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계만도 못한 존재였습니다”
“우리는 기계만도 못한 존재였습니다”
  • 옥미영 기자
  • 승인 2022.02.15 16:17
  •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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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필성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노조 지부장
계란으로 바위치기 될 지 언정
비정상의 정상화위해 투쟁할 것
김필성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노조 지부장.

 

“한 조합원이 이런 얘길 하며 하소연하더군요. ‘우리가 기계가 아니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라고요. ‘차라리 우리가 기계였다면 다 닳고 고장 나 새것으로 바꿔 주었을 것인데, 우리는 기계만도 못한 존재였다’라는 말에 제 마음도 무너졌습니다.”

김필성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노조 지부장은 방역본부 노동자의 얘기를 전하며 얼굴을 떨궜다. 김 지부장은 공공기관 직원으로 가축 질병 예방과 소비자들에게 안전한 축산물을 공급하겠다는 사명감은 고된 노동과 열악한 처우 속에 고통의 신음으로 바뀐 지 오래라고 했다.

김 지부장은 “중앙정부와 지자체로 각기 운영 중인 가축질병시스템을 국가 단위로 일원화하고, 질병 예방과 안전축산물 공급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기본 생활권을 누리며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우리의 가축방역위생 시스템이 선진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필성 지부장과의 1문 1답이다.

 

Q. 방역본부가 생긴 지 처음, 노조가 생긴 지 11년 만에 파업이 이뤄졌다. 어떤 이유에서였나.

A. 시작의 발단은 열악한 처우개선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어찌 됐건 사측을 통해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었지만, 한계가 있었고 노동쟁의를 통한 조정 신청에 들어갔지만, 결국 조정이 불성립되면서 합법적으로 쟁의할 수 있는 권한이 우리(노조) 쪽으로 넘어오게 됐다. 99%의 조합원들이 파업 찬반 투표에 참여해 97%가 찬성했다. 방역본부의 모든 구조적 문제와 모순에 심각성을 느끼고 있었던 조합원들 모두 ‘발화점’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Q. 임금협상 문제가 결렬되며 파업에까지 이르게 된 것인가.

A. 겉으로 보이는 건 임금협상이지만 단순한 임금 문제가 아니다. 곪아 썩어질 대로 썩은 가축위생방역시스템을 개선하고, 공공사업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처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우리나라의 가축위생방역은 한계에 달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알려진 바대로 방역본부는 99년 민간단체의 돼지콜레라박멸비상대책본부로 120여 명 직원으로 출발했다가 이후 조직이 커지며 콜레라뿐만 아니라 구제역과 AI를 비롯한 6대 가축 질병 예찰 업무와 위생 및 검역 업무를 가져오면서 1274명으로 늘었다. 업무가 늘어나며 조직 충원 등 양적인 팽창은 이뤘지만 1219명이 무기계약직으로, 정규직은 55명인 뿐인 기형적 구조가 되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Q. 노동쟁의의 가장 큰 쟁점은 불용 예산의 활용 문제 때문이라고 들었다.

A. 불용 예산이 쟁점이 된 것은 맞지만 누더기식으로 급조된 조직의 병폐가 사업 예산편성과 운영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어 이를 바로잡고자 한 것이다. 방역본부 소속의 방역사와 검사원들은 전체 1274명 중 각각 496명과 348명으로 큰 축을 차지한다.

문제는 이들의 인건비가 국비(60%)와 지방비(40%)로 혼합되어 예산이 불용 될 때마다 모두 지방자치단체로 반납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불용 된 예산은 고된 업무에 지쳐 일을 그만두거나 육아휴직에 들어간 직원들의 인건비가 불용된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동료 직원의 공백을 힘겹게 메운 직원들의 처우개선에 활용하는 게 마땅하지만, 지금까지 현실화하지 못했다.

애초에 조직의 확대와 예산 수립이 짜깁기식으로 편성돼 지금까지 운영됐던 데다 보수적인 사측의 입장으로 방역본부 노동자들의 처우는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공공기관의 인력과 운영은 공공기관이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긴급한 상황이 발생할 때도 지방비 보조금으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게 지금의 방역과 위생 점검 현장의 현실이다.

 

Q. 기관의 필수 업무의 대부분을 무기계약직으로 운영하는 가운데 이들의 근속연수가 6.9년이지만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에도 미치지 못하는 3570만 원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 현재 가장 시급한 과제가 방역본부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이라고 보는가.

A. 2가지로 보고 있다.

먼저, 정부가 가축 방역을 위해 해마다 대대적인 대책을 내놓으며 사활을 걸고 있음에도 질병 발생이 끊이지 않는 것은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가축위생방역시스템의 부재 때문’이라고 본다.

현재 정부와 지자체는 가축 질병이 생기면 그때의 상황만을 전시(戰時) 상황으로 여기며 순간의 고비만 넘기려고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으로는 가축 질병 발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예방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선 지금까지 정부, 검역본부, 지자체 등으로 나눠진 가축 질병 방역시스템을 국가 단위로 일원화해야 한다. 여기에 축산 현장의 최일선에서 방역과 축산물 위생을 책임지는 방역사와 검사원들의 열악한 근무 여건이 개선되지 않는 이상 가축 방역과 축산물의 위생 안전은 결코 답보할 수 없다.

