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년 전 오늘 - 축산 소식61] 봄에 파종하는 밀, 보리에 최고 비료는 우마분(牛馬糞)이었다
[613년 전 오늘 - 축산 소식61] 봄에 파종하는 밀, 보리에 최고 비료는 우마분(牛馬糞)이었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8.10.0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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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77호, 양력 : 10월 8일, 음력 : 8월29일

[팜인사이트= 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작물 재배에 사용했던 비료(肥料)에는 자연에서 채취한 초목, 객토에 활용하는 흙(土), 인분(人糞), 가축의 분뇨인 축분(畜糞)과 같은 자연비료(自然肥料) 또는 생분(生糞)과 자연이나 인간에서 채취하였지만 상당한 시간과 노동력을 투하하여 만든 비료인 인공비료(人工肥料) 또는 숙분(熟糞)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인공비료에는 초목을 불태워 얻은 초목회(草木灰), 오줌과 초목회를 섞은 요회(尿灰), 인분뇨나 우마분뇨 등과 초목 태운 재, 초목 등을 섞어 잘 부숙시킨 숙분(熟糞), 숙분과 요회를 섞은 분회(糞灰), 우마(牛馬)의 우리에 초목을 넣어 주고 우마가 잘 밟게 하는 동시에 우마의 분뇨(糞尿)와 섞이게 하여 만든 구분(廏糞), 녹두(菉豆), 소두(小豆)와 같은 두과작물을 파종하여 자라게 한 다음 자체를 시비재료로 활용하는 작물비(作物肥) 등이 있었습니다.

비료를 주는 대상 작물은 논(水田)에서 경작하는 벼와 밭에서 재배하는 여러 가지 잡곡이 모두 시비 대상이었는데, 시비 시기는 모든 작물의 경우 처음으로 밭을 갈고(初耕) 난 후 비료를 주고 파종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습니다.

특히 가뭄 등으로 논에 파종할 수 없을 때 건답(乾畓)을 만들어 종자를 직파(直播)하던 건경(乾耕)에서는 늦은 볍씨 종자를 숙분과 요회(尿灰)와 함께 묻는 방식이 효과가 좋았으며, 봄에 파종(春耕)하는 보리, 밀(麰麥) 생육에는 분회, 초목회(灰), 사토(沙土)와 함께 소와 말의 배설물인 우마분(牛馬糞)을 기경 후 파종 전 또는 파종시에 시비재료로 넣어주면 생육에 효과가 뛰어 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613년 전 오늘의 실록에는 함경도에서 충해(蟲害)를 입은 밭에 우마(牛馬)를 풀어놓은 백성들의 우마를 관가(官家)에서 몰수할 것인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태종실록 10권, 태종 5년 8월 29일 임진 기사 1405년 명 영락(永樂) 3년

동북면 도순문사 여칭이 방목을 금하자고 청하니 의정부에서 의논케 하다

동북면 도순문사(東北面都巡問使) 여칭(呂稱)이 밭에 우마(牛馬)를 풀어놓은 자는 〈그 우마를〉 관가(官家)에 몰수하자고 청하여 아뢰기를,

"황충(蝗蟲)이 화곡(禾穀)을 해치므로 이미 잡아서 묻었으나, 화곡이 손실되어 결실(結實)이 되지 못하여, 백성들의 먹을 것이 부족할까 염려되는데, 무식한 무리들이 많이 우마(牛馬)를 방목하오니, 원컨대, 이제부터 우마를 밭에 풀어놓는 자는 〈그 우마를〉 관가(官家)에 몰입(沒入)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동북면(東北面)은 5월부터 8월까지 황충이 곡식을 해치어, 함주(咸州)·정주(定州)·청주(靑州) 세 고을이 더욱 심한데, 칭(稱)이 지금 방목(放牧)을 금하자는 것을 인하여 자기가 능히 황충을 잡은 것을 자랑하고, 황충이 곡식을 해치는 것을 일찍이 보고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사실대로 아뢰지 않은 것이다. 또 방목을 금하는 것은 순문사(巡問使)가 전체(專制)할 수 있으니, 청(請)하는 것을 기다릴 것이 없다. 그 우마를 몰수하면 동북(東北)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겠는가? 정부(政府)에 내려서 상량(商量)하고 의논하여 시행하라."

【태백산사고본】 4책 10권 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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