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축산자조금, 누구의 것인가
[기자의 시각] 축산자조금, 누구의 것인가
  • 옥미영 기자
  • 승인 2022.11.16 09:1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 승인 권한 무기로 농가들 위에 군림해선 안 돼

자조금, 농가들이 자주적으로 예산 수립‧집행할 때 동력 얻을 수 있어

[팜인사이트= 옥미영 기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정부가 내놓은 조정안을 상정하거나 논의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내년도 한우자조금 계획과 예산을 최종심의 하는 지난 11월 9일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는 모 관리위원의 격양된 발언으로 시작됐다.

사건의 발단은 농림축산식품부가 관리위원회 개최 이틀 전 자조금 사무국에 전달한 ’23년 한우자조금 사업계획 예산(안)의 조정 요청 때문이었다.

한우 가격이 예상보다 빨리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과감한 소비촉진 사업이 필요하고, 이에 따라 유통사들의 할인판매지원과 저등급 한우 소비촉진에 150억 원의 예산을 편성하는 등 내년도 한우자조금 사업계획을 '리셋'하는 수준의 예산 변경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가 제시한 (안)대로라면 기존에 자조금 사무국과 관리위원회가 몇 달간 머리를 맞대어 짜놓은 예산은 앙상한 골격만 남아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

실제로 농식품부는 150억 원의 소비촉진 예산(안)의 의견을 개진하면서 사업별 조정 의견을 함께 제시했다.

농식품부가 내놓은 의견을 살펴보면 TV와 라디오 광고, 신문잡지 광고, 방송프로그램과 옥외 및 각종 디지털 광고 등을 올해 대비 80% 감액한다. 한우협회와 한우자조금의 대표적인 한우행사인 ‘대한민국 한우먹는날’ 행사 역시 올 예산 대비 80% 삭감하는 것을 비롯해 시군지역 소비 홍보와 한우 맛체험과 나눔 행사 등도 올 예산의 20% 수준에서 진행한다.

한우정책연구소 예산은 전면 보류, 지역 한우농가 정책사업 및 교류 지원사업과 한우산업발전대책모색 지원사업도 100% 감액된다.

미래 한우 산업을 위한 각종 환경 대응방안과 연구, 지역과의 상생 활동과 같은 예산 역시 모조리 삭감 또는 감액하는 안을 제시했다.

이처럼 일방적인 정부의 예산 조정(안)에 관리위원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로 보인다.

지역 대의원회들과의 몇 달간에 걸친 간담회와 수차례 예산 조정회의를 거쳐 마련한 예산(안)에 대한 최종 심의 회의를 이틀 앞두고 전면 수정과 다름 없는 조정안 요청은 관리위원회의 사업계획(안)을 전면 부정한 것으로, 이는 자조금법절차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농가들의 자율권을 크게 침해한 상식 밖의 태도로 받아들여진다. 

급작스런 예산(안) 조정을 요청하는 정부의 배경 설명은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당초 예상보다 한우 가격 하락이 심상치 않아 소비촉진 사업에 집중해야 할 필요성이 높다는 게 정부 주장이지만, 정부의 설명처럼 도매시장 한우 가격은 올 연말부터 내년 혹은 내후년까지 가격 하락이 전망되고 있다.

그렇다면 해답은 더욱 명확하다. 

도매시장 한우 가격이 하락하면 굳이 농가들의 피땀 어린 자조금을 투입해 할인판매를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올해 대비 가격이 내려가게 되어 할인 효과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소비가 촉진될 것이기에 그렇다.

과거 정부의 전례를 곱씹어 보면 ‘한우 가격 하락 우려’ 때문이라는 정부 설명에도 고개가 갸웃거려 진다.

한우협회는 사육두수 증가에 따른 공급과잉 과잉이 예상된다며 2018년부터 수급조절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자조금을 활용해 2019년부터 2~3년간 매년 2만두 정도의 암송아지를 비육하는 미경산우비육지원 사업을 정부에 선제안했었다. 이를 위해 한우자조금을 통한 지원 계획을 수립하고, 사업계획에도 반영하는 등 준비를 마쳤으나 "수급에 문제가 없다"며 선제적 수급조절사업의 무용론을 제기한 것은 다름 아닌 농식품부였다.

결국, 정부의 사업계획 승인이 늦어지면서 2019년 하반기에 이르러서야 가까스로 1만두 규모의 미경산한우 비육 지원사업이 시행됐다.

어디 이뿐인가.

2020년은 사업 승인까지 떨어진 자조금 예산 집행에 암송아지 지원 대상을 놓고 농식품부가 돌연 제동을 걸고 나서며 우여곡절끝에 시작된 수급조절사업이 1년여 만에 중단되기까지 했다.

그랬던 정부가 한우 가격 하락이 걱정된다며 자조금 사업의 전면 재검토를 요청하고 나섰으니, 이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으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자조금은 농가들이 스스로를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성하는 기금이다. WTO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정부는 매칭펀드를 제공해 기금 조성의 활성화를 돕고 있다.

정부 역시 적잖은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만큼 균형 잡힌 예산 활용과 관리 감독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은 맞지만 정부의 역할과 권한이 지나치게 되면 부작용이 발생하는 건 당연하다.

결국, 농가들이 자주적으로 예산을 수립‧집행하고 정부는 자조금 사업이 무리 없이 추진되는 것을 도울 때 자조금 사업은 비로소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축산자조금은 농업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성공한 제도로 막대한 재원을 바탕으로 농가와 산업 발전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는 축산 부분의 핵심 사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는 다름 아닌 축산인들의 저력과 역량에서 나왔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농식품부 축산국이 농가 보호와 축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 입안과 지원이 아닌 축산자조금에 집행과 승인에 지나칠 수준의 관심을 두고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정부가 이제라도 자조금 사업의 애초 취지를 제대로 인식해 농가들과 반목이 아닌 상생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조력자와 동반자로 거듭나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제주에서 2022-11-18 00:42:58
미경산우를 비육화하는 사업은
농가 스스로 사육 두수를 감축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생산자단체 중 가장 먼저
자율적으로 추진한 사업인데...
잘 정착되었다면 지금의 상황까지는 안 왔을텐데...
2018년 당시 미래 소값 하락을 예상하여
이 제도를 도입하고 강력한 추진 의지를 펼쳤던
한우협회 K회장이 생갑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