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 삼겹살] 국내산 돼지고기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
[비욘드 삼겹살] 국내산 돼지고기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
  • 김재민 기자
  • 승인 2021.09.06 10:10
  • 호수 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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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인사이트=김재민 기자] 돼지고기를 지금과 같이 본격적으로 소비하기 시작할 때는 1990년도를 전후해서다.

1980년 쇠고기 가격 자율화 조치로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가격 차가 크게 벌어졌고, 1990년도를 전후하여 냄새가 나지 않는 규격돈 생산이 일반화되면서 돼지고기는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소울푸드로 자리 잡게 된다.

1990년대는 돼지고기 부위별 판매, 부위별 차등 가격제 등이 시행이 된 때이기도 했는데, 부위별 특성에 맞는 조리법이 추천되며 돼지고기 소비의 대 전환이 이때 이뤄지게 된다.

여기에 일본으로 등심과 안심을 고가에 수출하면서 삼겹살, 뒷다릿살, 앞다릿살, 목심 등의 부위를 경쟁력 있는 가격에 공급할 수 있게 되면서 돼지고기 소비가 가파르게 증가하게 된다.

사실 1990년대의 소비 경험은 2000년대 구제역 발병으로 수출이 중단되면서 벌어진 유통환경을 극복해 내는 힘이 된다.

 

삼겹살은 돼지고기 부위 중 가장 비싸지만, 반복되는 대형마트의 할인 행사에 그 가치가 과거 보다 조금 퇴색되었다.

일본으로 수출한 등심과 안심이 전량 국내에서 소비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국내 등심과 안심 소비문화가 마련되지 않은 관계로 비싼 값에 수출했던 부위를 국내에서는 낮은 가격에 판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등심과 안심은 양돈농가의 수익을 보장해 주었는데, 이제 이들 부위 가격이 하락하면서 전체 돼지고기 가격이 하락하는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 위기를 극복하게 해준 것이 삼겹살과 목살과 같은 구이용 부위의 인기였다.

1990년대 삼겹살은 매우 힙한 메뉴로 최근 한우 곱창 열풍이 있었던 것처럼 삼겹살 열풍이 불었고, 그때의 경험이 2000년대 들어서도 이어지면서 양돈업계는 삼겹살 가격을 올려받아 등심과 안심 가격 하락에서 오는 손실을 만회할 수 있었다.

 

문제는 2000년대 삼겹살의 인기가 지속되자 2000년대 삼겹살의 주요 유통처로 떠올랐던 대형할인점들이 삼겹살 할인 경쟁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한마디로 소비자 수요가 많은 삼겹살을 초저가로 판매하며 고객을 유인하는 미끼 상품으로 활용한 것이다.

이러한 할인 경쟁에는 이들 대형할인점을 통해 돼지고기를 판매하는 주요 돼지고기 브랜드들도 참여하면서 가장 비싸게 팔려야 하는 삼겹살과 브랜드 돼지고기가 소비자들에게 가성비 품목으로 인식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지금도 대형할인점에서의 삼겹살 할인 판매는 지속되고 있다.

가성비 품목, ‘서민 음식’이라는 타이틀은 폭넓은 소비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가격 저항이 크다는 치명적 약점도 가지게 되는데, 가격 할인이 단기적으로는 판매량 확대라는 순기능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해당 품목의 가치를 낮게 인식하면서 소비를 위축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품질 경영

한돈의 가치, 삼겹살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돈업계서 들려오고 있다.

지금처럼 가성비 중심의 시장에서는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는 듯하다.

그렇기 위해서 선행될 것이 있다. 바로 품질 개선이다. 한돈업계 사양 전문가들에 따르면 돼지고기는 생산성이 향상되면, 돼지고기의 품질도 향상된다고 한다.

한우의 경우 맛을 내기 위한 투자를 하면 생산성이 하락하는 문제가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돼지는 상충적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우의 경우 맛 중심의 등급제가 정착하면서 등급에 따른 맛을 일정하게 하는 데 성공하였는데, 돼지의 경우 농장끼리는 물론 한 농장 내에서도 품질이 고르지 않다는 문제를 여러 차례 노출하고 있다.(한 대형할인점 돈육바이어에 따르면 10여 개의 브랜드로부터 돼지고기를 납품받고 있으나 품질 개선 요구가 좀처럼 반영되지 않고 있어 매달 평가를 통해 납품량을 조절하고 있으나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답했다.)

2011년~2015년 한우 업계는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으로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는데, 당시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났다. 전반적인 한우 가격은 낮지만 1++ 등급의 경우 상대적으로 높은 수취가격으로 농가들의 손실을 만회할 수 있었다.

이 당시 농가들 사이에서는 생산비를 절감하기 위해 조기 출하 등을 하기보다는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 더 투자에 나서면서 거세 한우 품질이 향상되는 결과로 이어졌고, 같은 기간 고품질의 한우를 저렴하게 맛본 소비자들이 한우 소비 전면에 나서면서 2018년부터 지금까지 매해 한우 공급량이 가격이 폭락했던 2011년, 2012년 수준을 넘어섰음에도 한우 가격은 계속해서 최고가격을 경신하고 있다.

