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낙농 인생 지금처럼 힘든 적은 없었습니다"
"40년 낙농 인생 지금처럼 힘든 적은 없었습니다"
  • 옥미영 기자
  • 승인 2022.08.18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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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지금 축산현장은] 김태용 왕일목장 대표(여주낙농검정회장)

일방적 쿼터삭감에 원유가격 협상도 중단...도산 공포 휩싸인 낙농가들

[팜인사이트= 옥미영 기자] 

“아들이 낙농을 이어 하겠다고 내려오지만 않았어도, 이런 투자는 않았을 텐데….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게 다 후회 투성이입니다.”

1983년 젖소 네 마리 입식으로 낙농을 시작한 지 올해로 40년이 된 김태용 대표(왕일목장, 여주낙농검정연구회장)는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하고 연신 한숨을 쉬었다.

김 대표는 “낙농의 상황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목장을 하겠다는 아들을 결단코 말렸을 것”이라며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30여 년간 낙농을 위해 터를 닦고 지켜온 여주시 가남읍 목장에서 김태용 대표와 최근 국내 낙농목장이 처한 현실에 대해 허심탄회한 얘기를 나눴다.

새로 들여놓은 착유설비에 대해 설명 중인 김태용 여주 검정회장
새로 들여놓은 착유설비에 대해 설명 중인 김태용 여주낙농검정연구회장

젖소 네 마리로 시작...3톤 납유량 목장으로 일궈

납유량 3톤400kg에 남부럽지 않은 목장 시설까지 완비한 왕일목장은 목장 시설을 새롭게 바꾸기 전에도 산유량이 높고 유질 관리가 뛰어난 목장으로 꼽혔다.

특히 어미 소의 분만과 송아지 생존율에 있어서 완벽한 수준의 성적을 보이면서 주위에선 모두 그의 낙농 사양기술을 부러워했고, 비법을 전수 받고 싶어했다.

김태용 대표의 분만 성적에는 목장을 일궈온 많은 시간은 물론 나름의 이유가 있다.

80년대 초반 국내에서 낙농 목장 붐이 일었을 당시 그 역시 ‘목장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됐는데, 마침 작은아버지가 분당에서 목장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공무원 한 달 급여가 8만 원 남짓한 수준이었던 그땐 낙농이 활성화되기 전이었던 터라 젖소가 매우 귀해 송아지 한 마리 가격이 150만 원, 초임우 가격이 400~450만 원 수준까지 갔었다.

웬만한 재산이 있지 않고는 선뜻 목장을 시작하기란 쉽지 않던 때였다.

고향인 삼척을 떠나 무작정 찾아간 작은아버지는 이미 목부 두엇을 두고 우유 600kg을 착유하는 제법 규모 있는 낙농 목장을 꾸리고 있었다.

목장에 눌러앉겠다는 그의 말에 작은아버지는 “종손은 고향을 떠나면 안 된다”는 말로 한사코 그를 말렸다. 하지만 낙농 목장에 이미 큰 꿈을 둔 그를 어쩌지 못했고, 결국 막내 이모의 도움을 받아 작은아버지 목장에 송아지 네 마리를 입식하는 것으로 그토록 바라던 낙농 목장과 인연을 맺게 됐다.

“송아지가 만삭이 될 때쯤에 소들을 데리고 나가 제 목장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작은아버지께선 몇 번 새끼를 낳고 마릿수가 좀 더 불면 그때 독립을 하라고 했지만, 하루라도 빨리 내 목장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당시만 해도 송아지를 내고 착유를 하고 이런 낙농 기술을 배울 곳이 없었는데, 작은아버지 목장에서 고급 기술을 터득하게 되었죠.”

조사료 가격과 배합사료까지 폭등한 가운데, 원유가격 조정이 뒤로 미뤄지고 있다는 소식에 김 태용 회장은 막막함을 토로하였다.
조사료 가격과 배합사료까지 폭등한 가운데, 원유가격 조정이 뒤로 미뤄지고 있다는 소식에 김 태용 회장은 막막함을 토로했다.

 

젖소와 평생을 함께해온 ‘천상 낙농가’의 삶

송아지 네 마리로 시작한 목장은 소들이 새끼를 낳아 사육마릿수가 늘고, 조금씩 쿼터를 사 모으면서 3톤을 넘게 착유하는 목장으로 성장하게 됐다.

