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N 950은 40년 저의 한우 인생에 빛나는 선물입니다”
“KPN 950은 40년 저의 한우 인생에 빛나는 선물입니다”
  • 옥미영 기자
  • 승인 2022.11.10 16:05
  • 호수 4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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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KPN950 생산농가 전북 김제 배영환 대표
철저한 계획교배로 우량 송아지 생산에 전력
생전의 KPN950(사진제공 : 농협경제지주 한우개량사업소)
생전의 KPN950(사진제공 : 농협경제지주 한우개량사업소)

[팜인사이트=옥미영 기자]

한 마디로 '완벽한 소’라 하겠습니다. 당시 선발기준으로 놓고 보면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한우입니다. 특히, 후대축의 도체성적 중 도체중과 등심단면적은 지금도 최고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한국종축개량협회 정용호 전무‧육종학 박사).

도체중, 등심단면적, 등지방두께, 근내지방도 등 한우의 도체형질부문에서 최고의 유전력을 가진 가진 소였죠. 한우산업의 경쟁력과 한우농가들의 경제적 이득 효과에 기여한 공로 또한 상당합니다(박철진 농협 한우개량사업소장).

한우 보증씨수소의 레전드로 꼽히는 KPN950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다.

보증씨수소는 올 하반기 1500번대의 신규 소 선발을 앞두고 있는 만큼 2014년 선발된 KPN 950은 흘러간 옛노래가 될 법도 하건만 여전히 950은 한우농가들에 ‘최고의 씨수소’로 꼽힌다. 현장에선 아직도 950 정액을 보물단지처럼 보관하는 농가들이 있는가 하면, 모 수정란 이식 전문 업체에선 950 후손을 종모우로 만들어 활용하다 논란이 된 적도 있었다.

한우능력평가대회 등 국내 최고 권위의 고급육 품질평가대회에서도 대통령상 등 수상축의 상당 부분은 950의 후손들이 차지하며 위력을 입증하고 있다.

KPN950과 관련해 한우농가들은 “어떤 소에 찔러도(인공수정) 우량 송아지를 생산하는 소”, “찔찔이 송아지가 나오는 법이 없는 소”라고 평한다.

950이 한우농가들에게 최고의 ‘슈퍼한우’로 꼽히는 이유다.

한우 씨수소의 전설 ‘KPN950’을 생산한 전북 김제의 배영환 대표를 찾아 950 생산에 얽힌 스토리를 들었다.

 

죽어서까지 이름을 남긴 종모우 ‘KPN950’

"40년 한우 인생에 저도 작은 발자취를 남겼다는 사실에 뿌듯합니다."

죽어서도 이름을 남긴 KPN950을 생산한 배영환 대표는 올해로 한우를 사육한 지 꼭 40년이 됐다. 950의 명성만큼 이미 지역에선 ‘950 배출 농가’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배 대표는 한우업계에 길이 남겨질 걸출한 명소를 생산한 소감을 묻는 말에 덤덤히 답했다.

KPN950은 지난해 한우능력평가대회 대통령 수상축의 아비소로 확인된 데 이어 올해 대회에선 대통령상 수상축 어미소가 950 후대축인 것으로 알려져 또 한 번 화제에 올랐다.

배 사장은 “IMF 파동 때 12마리 송아지를 사들인 걸 빼면 외부에서의 소 구매는 일절 없었다”면서 “950이라는 소를 생산하게 건 순전히 한우와 내가 궁합이 잘 맞아서였던 것 같다”며 겸손해했다.

 

농장에서 배영환 대표.
농장에서 배영환 대표.

1984년 한우 사육 시작...

소 10마리 입식하며 '성공축산인' 꿈꿔

배영환 대표가 한우 사육을 시작한 건 지난 1984년, 그의 나이 스물일곱 해 되던 때였다.

객지에서 회사생활을 하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주변의 농사일을 돕는 것으로 농촌 생활을 시작했지만 각박한 살림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고, 결국 축산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출발은 양돈이었다.