즉 불황기 한우농가들이 품질을 높이려는 노력이 지금의 한우업계 호황의 실마리가 된 것이다.

한돈팜스 2019년 성적을 보면 MSY 기준으로 상위 30% 농가와 하위 30%의 농가 차이는 무려 21:14로 생산성에서 큰 격차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상위 농가와 하위 농가의 생산성 차이가 크다는 것은 돼지고기 품질도 마찬가지로 소비자로서는 품질 차이가 큰 돼지고기를 구매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소비자 선택지를 넓히자

국내 돼지고기 시장은 3원 교잡을 한 백돼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백돼지는 국내 양돈산업의 혁신 산물이었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해외에서 여러 품종이 국내에 도입이 되었으나 품종에 맞는 사양기술이 보급되지 않았고 사료의 공급도 원활치 않은 시대였기에 남은 음식물 즉 구정물로 돼지를 키워, 품질도 생산성도 형편없었다.

키우는 농가들의 수준에 따라 돼지고기의 품질도 천차만별이다 보니 복불복인 상황이 많았고, 좋은 고기를 파는 정육점에 손님이 쏠리는 현상도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킨 것은 삼원교잡을 통해 돼지의 품종 간 격차를 줄이고, 배합사료를 급여하고, 출하체중을 110kg 내외로 통일시키는 규격화가 자리를 잡으면서 어디서 돼지고기를 구매하던 큰 차이가 없도록 만들었다.

돼지고기 품질의 혁신이 일어난 것이고 돼지고기 소비가 급격히 증가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문제는 이런 혁신의 산물도 시간이 지나면서 일반적인 상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앞서 품질 이야기를 하였지만, 지금의 품질 차이는 1980년대 품질 이슈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제 우리 돼지고기에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데, 3원교잡종만으로는 소비자에게 만족감을 주는 데 한계에 와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새로운 상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는 제주흑돼지 시장의 활황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제주산 돼지고기는 육지 돼지고기보다 프리미엄이 발생해 높은 가격을 받고 있는데 제주산 흑돼지 지육 경락 가격이 7월 들어 1만 원을 돌파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비싸더라도 구매하겠다는 소비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제주산 흑돼지와 쌍벽을 이루는 것이 지리산 흑돼지이며, 국내 유색돼지 품종은 버크셔와 듀록, 축산과학원이 육종한 난축맛돈 등 몇몇 유색 재래종이 시장에 공급되어 조금씩 공급량이 늘고 있지만,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유색돼지의 수요가 좀처럼 식지 않고 있지만, 사실 현재 국내에 사육되고 있는 돼지 중 버크셔나 제주흑돈 등이 얼마나 사육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도 되지 않고 있다.

유색돼지처럼 새로운 돼지고기에 대한 소비자 욕구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국내 돼지 생산도 좀 더 다양화될 필요가 있다.

3원교잡종의 경우 생산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는 만큼 중대형 농장을 중심으로 생산성 중심의 백돼지 공급기지 역할을 하고, 중소농장의 경우 유색돼지 품종 사육으로 가치 중심의 돼지고기 시장을 만들어가는 쪽으로 역할을 나눌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가치를 가진 유색돼지의 공급은 늘고, 포화상태에 있는 백돼지의 공급은 조금 줄면서 가격안정, 수급 안정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소비자 측면에서도 다양한 돼지고기 선택지가 만들어지면서 만족도가 상승할 것이다.

 

먹는 방법, 조리법의 다양화

규격돈이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이전인 198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돼지고기 소비 촉진을 위한 방안으로 새로운 조리법에 대한 요구가 많았다.

‘돼지고기를 조금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달라’, ‘새로운 조리법을 개발하자’와 같은 이야기는 1960년대에도, 1970년대에도 1980년대에도 반복해서 요구되었고,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돼지고기 소비 촉진 방법으로 내놓은 솔루션이었다.

돼지의 역한 냄새를 잡기 위한 조리법이 수도 없이 소개되었고, 여러 양념과 향신료가 동원되었다.

1980년대 초까지 돼지고기 주된 조리법은 수육이었는데, 돼지의 잡내를 없애기 위해 삶는 과정에서, 많은 양념이 투하되었고, 급기야는 한약재까지 이용되면서, 한방보쌈이라는 카테고리가 만들어질 지경이었다.

이렇듯 냄새나는 돼지를 혁신하기 위해 요리사들의 솜씨가 지속해서 요구됐으나 정작 농장에서 혁신이 1990년대 일어나면서 돼지고기 소비에 있어 조리사들의 역할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하게 된다. (삼겹살 구이는 손님들이 직접 조리해 먹는다)

 

돼지고기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순회 강습회가 축협주최로 개최되었다는 사진기사다. 서울프라자 호텔에서 개최된 강습회에 영양사, 조리사, 주부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는 내용으로 조선일보 1983년 8월 31일 자 10면에 게재되었다.

