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행정 후퇴의 원인과 해법
축산행정 후퇴의 원인과 해법
  • 김재민 기자
  • 승인 2022.03.07 12:18
  • 호수 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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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인사이트=김재민 기자] 축산업계 종사자들이라면 2010년대 들어 늘어나는 여러 규제로 인해 ‘축산 못 해 먹겠다’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규제는 보통 어떤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도입하는 것으로 무언가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규제를 처음 도입했을 때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으나 공무원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또 다른 규제를 만들고 그래도 효과가 없으면 또 다른 규제를 만들어 인디언 기우제처럼 정책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규제의 장벽을 만들어가게 된다.

그러다가 목표로 했던 효과가 나타날 즈음 되면 너무 많은 규제 때문에 규제 대상자들의 아우성이 시작되고 목표로 했던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오히려 사회 후생이 후퇴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1년 계란값 폭등 사태다.

당시 농림축산식품부는 조류인플루엔자를 잡아보겠다고 위험도 평가나 역학 조사와 상관없이 고병원성 AI 발병농장 인근의 양계장까지 무차별적으로 살처분하였는데, 한참 닭을 살처분하다 보니 계란 한 판에 1만 원을 돌파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유통업자들이 계란을 사재기하고 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계란을 시장에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계란 가격 폭등에 소비자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자 수천만개의 계란을 혈세를 낭비해 가며 수입하는 일이 2021년 한 해 내내 있었다.

산업 전체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균형감 있게 방역업무를 추진해야 하는데, 다른 것들은 고려하지 않고 방역에만 매달린 결과로 이러한 말도 안 되는 행정이 자행되고, 혈세가 낭비되었다. 크나큰 정책 실패 사례가 있었지만 이 때문에 처벌이나 문책을 받은 공무원은 없었다는 게 서글픈 현실이다.

이후 농림부는 조류인플루엔자 발병농장 주변 농가의 경우 방역태세와 위험도를 평가해 살처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슬그머니 제도를 고치고서는 올해 새로운 제도 때문에 계란 가격이 안정적이라는 자화자찬을 벌이기도 하였다.

 

유능했던 1990~2000년대 축산행정

축산행정이 과거부터 규제 중심이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산업의 발전을 이끈 훌륭한 제도가 여럿 있었고, 20~30년 전 만들어진 제도가 지금까지 산업을 발전시킨 예도 수없이 많다.

1990년대는 우유 위생과 안전성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던 때이다. 우유 소비가 급감하면서 도산한 유업체도 여럿 발생했다. 이 유질 논란을 끝낸 제도가 시행되는데 우유 위생 수준에 따라 등급이 부여되고 등급에 따라 페널티와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이었다. 우유의 위생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단편적으로 접근했다면 위생 수준이 좋지 않은 원유에 벌금을 부여하는 방안을 도입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공무원들은 우유 위생에 따른 등급을 나누고 가장 낮은 등급에만 페널티를 부여하고 나머지 등급에는 인센티브를 차등해 제공하기로 한다. 이 위생 등급제를 자세히 뜯어보면 규제이지만 농가들은 우유를 깨끗이 관리하면 돈을 더 주는 지원제도로 인식하였고, 이 제도 시행 1년도 안 되어 유질 논란은 말끔히 사라지게 되었다.

이뿐만 아니다. 1992년 시작된 쇠고기 도체 등급제 시행과 패키지로 시행된 거세 장려금, 고급육 장려금 제도는 고질적은 한우의 품질 문제를 극복해 내는 단초를 제공한다. 이로 인해 한우산업이 시장개방 이후에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외에도 1990대 도입된 축산자조금 관련 제도, 축산계열화사업, 2000년대 추진된 축산물 브랜드 육성사업, 2006년 만들어진 가축분뇨 자원화 관련법, 음식점 원산지표시제, 축산물 이력추적제 등은 현재 축산업을 지탱해 주는 주요한 정책들이다.

 

무능한 2010년대 축산행정

2000년대까지 만들어진 제도나 정책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 만들어진 제도는 현재의 축산업 근간이 될 정도다.