목장이 이렇게 성장하기까지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목장을 시작 후 10여년이 지난 95년 뉴질랜드로 견학을 다녀온 뒤 극심한 무력감에 빠졌던 것이다. 우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목장 규모와 사료 자급이 가능한 목장 환경을 직접 본 뒤 무기력함에 결국 목장을 접을 결심을 했고, 착유소를 모두 팔아 치웠다.

“어느 날엔가, 한 참을 자고 일어나 목장에 소 밥을 주러 나갔어요. 웬일인지 녀석들이 바닥에 누워 일어나질 않더라고요. 간신히 불러서 소 밥을 먹이고는 집에 들어와 시계를 보니 밤 12시 반이더라고요. 시계를 잘 못 본거였어요. 내 마음에선 목장을 버렸는데, 내 몸이 목장의 일을 기억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죠.”

후보소 몇 마리를 돌보며 생활의 패턴이 완전히 무너진 체 낙담에 빠진 나날을 지속하던 속에서 ‘나는 역시 천생 낙농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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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우에 배합사료를 주고 있는 김태용 대표. 쿼터가 삭감되면서 육성우 숫자를 줄여야해 개량이 잘된 아까운 육성우 이십여마리를 처분했다고 전했다.

 

번듯한 목장 물려주고자 대규모 투자 감행

김태용 대표는 낙농 인생의 전환점을 장남이 목장을 잇겠다며 내려온 그때(2016년)를 꼽았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생활하던 두 아들 모두 목장엔 관심이 없어 했고, 때문에 그도 이렇다 할 투자 계획 없이 그럭저럭 목장을 이어가던 어느 날, 서울에서 고시 공부를 하던 큰아들(수일)이 목장을 하겠다고 내려온 것이다.

애초에 생각한 꿈을 이루지 못한 아들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목장을 잇겠다는 아들이 기특하고 고마워 김 태표는 2020년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다.

지금까지 내가 일해온 환경보다 더 나은 여건에서 목장을 하기를 바랐고, 번듯한 목장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김 대표는 기존의 가설건축물 시설을 모두 철거하고 4개월여에 걸쳐 목장 신축공사에 들어갔다. 적절한 환기와 온도조절을 위한 휀과 착유시설까지 모든 최신형으로 새로 들이고 착유장도 새로 지었다. 앞으로는 쿼터 5톤은 되어야 아들내외가 농촌에서 어렵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7톤짜리 냉각기를 들이고, 트랙터 등 장비 들도 새것으로 교체했다.

모두 10억 원을 들어간 대규모 투자와 공사였다.

“아들이 처음 목장에 내려왔을 땐 ‘대를 잇는 목장’이라고 주위에서 부러워했어요. 아들도 새벽 4시면 꼬박꼬박 목장으로 출근하는 성실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인공수정사 자격증도 따고, 농기계 운전 면허증도 따면서 열심을 다하더라고요. 저 역시 착유 시간이 되면 목장으로 돌아가기 바빴지만, 아들이 내려오고 난 뒤부턴 여유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가롭고 행복한 시간은 2년도 채 못 갔습니다.”

 

별안간 날아든 쿼터 10% 삭감과 추가 5% 삭감

유업체에서 별안간 쿼터 삭감을 통보 한 건 2020년이다.

N유업에선 이듬해인 2021년 10월 15일까지 10% 쿼터 삭감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더니, 그 이후엔 또다시 5%를 추가 삭감했다.

우유가 모자랄 땐 무이자로 대출까지 해 줘가며 우유 생산을 독려하던 회사였다. 그런데 어느날 회사는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쿼터 삭감을 통보해 버린 것이다.

“쿼터라는 게 엄연한 농가의 재산 아닙니까? 유대를 정산받아 30kg씩 50kg씩 이렇게 애써서 모으고 투자한 재산을 하루아침에 휴짓조각 만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영업이 잘 안 되고, 판매가 부진하다는 게 이유라 들었습니다. 장사를 잘못해서 제품이 팔리지 않는 건 회사의 책임인데 왜 농가들이 모든 책임을 지고, 희생을 강요당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날벼락 같은 일을 당하며 억울함에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유업체에 항의해 잘못 보일 경우 혹시나 우유를 아예 가져가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공포감 때문’이라고 김 대표는 토로했다.

“여주 검정회만 해도 회원들의 절반에 2세 축산인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 아들도 그렇고 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세들에겐 지금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납유량을 인정받지 못하고 언제 쿼터가 깎일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아들이 목장을 하겠다고 내려온 지난 2016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모든 걸 되돌리고 싶습니다.”

