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낙농산업(제3편)
격동의 낙농산업(제3편)
  • 김재민 기자
  • 승인 2022.01.04 10:15
  • 호수 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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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롤러코스터와 같았던 2010년대 우유 수급 상황

가. 대규모 우유 부족 사태

농가 간 쿼터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낙농 유가공업계는 안정을 되찾아 간다. 농장을 지속하려는 자와 폐업하려는 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고, 그 사이에서 실속을 챙긴 정부와 낙농진흥회, 유업체는 6년 정도 수급 조절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상황이 지속된다.

2002년 54만3,587두에 달했던 2003년 낙농목장 구조조정으로 젖소는 2만5천여 두 감소하지만 이후 폐업 등의 영향으로 매년 1~2만두 정도의 젖소가 줄어 2010년 42만9,547두까지 감소한다.

그러던 중 2010년 구제역이 발병하고, 2011년 회복하기 힘든 상황까지 확산하면서 젖소 사육두수가 40만두로 급감하게 된다. 2010년 쿼터 거래와 구제역 발병 등의 영향으로 1만5천두 정도가 감소했는데, 이듬해 다시 대규모 살처분으로 3만두 넘는 젖소가 살처분되면서 원유 부족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유업체들은 원유가 부족해지자 1990년대 있었던 농가 빼가기가 성행하기 시작했고, 20년 만에 원유 유통 질서 유지 행정명령이 발동되기도 했다. 농가 쿼터를 일시적으로 확대해 주거나 농가에 할당된 기준원유량보다 더 생산된 초과 원유도 정상 가격에 매입해 준다. 수입분유 3만톤에 대해 할당관세를 적용하는 등 수급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동안 원유 감산을 유도해왔던 기조가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증산으로 전환되면서 생산기반은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한다.

당시 전문가를 비롯한 낙농업계에서는 2011년 대규모 살처분으로 무너진 생산기반을 회복하는데 최소 2년 늦어도 3년 정도는 걸릴 것으로 예측했으나 2012년 2분기 들어서는 잉여 원유가 다시 발생하며 증산정책을 폐기해야만 했다.

낙농진흥회는 기준원유량을 상회하는 초과 물량까지 정상 가격을 주던 것을 2012년 10월부터 폐지하고 국제가격만 지급하기로 하는 등 물량 조절에 나선다.

나.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잉여 원유 발생

2000년대 대규모 잉여 원유 사태는 공급 측면에서 발생했다면, 2010년대 대규모 잉여 원유 사태는 소비 측면에서 기인한다. 유제품 주 소비층은 0세부터 만 14세 미만 청소년인데 출산율은 2001년 50만명대로 감소한 이후 40만명대를 10년간 유지하게 된다. 출산율이 2000년 대비 20만명 정도가 매년 감소하면서 주 소비층에서만 누적 200만명 정도가 감소하였고 2012년 원유생산량이 구제역 발병 이전과 비슷한 수준에서도 원유가 잉여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2011~2012년 대규모 증산정책에 따라 후보 소를 늘린 여파로 2014년 원유생산량은 221만 톤으로 구제역 발병 이전인 2019년 211만 톤보다 10만 톤이나 증가하면서 낙농진흥회를 비롯한 유업체들이 대규모 잉여원유로 몸살을 앓게 된다.

 

더 우울한 전망은 2001년 이후 40만명대를 유지해왔던 출산율이 2016년부터 지속적으로 감소해 2020년 20만명대까지 하락했다는 것이다. 지난 2003년 이후 지속된 200만톤 내외의 원유생산량이 기존 소비층만을 고려할 때 더 감소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 쿼터제도 변천사

쿼터 제도는 잉여원유차등가격제가 도입되면서 자연 발생하였고, 농가 간 쿼터의 매매를 허락하면서 낙 농목장 면허와 같은 역할로 변화하여 현 쿼터 제도로 굳어지게 된다.

낙농진흥회가 쿼터 매매를 허락하면서 요구한 조건은 매매 쿼터의 일정 비율을 소각하는 것이었는데, 낙농진흥회는 이를 귀속분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농가에 할당됐던 쿼터가 낙농진흥회 소유가 된다는 것으로 귀속률은 10~20% 내외로 집유 주체마다 수급 상황에 따라 귀속률을 조정해 적용해 왔으며 초과 물량에 대한 가격 정책도 바뀌어 왔다. 원유가 남으면 초과 물량 가격을 낮추고, 모자라면 초과 물량 가격을 높이는 식으로 수급을 조절하여 왔다.

 

문제는 원유 수급 상황이 나빠진 2014년부터다. 젖소 도태 등 강력한 수급조절 사업이 시행과 함께 초과 물량 가격을 리터당 100원으로 조정하고, 2021년부터는 기준원유량의 96%만 정상 유대를 지급하는 등 농가들의 증산 의지를 억누르고 있다.

이로 인해 현재 전체 쿼터 221만 톤 중 실제 생산량은 205만톤 내외만 생산하고 있으며, 15만톤 내외의 쿼터가 사실상 증발한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에 도달해 있다.

2. 원유가격 결정 방법의 변화

가. 원유가격 결정의 민간 이양

낙농목장에서 유업체 등 수요자에게 판매하는 우유 가격은 1990년대까지 원가와 수급상황 등을 고려해 정부가 결정해 고시하여 왔다.

낙농유가공산업 자체가 정부 주도로 급속히 만들어졌고, 1970년대까지 사실상 축산물 가격을 정부가 정해왔던 관례에 따라 원유의 가격도 정부가 정해 고시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하지만 WTO 출범 등 환경변화로 더 이상 정부가 이를 계속해서 고시하는 것은 어려워졌다.

