쟁력을 후퇴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는 것이었다.

내수 규모가 작다 보니 통상국가 전략으로 경제를 발전시켜왔기 때문에 같은 제조업 중심 국가들과 원가 경쟁도 매우 치열했던 상황이다. 대문, 중국 등 경쟁국들이 탄소세를 도입하지 않은 상황에서 탄소세 도입은 자칫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결국 2008~2012년 탄소세 관련 연구만 하다가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는 선에서 탄소 배출 저감 정책의 도입은 이뤄지지 않았다.

배출권거래제가 가지는 약점

탄소세는 우리나라가 처한 정치, 외교,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이후 논의 자체가 사라지고 만다.

이로 인해 교토메커니즘 즉 배출권거래제가 더 우월한 방법으로 인식되었다.

정부가 가격을 책정하는 탄소세는 곧바로 이를 책정하는 보이는 손에 대한 대중의 공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배출권거래제에서의 탄소 가격은 시장참여자들이 거래하는 과정 중에 발견되기 때문에 이를 결정하는 손은 애덤 스미스가 말한 것과 같이 ‘보이지 않는 손’이 될 수밖에 없고 대중의 공격을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배출권거래제는 적은 비용으로 효율적으로 탄소를 감축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먼저 자국의 산업별, 기업별 탄소 배출 현황을 파악해야 하고, 기업이 부담을 크게 갖지 않으면서 탄소 감축 효과가 날 수 있는 할당량을 도출해야 한다. 더불어 탄소 배출량을 모니터링하고 인증해 줄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이러한 인프라가 갖춰졌다면 다음은 더 많은 플레이어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탄소배출권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기업과 반대로 이를 충분히 사줄 수 있는 기업이 다수 있어야 하는데, 분업화가 어느 때보다 고도화된 지금 나라마다 특정 산업에 치우쳐 있다 보니 어느 나라는 배출권을 판매자만 몰려 있다거나, 반대로 구매자만 많은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산업 규모가 크지 않은 나라의 경우는 수요와 공급 모두 원활치 않아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이와 달리 탄소세를 부과하는 데는 이러한 인프라를 갖추지 않아도 되고, 각 상품의 소비를 감소시킬 수 있는 가격을 산출하는 수고만 하면 된다. 각 상품의 소득에 대한 탄력성을 계산하고, 어느 정도의 세금을 부과하면 소비가 감소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의 대변화

교토의정서 체제 아래서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다 배출 국가였지만 온실가스 감축의무가 없었기 때문에 탄소세와 같은 정치권이 부담스러운 탄소 저감 정책의 도입은 피할 수 있었다.

결국 2010년대 들어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해 대내외에 공표하는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할 만한 시장의 유인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은 매해 증가하였다.

그러던 중 2020년 이후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새로운 협약이 체결되고, 그동안 온실가스 감축 대상이 아니었던 우리나라도 감축 대상 국가에 포함되게 된다.

하지만,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방법 등은 각국이 상황에 맞게 설정하도록 하면서 이후에도 실효성 있는 감축 목표를 수립하지 않았으나 2020년 들어 우리나라가 개도국으로 분류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우리나라는 개도국 지위 포기 선언을 하게 되고, 2021년에는 공식적으로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분류하면서 기후 위기 대응에 새로운 지도력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 변화에 우리 정부는 2020년 12월 2050 탄소중립 전략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는데, 당시 우리나라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배출량 전망치에서 절대량으로 전환하는 큰 변화가 있었기는 했지만 총배출량 목표가 박근혜 정부 당시 제시했던 것과 같았기 때문에 국내외 모두에서 미흡하다는 여러 지적을 받게 되었다.

이후 2021년 10월까지 우리 정부는 더 진전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하겠다고 대내외에 공표하였고, 2021년 8월 온실가스 감축 시나리오 초안이 발표되기에 이른다.