지금은 어떨까? 축산업계 지도자나 축산생산자단체에서 농정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면 농림축산식품부 공무원들의 복지부동(伏地不動)을 한 두 번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공무원들이 민원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이 현상은 다른 분야에서도 나타나지만, 축산분야에서는 매우 두드러진 현상이다. 2010년대 들어 축산 관련 정책, 제도 등에 있어 농림축산식품부보다는 소극적인 행태를 일관하고 있고, 환경부와 식약처가 사실상 주도하고 있으며, 공무원들의 소극적인 자세는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수준에 와 있는 상황이다.

2010년대 축산 공직자들의 행태는 무능하고 무책임의 극치라 할 수 있는데, 식약처와 환경부가 축산업계를 압박하고 규제 장벽을 쌓아가고 있다면 적극적으로 이를 풀 방안들을 제시하고 협상해 주어야 하는데, 나 몰라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부의 독주를 막기 위해 2006년 가분법 제정 당시 농림축산식품부의 역할을 명시하였지만, 2010년대 들어 가분법 개정에 있어 농정당국은 주도권을 상실하였을 뿐 아니라 관심조차 두지 않고 있다.

위생 등 안정성 관련하여서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주도했던 행정업무를 식약처에 빼앗기고도 이를 되찾아 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길 생각도 하지 않고, 오히려 저 골치 아픈 걸 왜 우리가 관여해야 하냐는 식의 행태를 보인다.

사태가 이 지경에 오게 된 경위는 축산행정을 전문적으로 수립하고 집행하는 공무원들의 부재 때문이다.

기술직 공무원에는 축산직 공무원이 존재하지만, 중앙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축산직 공무원을 찾기 어렵다. 축산행정에 전문기술직 공무원의 부재는 축산행정의 퇴보를 가져오게 했다.

 

전문성을 무시한 임용

축산업은 농업 전체 생산액의 40%에 달하는 대표 품목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행정력은 과거와 비교해 크게 후퇴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축산분야를 전담하는 축산직 공무원의 부재, 그리고 산업 규모에 맞지 않는 작은 조직의 규모가 가장 큰 원인이라 하겠다.

먼저 인력 문제를 살펴보면 축산업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축산직 공무원이 있기는 하지만,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후 중앙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축산직 공무원을 채용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시·도, 시·군에서 채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9급으로만 채용되어 고위직 승진이 불가능하고, 인재 선발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중앙부처에 축산직이 채용되지 않으면서 농림축산식품부 내 축산조직은 일반행정직과 농업직공무원이 자리를 메우게 되었고, 업무강도가 다른 부서보다 높다 보니 발령받은 공무원 상당수가 기회만 되면 타 부서로 이동하려 하고 웬만해서는 다시 축산부서로 돌아오지 않으려 하면서 업무의 연속성마저 상실한 상황이다.

그나마 시도와 시군의 경우는 축산직 공무원을 채용하고 있어 업무의 이해가 높고, 오랜 경험으로 인해 업무 수행에 있어 막힘이 없는 것은 장점이나 9급으로만 채용하고 있어, 고위직 승진이 막혀 있어 실무에는 강하지만 미래비전을 제시할만한 수준의 적극 행정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연구직도 마찬가지다. 농촌진흥청은 2009년부터 대부분의 연구직을 공개 채용하면서 학력이나 전공에 대한 제한을 두지 않고 채용하고 있다.

시험과목에는 생물학개론, 가축사양학, 번식학, 육종학 같은 과목을 보기는 하지만 1차 시험인 국어, 영어, 한국사를 통과하는 비율이 비전공자, 비 학위자들이 상당수를 차지하면서 전공자와 학위소지자가 채용될 수 있는 길이 매우 좁다.

 

부작용

정부가 축산전문행정가를 육성하지 않고 있는 사이 축산업은 2000년 전체 농업생산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4.4%에서 2020년 현재 40%를 넘어서는 등 중요성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축산업을 위상을 고려해 2013년 부처 명칭을 농림수산식품부에서 농림축산식품부로 변경하였지만, 그에 맞는 조직 확대나 인적 쇄신을 위한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농림부에서 수행하던 축산위생, 축산유통 관련 업무를 식약처로 이관하면서 오히려 조직을 축소했고, 2017년에는 방역 관련 과를 축산국에서 빼내어 방역국으로 위상을 높이면서 방역행정에 대한 축산업계의 통제가 불가능해졌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축산직 공무원을 채용하지 않으면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중앙부처에 축산직 공무원을 채용하지 않으면서 나타난 현상은 축산분야에서 새로운 정책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농림부는 축산물 시장 개방을 앞두고 축산분야는 여러 정책을 만들어 실행에 옮겼다.

