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됐지만 맛있다."
"못됐지만 맛있다."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8.10.20 2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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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 흑돼지 스토리 1-토종돼지 썰]
새로운 이베리코 쇼크를 준비하는 토종 흑돼지 이야기
재래 흑돼지 모습.
재래 흑돼지 모습.

[팜인사이트=박현욱 기자]

못됐다. 다른 말로 성질이 고약하다. 성격이 못돼 살도 잘 찌지 않는다. 덕분에 체구도 작다. 영악하기까지 하다. 재래돼지인 흑돼지 프로필에는 농부들의 악평이 쏟아진다. 우리 종을 지킨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만큼 키우기 어렵다. 한번 키워본 농가는 있을지 몰라도 계속 키우는 농가가 거의 없는 이유다.

플라이트 존(Flight Zone)이란 말이 있다. 낯선 동물이 처음 출현했을 때 경계를 위해 낯선 동물로부터 흩어지는 거리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백색돼지가 5m라면 재래돼지는 30m정도 된다. 낯선 동물에게 다가오는 시간도 늦다. 백색돼지가 5초라면 재래돼지는 15초쯤이다. 그만큼 낯을 많이 가리는데다 친해지기도 어렵다. 백색돼지가 성격 좋은 영업사원이라면 재래돼지는 깐깐한 회계경리쯤 된다.

이쯤되면 "재래돼지는 안키운다"는 농부들의 심정이 충분히 공감된다. 산업동물로서는 고개를 내저을 정도다. 우리나라는 백색돼지 왕국이다. 백색돼지는 맛 성격 경제성 등 삼박자를 갖췄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키우기 수월하다는 의미다. 게다가 품질까지 갖췄으니. LYD라 불리는 백색돼지는 랜드레이스, 요크셔, 듀록의 삼원 교잡종이다. 각 품종의 장점만을 뽑아냈다. 세계 돼지시장에서 유통되는 돼지는 대부분 LYD라고 보면 된다.

당신에게 호텔이 있다. 방이 30칸. 머무는 시간에 상관없이 손님에게 1만원을 받는다. 손님이 30명이면 30만원이다. 오래 머무는 손님이 있을수록 호텔 측은 손해다. 호텔 주인이라면 당연히 가장 짧은 시간을 머무는 손님만 예약을 받을 것이다. 하루살이 손님이 가장 좋다. 더구나 경제가 어려워지면 그런 유혹은 더욱 커진다. 2008년 금융위기는 축산농가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사료가격이 큰 폭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채산성이 악화된 농가들은 자연스레 폐업을 하거나 생산성을 극도로 높이기 위한 노력을 했다. 농가들은 오래 머무는 손님을 극도로 꺼렸다.

재래돼지는 오래 머무는 손님이다. 까다로운 성격을 지닌데다가 돈사를 오래 차지해서다. 백색돼지가 번성한 이유는 경제적 이유가 크다. 돈사에 머무르는 기간도 짧고 트러블도 적다. 농가들은 살아남기 위해 LYD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다양성은 사라졌지만 삼박자를 갖춘 능력자 백색돼지는 농가들에게는 효자였다. 금융위기 이후 돼지산업 호황도 한몫했다. 옆집은 크게 돈을 버는데 오래 머무는 손님을 그냥 두는 주인은 흔치 않다. 재래돼지는 우리나라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백색돼지는 평균 6개월을 키운다. 반면 재래돼지는 약 1년1개월을 키운다. 그렇지 않으면 상품 요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새끼돼지가 생존해 젖을 떼는 시점까지 살아있는 척도를 나타내는 '이유두수'도 백색돼지가 평균 11두 정도라면 재래돼지는 5마리 내외다. 아무리 주판알을 튕겨도 재래돼지는 경제적으로 백색돼지를 이길 방도가 없다. 같은 무게의 두 돼지를 놓고 비교해도 원료육으로 쓸만한 부분도 적다. 고기함량, 즉 수율도 낮다는 얘기다.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하면 답은 명쾌하다. 당신은 어떤 돼지를 키울 것인가.

