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9년 전 오늘 - 축산 소식55] 귀화한 외국인에게 임금이 타는 말을 관리하게 하였다
[499년 전 오늘 - 축산 소식55] 귀화한 외국인에게 임금이 타는 말을 관리하게 하였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8.09.27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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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70호, 양력 : 9월27일, 음력 : 8월18일

[팜인사이트= 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외국인으로서 조선에 귀화(歸化)하여 사는 것을 귀복(歸服), 귀부(歸附), 귀조(歸朝),내귀(來歸), 내복(來服), 내부(來附), 내투(來投), 투화(投化), 내항(來降) 등이라 하였습니다.

조선시대 귀화인은 대개 건국 때부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직후까지 조선으로 들어와서 사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주로 한족(漢族), 북방의 여진족, 남방의 왜구 등이었는데, 한족의 경우 임진왜란 때 명나라 지원군으로 조선에 왔던 장병의 후손이거나 반청복명(反淸復明)을 위해 조선으로 건너온 사람들, 혹은 명의 멸망 후 요동 지역 등으로 유입된 유민 등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조선 왕실에서는 이들에 대해 향화인(向化人)과 황조인(皇朝人)으로 구분하였는데, 대개 향화인은 북방 여진족, 남방 왜, 소수의 아랍계 등이고 황조인은 한족(漢族)에 해당하였습니다. 또한 조선 초기 조정의 왜구 대책과 일본 내 토지나 식량 부족으로 투항한 왜구들 위주로 귀화한 사람들은 특별히 향화왜인(向化倭人)으로 불리었는데, 이들은 한때 경상도에 나누어 거주하며 그 인원수가 많을 때는 2,000여 명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대우는 출신에 따라 차이가 있었는데, 황조인인 경우 명나라 관직자의 후손이거나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사람의 후손에 대하여는 특별히 관직을 제수하거나 증직(贈職) 하여 관리하였고, 별도 장부(華人錄)를 만들어 역(役)을 면제해 주고, 쌀 등을 지급하거나 상을 내리고 혼수까지 마련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향화인, 왜인(倭人)들 중에 특별히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당시 양반은 물론 서얼, 양민에 이르기까지 신분에 구애되지 않고 무재(武才)가 뛰어난 사람들로 선발하여 운용하던 궁궐 호위 군사인 내사복(內司僕)에 편입시켜 임금이 타는 어승마(御乘馬)의 관리는 물론 궁궐 입직(入直)과 시위(侍衛) 까지도 담당하였습니다.

499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귀화한 사람들을 가려서 사복(司僕)에 임명하는 일에 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중종실록 36권, 중종 14년 8월 18일 기묘 기사 1519년 명 정덕(正德) 14년

귀화한 사람들을 가려서 사복으로 임명하는 일을 정부에 의논하도록 명하다

귀화한 사람들을 가려서 사복(司僕)으로 임명하는 일을 정부에 의논하도록 명하여 분부하기를,

"이장곤·최한홍(崔漢洪)의 묶어두자는 말이 옳은 듯하나, 나의 생각에는 이류(異類)들을 서울에 많이 있게 함은 불가하다고 여긴다. 진(晉)나라 때의 폐단을 경계삼아야 하니, 묶어놓자는 것이 가한 듯하지만 퍼지게 된다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이다. 또 한홍이 말한 말값을 주자는 일은 지당하니, 비록 한때에 다 주지는 못하더라도 말로 주든지 면포(綿布)로 주든지 충당해 줌이 가할 듯하다. 제도(諸道)의 목장에 말이 적지 않아 늙어서 죽게 되거나 쓸데없는 것이 또한 적지 않은데, 만일 군졸들에게 나누어준다면 스스로 숙마(熟馬)를 만들어 쓰게 될 것이니 편리한지를 병조에 물으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8책 36권 62장

【주】 이류(異類) : 귀화한 사람들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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