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1년 전 오늘 - 축산 소식65] 중국에 보내는 세공마((歲貢馬) 크기는 175cm 이상이었다.
[561년 전 오늘 - 축산 소식65] 중국에 보내는 세공마((歲貢馬) 크기는 175cm 이상이었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8.10.1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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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81호, 양력 : 10월 15일, 음력 : 9월 7일
[팜인사이트= 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말의 용도는 다양하여 군사용으로 쓰인 전마(戰馬), 교통수단으로 쓰인 역마(驛馬), 통신 수단으로 파발마(擺撥馬), 운반용 타마(馱馬) 및 만마(輓馬), 농경용 농마(農馬), 곡식의 제분(製粉)에 쓰인 구마(臼馬), 무역용 교역마(交易馬), 외교용 진헌마(進獻馬)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말들을 생산하고 관리하기 위하여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마목장(國馬牧場)과 민간에서 운영하는 사마목장(私馬牧場)이 있었는데, 국마목장은 한양 도성과 지방에 설치되어, 도성에는 왕실 목장인 살곶이목장(箭串牧場)과 녹양목장(綠楊牧場)이 있었습니다. 지방에는 각 도에 172개소의 목장이 설치되었는데, 지방 목장 중에서는 제주도 목장을 비롯해 강화도 목장, 진도 목장, 도련포 목장, 마응도 목장, 두원태 목장 등이 유명하였습니다.

한편, 조선시대 말은 삼국시대 이래 생태적으로 ‘키가 3척(90.9cm)정도밖에 되지 않아 말을 타고서도 능히 과실나무 밑을 지나갈 수 있다’는 데서 유래된 과하마(果下馬)와 같은 작은 말이 주종이 었으나, 중국이나 몽골 등 다른 지역에서 전래된 큰 말들이 전해지면서 이전보다 다소 체격이 큰 중형마 들도 생산된 것으로 보여 집니다.

특히 몽골의 영향이 컸던 고려후기에는 몽골 계통의 말이 적지 않게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초기에는 명나라의 요구에 따라 우수한 전마(戰馬)들이 공마(貢馬) 등으로 많이 보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중국에서 이른바 호마(胡馬)라 불리는 큰 체격의 우수한 말들이 다량으로 수입되어 기존의 조선 말과의 교배로 우수한 말들이 생산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에서 명나라로 가는 말은 정기적으로 보내는 세공마(歲貢馬) 와 사행(使行)시 보내지는 별마(別馬)로 나눌수 있는데, 진헌하는 말은 색과 크기를 종류마다 지정하여 시행하였으며, 세공마는 측량에 사용되었던 주척(周尺)을 이용해 5척 7촌 이하 5척 4촌 이상으로 하였고, 별마는 더 커서 6척 이하, 5척 8촌(175.5cm) 이상이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561년전 오늘의 기록에는 강화도 목장에서 번식된 호마(胡馬) 중에 양마를 골라 다른 목장에 옮겨 마적에 등록 관리하자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세조실록 9권, 세조 3년 9월 7일 무진 3번째기사 1457년 명 천순(天順) 1년

사복시 제조의 건의로 강화 장봉도 목장에서 방목한 호마를 마적에 등록하다

사복시 제조(司僕寺提調)가 아뢰기를,

"경기 강화(江革)의 장봉도 목장(長峯島牧場)에 일찍부터 호마(胡馬)를 방목(放牧)하여 따로 번식(蕃息)을 시키고 있습니다. 현재 건장한 아마(兒馬)와 수말[雄馬]이 아울러 46필(匹) 있사온데, 청컨대 5세(歲) 이하의 양마(良馬) 10필을 가려내어 서울로 보내고, 그 나머지 수말 36필 속에서 북일(北一)·진강(鎭江) 두 목장에 각각 8필씩 보내어, 감목관(監牧官)으로 하여금 그 방목을 감독하게 하고, 모치(毛齒) 를 본사(本司)에 보고하여 마적(馬籍)에 등록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4책 9권 3장

【주】모치(毛齒) : 털 빛깔과 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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