이제 우리 정부는 이전보다 더 실효성 있는 온실가스 감축 대책을 수립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으며, 주요 대선주자들도 탄소세 도입의 필요성을 밝히면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와 탄소세 융합

탄소배출권 거래제와 탄소세 모두 탄소에 가격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정책으로 보이지만 두 제도는 완전히 결이 다른 프로그램이다.

배출권거래제의 경우 배출 가능한 총 탄소의 양을 규제하는 것이고, 탄소세는 가격을 규제하는 것이다.

배출권거래제가 얼마만큼의 탄소가 감소할 수 있는지 예측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고, 탄소세는 기업이 탄소 저감을 위해 지불할 비용이 명확하다는 장점이 있다.

즉 배출권거래제는 탄소 저감을 목표로 하는 정부 입장에서 명확성이 있고, 탄소세는 비용을 지불하는 기업 입장에서 명확성이 있다.

EU의 경우 탄소세와 배출권거래제가 함께 운용되고 있는데, 두 제도의 장점은 시너지가 되고 단점은 보완되면서 탄소 배출량 감축에 있어 큰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탄소 국경세의 도입

이러한 가운데 미국과 EU가 탄소 국경세 도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탄소 국경세란 저탄소 실현을 위해 각국이 도입한 규제가 상이해 많은 기업이 유럽이나 미국과 같이 탄소 관련 규제가 심한 국가에서 규제가 약한 국가로 공장을 이전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고, EU의 경우 역내 기업들은 저탄소 실현을 위한 큰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과 달리 규제가 약한 기업들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있어 역내 기업들이 가격경쟁에서 항상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이는 법인세율이 높은 나라의 기업들이 법인세율이 낮은 나라로 조세회피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이를 막기 위한 최저법인세율을 정해 지키도록 하기 위한 국제사회가 협의를 하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할 수 있다.

EU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내 기업과 같은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한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취지로 탄소 국경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EU는 2023년 1월 1일부터 철강·시멘트·비료·알루미늄·전기 등 5개 분야에 탄소 국경세를 적용할 계획이다.

탄소 국경세는 EU로 수입되는 제품의 탄소 함유량을 조사해 EU의 탄소배출권거래제(ETS)와 연계된 탄소 가격을 별도로 부과한다. 2023년부터 3년 동안은 수입품의 탄소 배출량 보고만 받고, 2026년부터는 실제로 부과하는 방식이다.

탄소 국경세 징수 대상은 EU 내 수입업자다. 탄소 국경세 적용 품목 수입업자는 사전에 연간 수입량에 해당하는 양의 ‘탄소 국경조정제도 인증서(certificate)’를 구매해야 한다. 인증서 1개는 탄소 1톤에 해당하며, 품목별 탄소량은 생산 과정에 발생하는 직접 배출량으로 계산한다.

이를테면, 한국산 철강 1톤을 생산하면서 발생하는 탄소량이 2톤일 경우, 이를 수입하는 EU 내 수입업자는 철강 1톤당 인증서 2개가 필요하다. 수입업자가 1년 동안 철강 100톤을 수입한다면 인증서 200개를 구매해야 한다.

 

탄소 국경세 도입이 우리 산업에 미칠 영향은?

탄소 국경세는 무역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부분인 만큼 유럽이나 미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 작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한국은행이 7월 29일 발표한 보고서 ‘주요국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EU와 미국이 탄소 국경세를 부과하면 우리나라 수출은 연간 1.1%(약 71억 달러, 한화 8조1,224억)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분석은 EU와 미국 모두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으로 톤당 50달러의 세금을 부과하는 상황을 전제로 했다.

우리 정부는 탄소 국경세 도입에 따른 대응으로 탄소 국경세가 새로운 무역장벽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보고, 탄소중립 정책을 펼치는 나라의 경우 탄소 국경세를 면제해야 한다는 뜻을 표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탄소세를 부과하거나 배출권거래제 시행국의 경우 탄소세를 이중으로 내는 만큼 탄소 국경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쪽으로 협상을 진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본 기사는 농장에서 식탁까지 2021년 7~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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