하지만 돼지의 분뇨처리가 만만치 않았던 데다 냄새로 인해 어려움을 겪으면서 돼지사육을 접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고향을 떠나기 전 집안 한편에 사서 넣어두었던 송아지 몇 마리는 소를 키울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됐다.

그가 외부생활을 하는 동안 아버지께서 몇 번의 새끼를 내고 팔면서 두어 마리의 소가 남아있었던 터였다.

여기에 10여 마리의 송아지를 사서 넣으며, 성공한 축산인의 꿈을 키우게 됐다.

어려서부터 워낙 동물을 좋아한 그는 집안을 일궈나갈 생각으로 한우사육에 매진했지만 그의 목표는 얼마 못 가 좌절되고 말았다.

정부의 무리한 한우 입식 지원 사업과 생우 수입으로 소 사육두수가 크게 늘면서 이듬해인 85년 큰 소 가격이 반 토막 나면서 70~80만 원 수준에 거래됐고, 송아지 가격은 20만 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70만 원씩을 주고 산 송아지를 14~15개월 사료를 먹여 키웠는데 손에 남은 건 딱 송아지 가격만큼 이었다.

당시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만큼 앞이 캄캄했지만, 남아있는 송아지를 키우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배영환 사장이 포기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었다.

처음 한우사육을 시작하고 난 뒤부터 줄곧 자연종부 없이 좋은 정액을 골라 넣는 등 인공수정을 고수했다.

“지금은 계획교배 프로그램도 나오고 하지만, 그때는 우리 집 소에 어떤 정액이 맞는지 잘 알 수는 없었죠. 그래도 농장을 시작한 뒤 반드시 우리 농장에 맞는 정액을 골라 수정하며 농장을 개량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은 잊지 않았습니다.”

 

꾸준한 계획교배로 개량에 매진 마침내 ‘950’ 생산

성실함으로 한우 사육에 매진해온 그에게 두 번째 시련이 닥쳤다.

97년 IMF로 인한 고환율과 고곡가 영향으로 사료 값은 폭등하고 소 값은 폭락하면서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배 대표는 한우 사육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신념과 오기로 12마리의 송아지를 입식하는 등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농장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외부 송아지를 구매하면서 이를 발판으로 농장규모를 오히려 늘려나갔다.

특히 근친을 피하는 것을 기본으로 꾸준히 계획교배 하면서 농장의 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개량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우시장이 아닌 문전거래로 대부분의 송아지 거래가 이뤄지던 당시 상인들 사이에서 배 대표 농장의 소들은 체격과 골격이 큰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농장의 송아지를 보고 몇 달 뒤 농장을 다시 찾은 상인들이 소가 크는 속도를 보고 “정말 그때 그 소가 맞느냐?”고 할 정도로 소의 성장 속도는 남달랐다.

심지어 상인 중 일부는 “저렇게 큰 송아지는 부담스럽다”면서 손사래를 칠 정도였다고.

어미 소들의 개량이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하는 등 역사적인 KPN종모우 950 생산의 기반이 닦여지고 있는 셈이었다. 여기에 그는 당시에 능력이 출중하기로 이름난 KPN642 정액을 구해 계획교배 했고, 마침내 950 한우를 생산하게 됐다.

 

 

떡잎부터 달랐던 한우...KPN950

“클 때부터 다르긴 했어요. 사료섭취량도 좋고, 골격도 컸어요. 하루가 다르게 정말 눈에 띄게 쑥쑥 크더라고요.”

배 대표의 경우 육종농가는 아니었지만, 당시는 일반농장에서도 우량 송아지를 매입해 당대 검정과 후대검정을 거쳐 종모우를 선발하는 규정이 있었던 상황이었다.

농장의 소를 유심히 지켜봐 오던 ‘남다른 떡잎’을 발견한 축협 직원은 배 대표 농장의 송아지를 후보종모우 매입대상으로 강력히 추천했고, 결국 보증씨수소에 선정됐다.