김 대표의 말에 안타까움이 깊게 배어나왔다.

김태용 회장이 경영하고 있는 왕일목장 전경
김태용 회장이 경영하고 있는 왕일목장 전경. 

 

이미 적용됐어야 할 원유가격 협상마저 ‘중단’...도산 공포감에 시달려

유업체의 일방적인 쿼터삭감도 억울하지만, 지난해부터 배 가까이 오른 조사료와 배합사료 가격은 농가들을 짓누르는 고통의 무게가 되고 있다.

왕일목장의 경우 납유량이 3톤이 넘다 보니 사룟값도 어마어마한 수준에 달한다.

배합사료를 뺀 건물만 쳐도 소들이 먹는 양이 하루에 1톤에 달한다.

“우리 목장에 한 달에 풀 사료만 4 컨테이너 이상 들어옵니다. 그런데 한 컨테이너당 100만 원씩 인상됐어요. 뿐만아닙니다. 면실, 비트 같은 건 100% 이상 인상됐어요. 쿼터가 삭감된 상황에서 사료비까지 폭등해 죽을 둥 살 둥인데 8월 1일부터 적용됐어야 할 원유가격 협상은 시작도 않았으니 농가들은 죽으란 소리밖에 안됩니다. 보름치 유대를 받아 외국인 부부 노동자와 아들 급여, 사료비와 대출금을 정산하면, 제 손에 남는게 없습니다.”

김 대표는 40년 낙농 인생에 이렇게까지 힘들었던 적이 있었던가를 생각했다고 했다.

몇 번의 우유 파동을 견뎌왔지만 그래도 목장을 시작한 것을 후회했던 적은 없었다.

IMF 등 사룟값이 폭등해 힘든 시절도 몇 번이 있었지만, 그나마 1년 안 유대 협상이 마무리되면서 또다시 목장을 꾸려갈 힘이 있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농가들은 도저히 살아남을 길이 없습니다. 납유량이 1톤 남짓한 농가의 경우 사룟값을 제하고 나면 수익은 마이너스 입니다. 규모 있는 농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낙농가들의 대부분이 시설과 쿼터 구매에 투자해 왔기에 여력이 있을 리 없습니다.”

지금 같아서는 낙농을 계속하기 힘든 상황이라는게 김태용 회장의 전언이다. 어떤 농가보다 앞장서 일했던 김태용 회장의 쓸쓸한 뒷 모습이 현 낙농산업이 처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같아서는 낙농을 계속하기 힘든 상황이라는게 김태용 회장의 전언이다. 어떤 농가보다 앞장서 일했던 김태용 회장의 쓸쓸한 뒷 모습이 현 낙농산업이 처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가 나서 “낙농의 큰 그림 그려주길”

김태용 대표는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정부의 강력한 의지’뿐이라고 단언했다.

그동안 정부와 유업체, 낙농진흥회 모두 쿼터 거래를 용인하고 이를 재산권으로 인정해왔던 만큼 최소한 유업체가 임의로 농가의 재산, 쿼터를 삭감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낙농업계에 따르면 농가의 쿼터 거래는 거의 중단된 상태다.

낙농의 상황이 워낙 엄중한 데다, 유업체가 농가의 쿼터를 일방적으로 삭감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시장에서의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 때 100만 원가던 서울우유 쿼터도 최근 70만 원 이하로 내려왔다.

더욱이 낙농은 날마다 우유를 생산하는 가축이어서, 생산량 감축은 단순한 농가의 자산 손실에 이어 이중, 삼중의 피해와 고통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김 대표는 삭감된 쿼터량을 맞추기 위해 만삭된 암소 20마리를 처분해야만 했다.

목장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꾸준히 개량에 매진해 오는 등 완벽한 소를 만들기 위해 수 십 년간 최선을 다해 달려왔지만 아끼는 소를 처분하지 않고는 방도가 없었다.

“정부가 나서 지금의 난국을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 낙농 산업은 무너지고 맙니다. 축산인도, 낙농인도 이 나라의 국민입니다. 깨끗하고 신선한 원유를 생산해 우리 국민에게 공급하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온 낙농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아들이 보다 나은 여건에서 낙농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2020년 신규로 투자한 착유실을 쓸쓸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는 김태용 회장.
아들이 보다 나은 여건에서 낙농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2020년 신규로 투자한 착유실을 착잡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는 김태용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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