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현장르포 下] 약해피해 농가는 영원한 '을'···제대로 된 피해규명 시스템 필요
[추적! 현장르포 下] 약해피해 농가는 영원한 '을'···제대로 된 피해규명 시스템 필요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8.10.02 0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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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인사이트(경남 밀양)=박현욱 기자]

이상만 약해 대책위원회 위원장이 약해 피해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이상만 약해 대책위원회 위원장이 약해 피해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약해 사건이 발생하면 농가는 언제나 약자다. 농약 사고는 전문가의 영역이다 보니 문제인식부터 제대로 된 대처를 하기 쉽지 않아서다. 사고가 나더라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고도 사고로만 끝나지 않는다. 이듬해 농사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결국 보상이 이뤄지더라도 최대 피해자는 농민이 된다.

이번 동녹현상으로 피해를 본 농민은 총 445농가. 농가들이 자체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피해면적만 233ha, 피해금액은 150억 원에 이른다. 현장에서 만난 농가들은 피해도 피해지만 이번 사태로 얼음골 사과의 이미지 실추도 걱정하고 있었다. 약해대책위원회 이상만(60) 위원장은 "결국 피해는 최종적으로 농가 몫"이라면서 "원인이라도 제대로 규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농가들은 과학적인 설명을 필요로 했다. 모든 상황이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만 위원장은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이렇다 할 답변을 준 곳은 없었다”고 답했다. 농약은 정부기관에 등록을 해야 판매가 가능하다. 농약등록은 농촌진흥청 소관이다. 농촌진흥청에서는 농약 시험성적 등 각종 서류를 업체로부터 제출받은 후 안전성이 인정되면 등록을 허가하고 업체에서는 판매를 시작한다. 신규등록일 경우 약 9개월이 소요된다. 농민들은 미사일의 시험성적서를 확인하기 위해 농촌진흥청의 문을 두드렸다.
 

피해농가들이 농촌진흥청에 요구한 농약 시험성적서 자료협조 요청에 대한 회신 공문.
피해농가들이 농촌진흥청에 요구한 농약 시험성적서 자료협조 요청에 대한 회신 공문.

“(미사일 시험성적서는) 공개가 안된다고 하대요. 법이 그렇대요. 이게 말이 됩니까. 피해만 4백농가가 넘는데...”

농약관리법 제27조 제1항에 따르면 ‘등록신청자가 보호를 요청한 자료는 공개해서는 아니된다’고 명시돼 있다. 다만 예외 조항이 있다. ‘자료를 공개하는 것이 공익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문구다. 농가들은 약해 사건과 같은 농가 피해가 발생하면 예외로 인정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법적 현실은 다르다. 스타트법무법인 윤성일 변호사는 “해당 조문의 구조를 보면, 등록신청자가 보호를 요청한 경우 원칙적으로 정보를 공개하지 못하게 되어있고, 예외적으로 공익상 필요가 인정되는 경우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담당 공무원이 스스로 공익상 필요가 있음을 인정해 비공개하도록 되어 있는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기대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농민들이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농촌진흥청장을 상대로 비공개처분을 취소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해 법원으로부터 이 사건은 공익상의 필요가 인정된다는 판단을 받아야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매번 약해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복잡한 법적 절차를 맞닥뜨리는 농가들로서는 뾰족한 대응책이 없는 이유다.

“정부에서 농가들 요청으로 직접 이곳에 와서 보기도 했죠. 역시 답변은 길 수도(미사일로 인한 피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데 박사란 사람들이 할 말입니까.”

피해를 입은 농가들은 정부에서 현장기술지원을 수행한 결과에도 분통을 터뜨렸다. 결과에 따르면 ‘동녹 발생 양상을 보면 농약을 직접 맞은 과실의 바깥쪽에 발생하였으며, 사과원의 가장자리 열에서 농약살포가 불가능한 쪽이 농약을 살포한 쪽보다 동녹 발생이 월등히 적었음’이라고 명기했다. 그러나 검토의견에는 ‘동녹현상이 발생하기 쉬운 기상으로 미사일에 의한 것인지 혼용관계가 불확실한 농약과 미량요소 복합비료의 혼용살포 때문인지 명확한 원인 규명을 위해서는 확인시험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 위원장은 “내년에 확인 시험을 한다고 해도 당장 내년 농사를 준비하려면 돈이 융통돼야 하는데 가능한 농가가 몇이나 되겠습니까”라면서 “특히 임대농들은 연말이 되면 임대료도 지급해야 하는데 내년에 확인시험을 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대책위원회에서 올해 전수조사를 하고 일단 피해액의 절반을 지급해줘야 한다는 의견을 회사 측에 제시했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면서 “혹여 경농 측 과실이 아닐 수도 있으니 담보를 제공하겠다고 해도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덧붙였다.

폐기처분한 사과 모습.
폐기처분된 사과 모습.

경농 측의 주장대로 내년에 재현시험을 해도 문제다. 익명을 요청한 한 농약 전문가는 “약해 피해라고 하는 게 농약, 식물체, 환경조건 3가지가 영향을 미치는데 여기에 제초제, 비료, 영양제 등 다양한 조합까지 고려하면 인과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들다”면서 “내년 같은 기간 시험포를 여러 곳으로 나눠서 실험을 한다 치더라도 온도, 습도 등 기후까지 맞출 수 없기 때문에 재배 시험포마다 다른 결과가 도출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제주에서 일어난 농민과 농약방 간 약해 분쟁에서도 재현시험 결과가 재배 시험포마다 다른 결과가 도출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농가들의 불안은 고조되고 있다. 약해 피해를 입은 박순규(57)씨는 “정부에서는 관심도 없고 지금까지 약해 피해에 대해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온 것을 본적이 없다”면서 “시간이 지나면 농민들은 일이 바빠서 흩어지니 피해가 발생했을 때 보상받은 사례도 손에 꼽는다”고 말했다. 손양규(61)씨도 "국가기관이 농민 피해에 대해 이렇게 무책임할 수 있느냐"면서 "농약을 허가해 줬으면 사고에 대해 정확히 밝혀주는 게 국가의 임무"라고 울분을 토했다.

약해 피해와 관련 진상규명에 대한 제대로 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