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4년 전 오늘 - 축산 소식53] 조선시대 처음으로 돼지나 양을 거세토록 한 세종(世宗)
[594년 전 오늘 - 축산 소식53] 조선시대 처음으로 돼지나 양을 거세토록 한 세종(世宗)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8.09.2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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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68호, 양력 : 9월20일, 음력 : 8월11일

조선왕조실록에서 거세(去勢)에 관한 기록은 30여건으로 그 중에 가축에 관한 기록은 10여건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주로 사람의 육형(肉刑)에 해당하는 궁형(宮刑)에 대한 것입니다.

반면에 원래 말(馬)을 거세한다는 의미인 작선(作騸)이라는 단어는 모두 가축에 대한 내용으로 10여건의 기록이 남아 있으며 주로 말(馬)에 대한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축별로 거세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말에 대해서는 좋은 말을 기르기 위해 거세하여 생식 기능을 없앤 말을 선마(騸馬)라 하였으며, 병조(兵曹) 예하의 사복시(司僕寺)에 소속된 종6품의 관리인 양마(養馬)가 직접 거행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소에 대한 거세 기록은 성종(成宗)대에 선농단(先農壇)에서 제사를 올릴 때 기록한 사(詞)에 ‘임금이 몸소 밭갈 적에 거세(去勢)한 소에 멍에를 씌웠다.(王乃躬耕, 葱犗縹軛)’는 내용이 유일한 기록으로 여기서 쓰인 ‘개(犗’)라는 한자가 ‘거세한 소’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돼지인 경우 분시(豶豕)라 하여 ‘거세한 돼지’에 대한 기록이 몇 차례 있고, 특히 중국이 조선 임금의 승하(昇遐)시 행한 사제(賜祭)인 경우 예조 인(禮曹印)이 찍힌 제문(祭文)을 든 사신과 제물 및 제찬(祭饌)을 준비할 두목(頭目)이 조선에 파견되어 제찬을 직접 준비하고 길일을 선택하여 제사를 행하였는데, 이 때 제물 중에서 희생은 반드시 거세한 양과 돼지를 쓴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594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처음으로 제향에 쓰는 양이나 돼지는 거세한 것을 미리 길러 사용하라는 계(啓)가 있었습니다.

 

■세종실록 25권, 세종 6년 8월 11일 계축 기사 1424년 명 영락(永樂) 22년

제향에 쓰는 양이나 돼지는 거세한 것을 미리 기르도록 예조에서 계하다

예조에서 계하기를,

"지난 경자년에 사신으로 온 예부 낭중 조양(趙亮)이 받들어 가지고 온 공정 대왕(恭靖大王)의 사제 희생(賜祭犧牲)과 계묘년에 예부 낭중 양선(楊善)이 받들어 가지고 온 태종 공정 대왕(太宗恭定大王)의 사제 희생은 모두 거세(去勢)한 양과 돼지를 썼으므로, 그들을 접대하던 의정부 참찬 황희(黃喜)가 묻기를, ‘희생을 어찌하여 거세한 것을 쓰느냐. ’고 하니, 양선이 대답하기를, ‘숫 짐승은 비리기도 하고 살지고 크지도 않으므로, 무릇 원구단(圓丘壇)이나 종사(宗社)의 제사에는 우생(牛牲) 외에는 모두 거세한 것을 쓴다.’ 하고, 겸하여 희생을 선택하여 미리 기르는 법을 더 자세하게 말하였고, 그 후에 판서 신상(申商)이 사신으로 갔을 때에 예부에 질문하기를, ‘제사에 거세한 희생을 쓰는 것이 「몸뚱이가 완전한 것을 전(牷)이라」고 한다는 뜻에 어긋나지 아니한가.’ 하니,

주사(主事) 진준(陳俊)이 대답하기를, ‘지체(支體)에 갖추지 못한 것이 있으면 전(牷)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결하고 살지고 기름지게 하려고 거세하는데 무엇이 완전하지 않다고 혐의할 수 있겠는가. 숫놈 같은 것은 비단 제향이나 어선(御膳)에 쓰지 아니할 뿐 아니라, 보통 사람도 역시 먹지 아니한다.’ 하오니, 중조(中朝)의 제도에 따라, 크고 작은 제향에 쓰는 양이나 돼지는 모두 다 거세한 것을 미리 기르게 하고, 그 거세한 불알은 《문공가례(文公家禮)》의 양복(楊復)의 주석에 ‘무릇 제사지내는 고기에 오려 내고 그 나머지는 가죽이나 털 같은 것까지도 밟아 더럽혀서 부정하게 하지 말라. ’는 제도에 따라 즉시 묻어버리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8책 25권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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