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조금 사업과 정부의 역할
자조금 사업과 정부의 역할
  • 김재민 기자
  • 승인 2022.06.28 11:30
  • 호수 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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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한돈·우유자조금은 자율성 보장... 창의적 운영 유도하고
계란·닭고기 등의 품목은 과감한 지원으로 자립 기반 마련 도와야

축산 의무자조금 법제화 20년

자조금은 축산업계가 1980년대 만들어낸 신조어였다.

지금도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에는 ‘자조금’이라는 단어는 등재되어 있지 않으며, 국립국어원이 운영하는 위키디피아와 비슷한 개념의 오픈사전인 ‘우리말샘’에 자조금 제도(自助金制度)로 등재되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자조(自助)를 “자기의 발전을 위하여 스스로 애씀”이라 풀었고 ‘자조 정신’, ‘자조 조직’과 같이 활용된다고 하였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자조를 법률적 의미로 “국가가 자력으로 국제법에서의 권리를 확보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우리말샘에서 정의한 자조금 제도는 “단체가 법률상의 규정이나 집단의 결의에 따라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자금을 모아 기금을 마련하는 제도”라 정의하였다.

이를 종합하면 국가든 개인이든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노력으로 서겠다는 게 자조이고 축산농민들이 공통의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방편으로 농가 스스로 기금을 조성하는 프로그램이며, 정부 등에 기대지 않고 농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는 자조적 정신은 지도자라면 누구나 생각하고 하고 싶어 하는 프로그램이라 하겠다.

2000년 이전까지 한반도의 지배계층은 농업의 생산력 증대를 매우 중히 여기며 농축산물의 생산과 유통에 매우 깊게 관여하였다.

당연히 농민들 사이에서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부를 탓하는 문화가 만들어졌고, 정부가 예산을 수립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했다.

농가의 피해나 손실이 농가의 잘못일 때도 있었겠지만, 정부의 정책과 권유에 따라 작목은 물론이고 종자까지 선택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였기 때문이다.

축산도 마찬가지로 수요보다 턱없이 부족한 육류 등 축산물 수급을 위해 정부는 1960년대부터 축산진흥정책을 꾸준히 추진하여왔으며, 국내 공급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수출까지 중단시키는 초강수를 두기도 하였다.

하지만 농민들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부가 개입하는 시기나 수준이 성에 차지 않았고, 세상은 시시각각 변하고 새로운 문제가 등장하는데, 이러한 시장 상황을 관료들이 적기에 알아내어 필요한 대응을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하였다.

이는 1980년대 중반 축산업계가 자조금 개념을 받아들인 이유 중 하나라 하겠다. 자조금 사업은 1991년 법제화가 되었고, 1990년대 말 축산단체들의 입법 운동 끝에 2002년 의무자조금 제도로 발전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축산자조금의 활성화는 이후 농업계에도 영향을 주어 농업 분야를 넘어 수산 분야까지 자조금 제도가 확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자조금과 정부의 역할

‘자조금의 취지는 좋지만, 농가 개인 처지에서는 자신의 수입 중 일부를 떼 내어 기금을 조성한다는 게 맘에 들 수 없는 것이었다.

정부가 알아서 예산을 수립해 시행하면 될 일인데, 왜 농가가 돈을 내야 하냐며 불만인 사람도 많이 있었다.

단기적으로 농가에 전혀 이익이 아니기 때문이고, 수급조절, 각종 정책개발은 정부가 해야할 일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러한 농가들의 생각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인센티브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농가가 낸 금액만큼 보조금을 정부가 지급한다는 정책이었다.

이 강력한 인센티브를 축산협회들은 회원들에게 알리기 시작하였고, 이 기금을 활용해 자조적으로 산업을 모델링하고 이끌어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1원이 2원이 되는 이 마법에 이끌려 축산단체들은 자조금 사업 추진에 계속해서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였고, 2002년 의무자조금 관련 법이 제정되면서 자조금 사업은 순항하게 되었다.

2002년 의무자조금법 제정과 함께 동력을 얻은 축산업계는 무섭게 자조금 조성에 나서기 시작하였고, 매년 400억 원대의 기금을 거출하고, 정부 보조금을 합해 600~700억 원대의 기금을 운용하는 성과로 이어지게 된다.

농가의 요구에 정부는 법률을 제정하여 그릇을 만들어 주었고, 매칭펀드(Matching Fund

)라는 인센티브로 축산단체와 농가들의 참여를 끌어냈다.

자조금 사업에 대한 정부의 지배력 강화

자조금 사업이 순항하자 조금씩 정부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자조금 사업은 소비 촉진을 위한 광고와 홍보, 연구조사, 교육사업, 수급조절 등의 사업에 활용이 되는데, 구체적 사업과 프로그램을 두고 정부가 조금씩 관여도를 높이기 시작하였다.

어느 때는 정부의 기금은 소비 촉진 사업에 쓰여서는 안 된다고 선을 긋기도 하였고, 품목 축산단체장과 자조금 관리위원장의 겸직을 금하겠다며 법 개정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개별 프로그램에 문제를 제기하며 사업 승인을 늦추며 압박하기도 하였다.

자조금 관련 법에 따라 관리위원회, 대의원총회까지 통과된 사업계획을 정부가 관리 감독권을 앞세워 무력화시키려는 시도 또한 너무나 많았고, 품목 단체가 정부의 어떤 사안으로 충돌하면 자조금 사업 승인을 보류하며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일도 벌어졌다.