최종 KPN에 선정되기 이전에도 950은 이미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유전능력과 육종가에 이해가 깊은 수정사들은 후보종모우 시절부터 950 정액 구입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보증씨수소로 선발되고, 후대축들이 생산되면서부터 950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한 스트로당 100만 원을 넘게 웃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귀한 몸’이 되었다.

‘아무 소에 수정해도 최고 한우를 생산해내는 소’라는 평가가 자자해지면서, 농장의 개량을 한 번에 이루고 싶어 하는 농가나 최고의 슈퍼한우를 생산하고 싶어 하는 농가 모두의 희망이 되었다.

 

950 생산의 저력...1++출현율 80~90% 달해

육종농가 선정에서 아쉽게 탈락했던 배 대표는 이 때문에 950 종모우 생산과 정액 판매로 인한 인센티브를 받지 못했다. 송아지 평균 거래 가격에 거래대금의 30%를 추가 성과보수로 정산받은 것이 전부였다. 육종 농가가 아닐 경우 정액 판매에 따른 이익금을 공유받을 수 없다는 조항 때문이었다.

자신이 생산한 950 정액의 1백 개를 구매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이 가운데 배 대표 농장은 오랜 기간 거듭된 개량의 효과와 950 생산 저력에 힘입어 농장의 소들은 평균 투플러스 고급육 출현율이 80~90%에 달하며 높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1년에 50~60마리를 송아지를 생산하는 가운데서도 폐사율이 거의 0% 수준을 유지하는 등 송아지 생존에도 남다른 기술을 가지고 있다.

폐사율을 낮추는 비결과 관련해 배 대표는 분만 하루 이틀 전 반드시 빈칸에 분만예정인 암소를 격리해서 첫 젖을 먹여야 한다고 했다. 첫 젖을 먹고 나면 어미 소도 송아지도 어미와 송아지를 혼동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배영환 대표는 “40년 한우인생에 950이라는 소를 남기게 되어 마음 뿌듯하다”고 말했다.
배영환 대표는 “40년 한우인생에 950이라는 소를 남기게 되어 마음 뿌듯하다”고 말했다.

 

젖을 먹지 못하는 송아지의 경우 일부러 붙들어 인공 포유를 시키지는 않는다고 했다.

“어떤 송아지는 나자마자 어미젖을 빨고, 또 어떤 얘들은 3시간 이후에나 젖을 찾는 송아지도 있고 천차만별이에요. 처음에 젖을 먹지 않는 송아지를 보면 저도 애가 타서 보듬어 먹이기도 하고 했는데, 송아지가 어디 아기처럼 가만히 있나요? 하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며 알게 되었죠. 억지로 먹이지 않아도 시간이 가면 자연히 먹게 되더라고요.”

다만, 송아지 생존에서 설사병 관리는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탈수가 오지 않도록 적절한 시기에 수액을 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배 대표는 “송아지 수액 주사를 위해 수의사에 연락하면 한나절은 지나야 오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그렇게 되면 송아지 생존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면서 “송아지에게 수액을 놓는 기술 정도는 익혀 놓으면 송아지 생존 등 농장 경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우산업, 어떤 풍랑에도 든든히 자리매김하길 

‘KPN950’이 한우산업과 한우농가들의 경쟁력, 경제적 이익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주위의 평가에 대해 그는 ‘그저 감사한 일’이라며 말을 아꼈다.

올해 칠십을 바라보면서 농장 일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는 배영환 대표의 마지막 바람은 “한우산업이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농촌과 농업의 핵심산업으로 튼튼히 자리매김 하는 것”이란다. 

“여전히 KPN950을 기억하고 높이 평가해 주시는 분들을 보면 가슴 뿌듯합니다. 40년간 한우농사라는 한우물만 파온 제가 한우산업의 일원으로서 한우산업과 농가들에게 뭔가의 역할을 했다는 부분에 보람을 느낍니다. 한우산업이 앞으로도 농촌과 농업의 희망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길 기원합니다.”

*본 기사는 농장에서 식탁까지 2022년 9~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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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헌 2022-11-13 20:47:14
좋은 글 잘 봤습니다!

한우 2022-11-13 20:23:47
정말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