국가 방역시스템과 방역본부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은 ‘하나’의 몸처럼 유기적인 연관 관계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Q. 축산물 위생과 가축 방역시스템이 일원화되어 있지 못한 현실도 방역사와 검사원들의 근무여건을 더욱 악화하고 있다는 진단이 있는데.

A. 현실이 그러하다. 가축방역사들의 고유 업무는 6대 가축 질병(구제역, 소 브루셀라, 결핵, 닭 뉴캐슬병, 돼지 열병, 돼지 오제스키병)의 시료 채취 사업과 AI 상시 예찰 사업인데 ASF와 AI, 초동 방역 등 모든 비계획적 지원 업무들이 정부는 물론 지자체를 통해서도 시달된다.

정부는 정부대로,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예산을 분담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각종 점검 업무도 마찬가지다. 방역본부가 현장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으니 협조라는 명목으로 정부와 지자체의 점검 요청도 만만치 않다. AI와 관련된 입식 전 검사 등도 원래 지자체 업무였지만 어느 순간 방역사들의 업무가 되어버렸다. 총괄 기관에서 업무를 통솔하고, 관리해야 하는데 중구난방식으로 이곳저곳에서 계획적이지 않은 업무가 떨어진다.

도축장들의 검사원들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도축장 인허가권은 지자체에 있고, 도축장의 점검 업무는 식약처 소속이다 보니 검사원들은 식약처 소속이면서 농식품부 업무를 위탁 처리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면서도 지휘와 통솔은 지자체 소속의 검사관들에게 받고 있다.

지난해 포유류와 닭의 도축‧도계 숫자가 큰 폭으로 늘었지만 정작, 방역본부에선 이들에게 지원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Q.축산농가들의 경우 방역본부 예찰원들의 전화 예찰 업무와 관련해서도 불만이 적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찰원들 역시 업무에 어려움이 예상되는데.

A. 인콜(전화를 받는 것)이 아니라 아웃콜(전화를 거는 것)이다 보니 민원이 심하다.

또 질병이 발생하면 이를 확인하는 전화도 지자체와 방역본부가 각각 나뉘어서 하는 경우가 많아 이같은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는 농가들 입장에선 화가 날 수 있고, 이러한 폐해가 고스란히 예찰원들에게 돌아온다. 예찰원들 역시 감정노동자들이어서 마음을 다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때문에 누가 먼저 전화를 하는지 ‘시간 싸움’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농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나 점검도 마찬가지다. 워낙 빈번하게, 이곳저곳에서 전화 예찰이 이뤄지는 데다 실제 방역현장과 관련 없는 질문들이 많아 이 역시 모든 화살이 예찰원들에게 돌아간다.

예찰과 현장이 분리되어 있기에 발생하는 문제라고도 보고 있다. 전화 예찰하는 직원들도 현장을 확인하고 농가들과 소통하면서 농가들이 현장에서 문제를 느낄 때 예찰 직원들을 찾게 만드는 인콜 시스템으로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고 본다.

지난 1월 20일 가축방역지원본부 노동자 총 파업 궐기대회에서 김필성 지부장이 <br>연설하고 있다. <br>
지난 1월 20일 가축방역지원본부 노동자 총 파업 궐기대회에서 김필성 지부장이
연설하고 있다.

 

Q. 공공기관이며, 조직의 인건비 구조가 복잡해 기재부까지 설득해야 하는 등 제기하는 문제들이 쉽사리 풀리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A.1차 파업(1월 22~27일)이 종료되어 현장으로 복귀했지만, 우리와 같은 저임금 기관에서 무노동 무임금을 결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구조적인 문제를 털지 않으면 방역본부는 영원히 바뀔 수 없다고 보았다.

비정상적인 구조를 정상화해 나가자고 결의했다.

얘기한 대로 우리는 가축 방역과 국민의 안전한 축산물의 먹기를 책임지는 공공기관이다.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구조와 갈수록 악화하는 노동조건에선 맡겨진 업무를 제대로 수행해 낼 수 없다. 우리의 요구는 단순한 이기심이 아니라 생산자들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소비자들을 위한 축산물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함이다. 

더욱이 가축 질병 발생은 생산자는 물론 소비자에게까지 피해가 이어지는 국가적 차원의 재난이다. AI 발생으로 인한 달걀 값 폭등이라는 가장 가까운 현실이 이를 입증하지 않았는가.

비록,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될지 언정 비정상을 정상화하기 위한 우리의 투쟁을 지속할 것이다.

*본 기사는 농장에서 식탁까지 2022년 신년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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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2-02-28 18:06:49
지지합니다

위생방역 체계 개편 2022-02-16 19:13:49
가축위생방역 체계 개편을 위한 노력을 적극 지지합니다.

석열이형구해줘 2022-02-16 15:07:44
자랑스러운 방역본부의 일원으로 계속 근무할수 있도록 해주십시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2022-02-16 13:08:21
정부는 가축방역시스템 일원화 수용하라

방역본부힘내라 2022-02-15 20:34:46
모든 방역본부 무기계약직 직원여러분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