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3년 전 오늘 - 축산 소식57] 제향을 위해 국가기관에 흑우를 황우보다 9배 더 길렀다
[593년 전 오늘 - 축산 소식57] 제향을 위해 국가기관에 흑우를 황우보다 9배 더 길렀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8.10.0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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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73호, 양력 : 10월 1일, 음력 : 8월22일
[팜인사이트= 남인식 편집위원] 고려 때부터 조선 초까지 제사에 희생 제물로 사용할 가축을 기르는 일을 담당하던 관서를 전구서(典廐署)라 하였습니다. 태조(太祖)가 처음으로 전구서를 설치했을 때에는 종7품의 영(令) 1명, 종8품의 승(丞) 2명과 사리(司吏) 2명을 두었으며, 이들은 거위, 오리, 양, 돼지 등의 희생물을 기르면서 민간으로부터 사료용 곡식과 개초(蓋草)를 거두기도 하였습니다.

전구서는 세조(世祖) 대에 전생서(典牲署)로 개칭되어 국가적인 각종 제사 때 희생물을 올리는 역할을 하였는데, 이러한 대제(大祭)에 사용할 희생물들은 예조(禮曹)의 당상관과 전생서의 제조(提調)가 함께 품질 검사(看品)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품질 검사가 이루어진 소나 양, 돼지 등을 희생물로 올 릴때는 제사의 격에 따라 수량에 차이가 있었는데, 1월에 행해지는 사직(社稷) 기곡대제(祈穀大祭) 때에는 흑우(黑牛) 1마리와 양 1마리, 돼지 5마리를 올렸으며, 왕이 직접 참석하는 경우에는 여기에 양 3마리가 추가되었습니다. 또한 종묘 춘향(春享) 때에는 흑우 5마리, 양 7마리, 돼지 22마리를 올렸는데, 왕이 참석하는 경우에는 양 11마리와 돼지 9마리가 추가되었고, 이 밖에 성단(星壇)의 경우에는 새끼 돼지 1마리를, 삼각산이나 목멱산, 한강 등에 제사 지낼 때는 돼지 각 각 1마리를 올렸습니다.

이러한 희생물 준비를 위해 전생서에서는 양, 염소, 돼지와 같은 중소가축 외에 대가축인 소를 길렀는데, 황우(黃牛)는 3두인 반면 흑우(黑牛)는 9배인 28두를 상시 길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593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전구서에 기르는 가축을 위해 사료를 생산하는 농장 인근의 고을 백성이 입는 민폐(民弊)를 줄이는 방안을 논의하였습니다.

 

■세종실록 29권, 세종 7년 8월 22일 무자 기사 1425년 명 홍희(洪熙) 1년

호조에서 올린 경기도에서의 민폐를 구제할 조건

호조에서 계하기를,

"삼가 전지를 받드옵고 경기도에 민폐를 구제할 조건을 다음과 같이 갖추어 기록합니다. (중략)

1. 전구서(典廐署)·예빈시(禮賓寺)에서 양(羊)과 돼지 사료(飼料) 때문에 고양현(高陽縣)에다가 농장(農場)을 설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소용되는 종자와 인부들의 식량 때문에 비용은 많이 들면서 수확은 오히려 적습니다. 또 수확한 것은 모두 고을 백성을 시켜 운반하게 하는데, 운반한 것이 모자라면 곧 추징(追徵)합니다. 이런 것은 딴 고을에는 없는 일이며, 본 고을만이 폐를 받으오니, 이제부터는 고을 백성이 운반하는 것은 면제하고, 두 관청 노자(奴子)를 시켜 운반하기를 청합니다. (중략)“

하니, 모두 계한 대로 하도록 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0책 29권 2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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