최근에는 한우정책연구소, 한돈미래연구소 등 축산단체들이 정책역량 강화를 위해 설립한 연구조직 무용론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각 품목협회 연구소의 기능이 정부 정책의 문제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데 집중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는지 정책연구기능이 특정 단체에만 유리한 편향성을 지적하며, 자조금을 활용해 연구소를 운영하지 말 것을 여러 이유를 들어 반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부의 간섭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자조금은 무엇보다 소비 촉진과 수급조절을 통한 가격 안정 사업이 가장 주요한 임무이다.

하지만, 정부는 물가 상승을 이유로 소비 촉진 사업과 수급조절 프로그램 추진에 비토를 놓아 왔다.

축산국의 임무가 농가의 경영안정, 소득향상보다 물가안정에 기울어져 있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조금 사무국은 농가와 정부의 사이에서 누구의 박자에 맞춰 일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정부가 자조금 사업에 지배력을 강화할 때마다 해당 품목 농가들의 발발은 거세지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정부 보조금을 받지 말아야 한다거나, 임의자조금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양계 자조금 정상화에는 불구경

정부가 이렇게 잘되는 자조금에는 지배력을 강화하고자 끊임없이 시도하고, 개별사업에 관여하고 있는 것과 달리 기금조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품목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우, 낙농, 양돈업계가 20여 년 전부터 자조금 사업을 통해 산업 발전의 틀을 놓은 것과 달리 양계 등의 품목 사무국 직원과 각 품목협회 구성원들은 축산물의 수급 안정, 산업 발전을 위한 혁신 활동이 아닌 자조금 거출을 활성화할 방법 마련에 십수 년째 고민하고 있으니 각 자조금이 품목의 발전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양계 분야 자조금 거출의 어려움은 한두 해 일이 아님에도 축산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양계 분야 자조금 사업이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이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현행 자조금 법률체계로는 양계 분야 자조금이 활성화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1990년 자조금 제도가 포함된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이 제정된 이후 양계와 양돈업계는 수차례 자조금 사업을 시도하였지만, 농가들의 저조한 참여로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그러다 같은 제도 아래서 1998년 낙농육우협회는 자조금 사업을 시도하여 성공시킨다.

많은 낙농가가 거출에 협조하였고 2000년대 들어서는 90% 이상의 농가가 기금조성에 협조하였다.

의무자조금 법령이 2002년에 제정되었음에도 불편함이 없었기 때문에 의무자조금으로 전환하지 않고 2006년에서야 의무자조금제도에 맞게 사무국을 조직해 운영하게 된다.

2002년 축산의무자조금법 제정 이후 양돈과 한우는 자조금 사업을 성공시킨다. 그러나 지금까지 닭고기와 계란자조금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과거의 제도도, 현재의 제도도 양계 자조금 활성화에는 기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정부가 해야할 일은 제도가 닭고기, 계란, 오리 자조금에 맞지 않는다면, 제도개선에 나서줘야 하고,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외생적 다른 문제라면 적극적으로 문제를 찾아 해결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품목구성원들의 힘으로는 이를 해결하는게 어렵다는게 판가름 났기 때문이다.

자조금 정상화를 위한 제언

정부는 자조금 제도 개편을 여러 채널을 통해 공식화한 상태다.

자조금과 관련한 정부의 역할은 활성화된 품목은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행동해야 하고, 정책과 관련한 연구기능은 정부와 협의가 되는 ’조사연구사업‘으로만 한정하는 방식이며, 축산자조금의 독립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축산단체장의 겸직을 불허할 모양이다.

이 모든 것은 자조금의 독립성을 높이는 행위가 아니라. 정부의 영향력 즉 지배력을 높이는 행위이다.

정부는 보조금 때문에 정부의 지배력을 높여야 한다고 하지만, 자조금 제도의 특성을 보면 정부는 보조적 역할을 할 뿐 주도적 역할은 축산단체들이 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부의 보조금은 농가가 기금을 조성할 때만 지급이 된다. 정부가 보조금의 양을 조절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농가가 행동하지 않으면 정부의 역할은 사라지게 된다.

두 번째는 자조금의 출발에는 축산단체가 있었고, 거출 활성화를 위한 농가 교육과 설득에도 축산단체가 있었으며, 제도를 만드는 일에도 축산단체가 있었다.

축산단체가 자조금 사업에서 주도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결국 자조금 사업에서의 정부 역할은 자조금이 잘 거출되고, 운영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고 정부의 지배력이 높아지고 농가의 지배력이 낮아지면 거출율은 낮아지거나, 자조금 무용론에 빠져 동력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

자조금 사업에 있어 정부의 스텐스는 문화예술계 지원사업에 흔하게 적용되는 “지원은 하되 간섭을 하지 않겠다”는 '팔 길이 원칙(Arm’s Lenth Priciple)'에서 찾아야 한다.

정부가 민간보다 유능할 수 있지만, 몇몇의 생각 대로만 움직이게 되면 결국 창의성이 상실되고 마는 문제로 이어진다.

자조금이 산업의 발전을 위해 쓰는 기금인 만큼, 회계적 부정에 대해서는 철저한 감시를 해야 하겠지만 전반적인 사업과 관련하여서는 정부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는 게 자조금 사업이 더 발전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더불어 자조금 거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품목을 위해서는 자조금 거출을 위한 방법을 고안하는데 더 힘을 기울이고, 필요하다면 정부의 보조금 비율도 해당 품목 자조금이 활성화될 때까지 한시적이라도 보조금 지급 비율을 상향하는 등의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적극성도 필요해 보인다.

*본 기사는 농장에서 식탁까지 2022년 5~6월호(창간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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