지금 송아지안정제, 축산물 등급제, 원유집유일원화, 축산자조금, 축산계열화 등 굵직한 정책과 투‧융자사업이 진행되었고 지금의 축산업은 1990년대 체제의 연장이라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2000년대에는 축산의무자조금 입법, 가축분뇨자원화 관련법 제정, 음식점원산지표시제 시행, 축산물이력추적제 등 굵직한 제도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축산자조금법은 축산단체의 끈질긴 입법청원의 결과물이고, 가축분뇨 자원화 관련법도 학계가 나서 환경부를 설득해 얻어낸 결과물이다. 2000년대 들어 축산행정의 공백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2010년대 들어 축산행정은 환경부와 식약처가 주도하고 새롭게 신설된 방역국이 주도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산정책국에서는 이해관계가 복잡한 사안의 경우 담당자들이 1~2년만 버터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어서 복지부동이 넘쳐난다. 대표적으로 낙농제도개편의 경우 미봉책으로 일관하며 해를 넘기기를 계속한 끝에 정부와 낙농가단체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것 마냥 극한의 대립을 하고 있다. 한우협회가 요구하고 있는 송아지안정제 개편 논의도 마찬가지로 지속적으로 개편 요구가 있지만 곧 개편된다는 이야기만 6년째 하고 있다.

축산직 공무원이 채용되지 않다 보니 우리 부서, 우리산업이라는 인식도 공무원 사이에서 실종되었다. 우리 부서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예산도 확보하고, 제도도 새롭게 만들면서 조직을 키우고, 여러 좋은 실적을 통해 조직의 중요성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데, 현재 축산행정 조직 구성원들은 국장부터 과장, 계장, 주무관까지 기회만 되면 다른 부서로 빠져나가려 하기 때문에 산업에 대한 애정은 물론이고 자신이 속한 부서에 대한 애정도 없어 축산행정의 발전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에 반해 신설된 방역국은 수의직 공무원이 주축이 되어 있어 조직의 확대, 인원의 확충, 예산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축산행정은 보이지 않고, 방역행정만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축산행정 발전 방안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축산 현장을 고려해 축산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의 전문성을 높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중앙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물론 지방정부에서도 축산직 공무원 채용확대로 전문성을 확보하고, 직급도 5급, 7급, 9급 등으로 다양화해 채용함으로써 축산분야 인재가 공직사회에 유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축산 행정 조직도 확대 개편해 정책, 지원, 친환경, 방역, 동물복지로 되어 있는 현행체계를 정책, 생산지원, 환경, 축산자재 및 인프라, 방역, 동물복지, 위생, 유통 등으로 확대 개편하고, 행정조직은 기능 중심에서 품목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은 축산 관련 하나의 과에서 한우, 낙농, 양돈, 가금 등 모든 축종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민원인들이 여러 과를 돌아다니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또 공무원 입장에서도 하나의 과에서 축산 모든 품목의 문제를 담당하다 보니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특정 품목에서 큰 문제가 발생하면 다른 품목들은 소외되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

이를 품목 중심으로 재편하면 하나의 과에서 모든 관련 행정업무를 처리할 수 있고, 공무원들도 해당 품목에 대한 전문적 지식만 쌓으면 되기 때문에 전문성을 높이기도 수월하고 다른 품목에서 큰일이 발생했다 해서 다른 품목의 행정업무까지 영향을 끼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현재 축산업은 규제 일변도의 행정으로 여러 어려움에 봉착하여 있는데 이를 넘어설 수 있는 지원체계는 미비한 상황이다. 지원 없는 촘촘한 규제 도입은 결국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만큼 늘어나는 규제만큼 이를 지원할 조직과 인적 역량, 예산을 갖추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축산업 전체의 규모도 커졌지만, 축산업을 구성하는 각 품목별 산업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축산행정의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는 조직재편과 전문인력 채용이 어느 때보다 시급한 상황이다.

*본 기사는 농장에서 식탁까지 2022년 신년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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