 

백돼지의 품질을 향상하고, 새로운 유색돼지 품종이 공급된다고 하더라도 먹는 방법이 과거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면 돼지고기의 가치를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맛에서 과거 저품질의 돼지나, 백돼지와는 조금 향상된 풍미를 즐길 수는 있겠지만, 큰 변화를 이야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돼지고기의 품격과 가치를 높이는 일은 결국 조리와 가공과정에서 일어나야 한다.

최고급식당(fine-dining)에서 돼지고기를 주재료로 하는 격식 있는 코스요리가 개발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한 시도도 중요하지만, 고객들에게 조리를 맡기는 방식을 벗어나 여러 식당에서 돼지고기를 활용한 메뉴 개발이 활발히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닭고기를 예로 들면 현재 치킨 업계는 자고 일어나면 신메뉴가 TV 광고를 통해 소개될 정도로 신상품 경쟁을 벌이고 있다. 프라이드냐 양념치킨이냐의 고민은 20여 년 전의 일이고 브랜드도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각 브랜드가 내놓은 상품의 가짓수도 10여 개에 달해 무엇을 먹을 것인가 행복한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치킨업계의 피 말리는 경쟁 속에 치킨은 싸구려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고 심리적 마지노선인 2만 원을 돌파하는 메뉴가 2~3년 전부터 선보이기 시작했다.

 

육가공의 혁신과 부정적 이미지 타파

사실 돼지고기를 많이 소비하는 유럽과 우리나라의 돼지고기 소비문화를 비교하면 우리 양돈업계가 매우 불리한 상황임을 금방 인지할 것이다.

유럽지역의 경우 육가공품으로 돼지고기를 많이 소비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신선육으로 소비가 절대적이다.

육가공품은 신선육과 비교해 저장성이 뛰어나고, 맛과 풍미를 높여 돼지의 모든 부위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유럽은 오랫동안 육가공기술이 발달하며 대표적인 육류음식으로 자리 잡았지만, 국내에서는 육가공품이 막 성장하기 시작하던 1990년을 전후해 너무나 많은 부정적인 사건이 반복해 일어나면서 사실상 국내 육가공산업의 규모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상황이다.

육가공품에 드리워져 있는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는 데 있다.

육가공품을 통한 소비가 늘어나려면 공장형 햄과 소시지의 경우 김밥과 부대찌개와 비슷한 새로운 매가 수요처를 개발해 내야 한다.

하지만 이른바 공장형 햄의 경우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성장의 한계에 다다른 만큼 중소규모의 즉석 육가공이 틈을 메워줘야 하는 상황이다. 그동안 즉석 육가공의 성장을 가로막았던 규제가 완화되었지만,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학교가 거의 존재하지 않다는 게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육가공기술의 연구 그리고 교육 분야가 발전하지 않고서는 정체된 소비를 끌어 올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

 

비욘드 삼겹살을 위한 제언

삼겹살은 한돈산업을 지탱해 주는 최후의 보루다.

삼겹살은 넘어서야 한다는 이야기는 삼겹살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을 더 활용하자는 이야기다.

품질 경영은 궁극적으로 삼겹살의 품질을 높이는 것이 될 것이고, 다양한 품종 도입은 다양한 삼겹살로 귀결될 것이다.

먹는 방법, 조리법의 다양화는 삼겹살을 먹는 방법의 다양화로 이어질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농장에서 할 수 있는 일과 전방산업인 외식업과 육가공업, 식육 판매자들이 대응해 줘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

즉 어느 한 주체만이 노력해서 이룰 수 없는 성과라는 것이다.

육가공 기술인을 양성할 수 있는 학교의 부재는 우리 축산업이 생산부분에 지나치게 치우치게 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자조금의 활용도 마찬가지다.

생산부분의 혁신이 우리 양돈산업의 발전을 지난 30여 년간 이끌었다면, 이제 육가공분야, 외식분야 혁신이 함께해야 우리 국산 돼지고기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혁신은 꾸준한 기술개발과 인적자원의 축적 그리고 자본이 결합할 때 일어난다.

1990년을 전후로 일어난 양돈농장의 규격돈 혁명은 농가들이 과거의 사양방식을 벗어나고 새로운 사양기술을 받아들이면서 가능해졌고,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현장에 뛰어든 축산학도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할 때의 만족감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가치(가격)보다 해당 상품을 저렴하게 구매했을 때 커지게 된다.

샤넬이라는 명품 브랜드는 가장 많이 팔리는 토트백의 가격을 2~3년에 한 번씩 인상을 단행하는데, 가격이 인상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 가격이 오르기 전에 사야 한다며 매장마다 해당 제품을 구매하기 위한 소비자로 인산인해를 이른다고 한다. 똑같은 제품이지만 내년에는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올해 구매에 성공하면 높은 가치의 제품을 저렴하게 샀다는 만족감이 커지기 때문이다.

우리 돼지고기의 미래는 이 소비자의 기대치를 어느 수준까지 올릴 수 있을 것이냐에 있다.

여전히 가격에 민감한 상품이라면 소비자가 생각하는 가격 수준이 낮아 그보다 낮은 가격에 공급해야만 소비가 일어날 수 있다.

소비자가 기꺼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상품으로의 진화가 지금 필요해 보인다.

*본 기사는 농장에서 식탁까지 2021년 7~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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