1998년 낙농진흥회 출범과 함께 낙농진흥회는 집유일원화사업 추진과 함께 낙농진흥회가 농가로부터 구매하는 원유의 가격을 이사회를 통해 정하도록 제도를 정비하였다.

낙농진흥회 이사회에는 낙농가와 낙농조합 대표, 유업체, 학계, 소비자단체, 정부가 이사로 참여하였다.

하지만 원유가격 조정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최대한 비싸게 팔고 싶은 낙농가 입장과 최대한 싸게 구매하고픈 유업체의 입장이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2004년 첫 원유가격 조정은 대규모 상경 시위 등이 있었지만 정치권까지 원유가격 조정에 깊이 관여하면서 그나마 쉽게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이후 원유가격 조정은 쉽지 않았다. 국제곡물가격이 2007년에 이어 2008년에도 폭등하면서 원유가격 현실화가 추진되었다. 생산자단체의 요구와 유업체의 제시 금액 차이가 크다 보니 결국 두 번째 조정 때부터는 극한의 대립 구도가 만들어졌다.

낙농가들은 아스팔트 위로 쏟아져 나왔고 낙농가 대표인 낙농육우협회장은 수일간 단식을 이어가는 초강수를 둔 끝에 겨우 합의를 끌어낼 수 있었다.

세 번째 조정은 2011년에 이뤄졌으나 2008년보다 양측의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원유가격 조정이 쉽지 않았다. 생산자와 유업체 모두 좀처럼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정부의 중재도 쉽지 않았다.

 

나. 원유가격 원가연동제의 도입

2011년 원유가격 협상은 낙농가와 유업체는 물론 정부까지 매우 곤혹을 치렀고, 언론의 관심도 높아지면서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결국 정부는 이러한 사회적 갈등을 줄여야 한다며 원유가격 조정을 협상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 해 나가는 것을 제안하여 관철하게 된다.

2011년 탄생한 원유가격 원가연동제는 통계청의 우유 생산비와 소비자 물가상승률 등을 반영하는 공식으로 원유 기본가격은 통계청 생산비를 반영한 기준 원가와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변동원가를 더해 산출한다.

즉, 물가가 오르고 생산비가 오르면 원유 기본가격이 상승한다는 것이다. 인상 요인이 있다고 곧바로 인상하지는 않는다. 새롭게 산출된 원유 기본가격이 이전 기본가격과 비교해 4% 이상 올라야 한다. 4% 미만일 경우 인상분은 이듬해로 이월되도록 설계되었다.

4% 미만의 인상 요인은 낙농가들이 자체 경영합리화를 통해 내부 흡수하도록 함으로써 원유가격이 너무 자주 조정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도 만들었다.

3. 복잡하게 꼬여 버린 낙농제도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쿼터제, 원유가격 원가연동제는 우유의 소비가 계속해서 일정하게 유지되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2010년대 들어 출산율이 2000년대보다 더욱 급감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원가연동제 도입 후 첫 적용이 되었던 2013년 원유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사료가격의 가파른 인상과 통계청의 우유 생산비 기준에서 낙농가의 자가 노임에 대한 기준이 현실화하면서 유질 등에 따른 인센티브를 더한 원유가격이 리터당 1,000원을 돌파했다.

이는 원유를 구매해 판매하는 유업체로써는 매우 큰 부담일 수밖에 없는데, 설상가상으로 출산율이 2010년대 들어 더욱 하락하면서 국내산 원료로 사용하는 유제품의 판매량 또한 계속 감소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유업체 입장에서는 농가로부터 구매하는 원유량을 감축해야 하는데, 시장의 수급 상황이 가격으로 전가되지 않는 불합리한 상황이 계속된 것이다.

여기에 쿼터로 인해 농가가 생산한 원유를 임의로 삭감하기도 쉽지 않으면서 유업체들은 2018년 원유가격조정을 전후한 시기부터 원가연동제가 반시장적 제도라며 개선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2020년부터 가격결정 체계를 비롯해서 전반적인 낙농제도 개편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된 유업체들이 무리하게 낙농가의 생산량을 제약하는 데 급급하여 만들어진 쿼터제가 부메랑처럼 작용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여기에 원가연동제까지 더해지면서 비상 상황을 극복해 낼 묘수가 발견되지 못하고 있다.

2021년 12월 현재 낙농 유가공업계, 정부, 학계, 소비자단체 등은 꼬일 대로 꼬여버린 현 상황을 극복해 내고자 협상과 회의를 지속하고 있지만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4. 소결

2010년대는 구제역 발병에 따른 생산기반이 일부 붕괴하면서 원유 수급에 큰 혼란이 발생했다.

소비감소로 조금씩 감산에 힘을 기울여 수급을 맞춰나가야 했으나 일시적인 공급부족에 증산책을 남발하면서 2010년대 내내 잉여 원유가 대규모 발생하면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여기에 단기적 소비 확대를 위한 가장 확실한 카드인 가격 할인은 원유가격 결정을 쉽게 해 보겠다는 행정 편의주의적 접근으로 원가연동제가 만들어지면서 원유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가격 조정을 통한 단기적 소비 확대 방안도 적용하기 힘든 카드가 되고 말았다.

원유가격 조정을 협상에서 시스템에 의해 조정될 수 있도록 한 것은 매우 획기적인 방안이었지만 시장이 축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를 어떻게 조절해 나갈 것이냐라는 숙제를 남기고 말았다.

*본 기사는 농장에서 식탁까지 2021년 송년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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