우리는 유전자의 힘을 흔이 목격한다. 물만 먹는 사람이라도 쉽게 살이 찌는 체질이라거나 꾸미지도 않았는데 얼굴이 열일(열심히 일한다, 멋있고 예쁘다는 의미)하는 경우가 그렇다. 과격한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원판 불변의 법칙은 진리다. 아무리 노력해도 DNA의 힘을 거스르기 힘든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전 세계에 종자전쟁이 벌어지는 이유이며 종자는 그만큼 중요하다.

주식을 할 때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조언이 있다. 한 종목에서 큰 피해를 입었을 때 리스크를 회피하는 조치다. 생물학적으로도 종의 다양성은 중요한 문제다. 급변하는 환경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가장 높은 집단은 다양한 종을 가장 많이 확보한 집단이다. 모든 생물은 번성과 쇠퇴를 거듭하지만 결국 종의 다양성을 확보한 개체가 오래 살아남았다. 다양성 확보는 환경 리스크를 극복하는 자연의 회피기술인 셈이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생물은 늘 도전과 응전을 하고 있으며 지금도 수많은 개체가 종의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해 멸종의 길을 걷는다.

지금도 전염성 가축질병으로 인해 많은 가축이 살처분 되는 일이 비일비재 한 것 보면 이런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다양한 종은 강력한 질병으로부터 개체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다. 종의 다양성 확보는 언젠가는 생존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 우리 고유의 종을 지켜내는 것 또한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식량충격으로부터의 보험일 수 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다면 산업적인 셈법으로 접근해보자. 최근 스페인 돼지고기인 이베리코가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도토리를 먹여 키운 돼지라는 스토리와 괜찮은 맛이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면서 이를 내세운 음식점이 속속 목격되기도 한다. 한돈업계는 이베리코의 등장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늘 국내산에 밀려 2인자 자리를 지켰던 게 수입돼지고가 어느새 국내산 돼지보다 더 높은 가격을 형성하면서 돼지 프리미엄 시장을 위협하고 있어서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 이베리코 음식점 모습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 이베리코 음식점 모습

과거 우리나라는 효율에 목을 매왔다. 축산도 마찬가지다. 가격이 싸면 잘 팔렸다. 비싸면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지 않았다. 프리미엄 시장이 지속되기 힘든 구조였다. 이제 소비자들이 변했다. 다양한 맛과 스토리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유기농, 친환경, 방목한 축산을 원한다. 비록 일부 계층에서 목격되는 현상이긴 하지만 소비자의 나이가 어릴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잘 관찰된다. 앞으로의 소비트렌드가 변할 수 있다는 신호다.

축산업계도 준비를 할 시점이다. 돼지에도 프리미엄 시장이 열렸다. 생산, 유통, 판매 등 요소요소에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경제적 실험을 할 때다. 그 중 재래돼지 생산은 돼지의 스토리와 부가가치를 높이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재래돼지를 키우는 한 농부는 재래돼지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못됐지만 맛있다.”


※ 본 기사는 '농장에서 식탁까지' 10월호 '이베리코 쇼크(shock)' - 6. 새로운 이베리코 쇼크를 준비하는 토종 흑돼지 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베리코 쇼크 특집은
1. 프롤로그
2. (shock) 이베리코 돼지의 오해와 진실
3. (shock) 소비자 설문조사 "이베리코 돈육 알고있다. 35%"
4. (impact) 좌담회 "한돈 더이상 프리미엄 시장 절대 강자 아니다"
5. (impact) 한돈인증점 설문조사 "이베리코 위협적이다 43.7%"
6. (effect) 새로운 이베리코 쇼크를 준비하는 토종 흑돼지
7. (adaptation) 이베리코 현상 진단과 한돈업계의 대응 방안
으로 구성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