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돼지. 참 곤란한 식재료예요.”
“재래돼지. 참 곤란한 식재료예요.”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8.10.23 0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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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 흑돼지 스토리2-토종 지키기] 재래돼지를 없애고 싶은 유혹
새로운 이베리코 쇼크를 준비하는 토종 흑돼지 이야기
이한보름 송학농장 대표.
이한보름 송학농장 대표.

[팜인사이트=박현욱 기자]

경상북도 포항에 위치한 송학농장 이한보름 대표는 재래돼지를 키운다. 토종 종자에 관심이 많던 아버지 이석태 씨가 외형선발로 300종의 재래돼지를 모으면서 지난한 작업이 시작됐다. 육종은 고된 작업의 연속이다. 일단 생애주기가 변수로 작용해 짧아도 수 년은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송학농장을 이어받은 이한보름 대표는 단순한 외형이 아닌 유전학적으로도 증명하고 싶었다.

재래돼지를 살리는 길은 멀고 험난했다. 흰색 털이 섞인 돼지를 따로 분류하는 작업이 계속됐고 제한효소처리 유전 분석기법인 PCR-RFLP 등을 도입해 송학농장만의 재래돼지를 선발해 육종했다. 결국 이 대표는 백색돼지에서 나오지 않는 DNA를 발견해 코가 길고 턱이 곧은 흑돼지를 살려냈다.

어렵게 살려낸 흑돼지는 적자의 원인이었다. 키우기가 녹록치 않은데다 좋은 가격을 받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2005년, 신토불이가 유행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아버지 이석태 씨는 생산부터 소매유통까지 진출해 식당도 운영했다. 1998년부터 2009년까지 10년 동안 재래돼지의 목살, 삼겹살, 후지를 섞어 모듬 메뉴로 팔았다. “정말 다른 고기”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받을 수 있는 가격은 박했다. 당시 1인분에 5천원의 가격대가 형성된 백색돼지의 경쟁력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약 10%가량 비싸게 팔았고 식당도 고기가 부족할 정도로 성업했지만 농장의 적자는 쌓여갔다.

이 대표는 “이대로는 농장 운영이 안된다”고 결론지었다. 매달 2~3천만 원의 적자가 누적됐기 때문이다. 결국 10년 만에 전국에 9개 체인점을 보유한 식당은 간판을 내렸다. 농장 수익의 마이너스를 기록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재래돼지 사육도 접는 게 현명한 판단이라 생각했다. 토종 종자를 지켜온 아버지와의 논쟁 끝에 재래돼지 100여 마리만 남기기로 했다. 

“참. 곤란한 식재료예요. 그때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종 유지만 했죠.”

농장에서 뛰노는 흑돼지.
농장에서 뛰노는 흑돼지.

소비자들은 재래돼지의 가치에 돈을 지불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이 대표는 단지 토종이라는 이름에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축산농민은 가축을 키우기 위해 수많은 일들을 감내한다. 하루 종일 분변이 가득한 농장에서 일을 하고 도시와 떨어진 곳에서 각종 문화생활로부터도 소외받는다. 주위로부터 온갖 환경문제로 눈총을 받기도 한다. 먹거리의 가치는 먹거리를 생산해 내는 모든 요소를 인정할 때 비로소 본연의 가치가 빛을 발한다.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반박할 수도 있지만 이들을 살려내야 우리 먹거리를 지킬 수 있다.

돈육 시장에도 변화가 감지됐다. 소비자들의 욕구가 다양해지면서 먹거리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전파를 타는 프로그램에 셰프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한다. 스토리를 확보한 먹거리는 각종 온라인을 등에 업고 쑥쑥 성장하기 시작했다. 먹거리에 대한 관심과 온라인의 성장이 결합되면서 정보 비대칭에 매몰된 소비자는 먹거리 정보불평등에서 해방됐다.

이 대표는 현재 백색돼지 4천두와 재래돼지 100두를 키우고 있다. 이제는 소비자들이 먹거리에 가치를 부여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아직 재래돼지의 경제적 가치에는 물음표가 붙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이라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숙성이라는 영역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긴 유통기한, 맛의 정점을 찾는 여정이다.

“아직도 농장 직원들이 재래돼지 돈사를 비우자는 이야기를 하죠. 수많은 농민들이 재래돼지 키우기를 포기한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돈을 벌겠다는 순간부터 철학은 변질되고 의도는 왜곡됩니다. 지금은 재래돼지를 키우는 사명감, 그리고 가능성을 보고 있습니다.”


※ 본 기사는 '농장에서 식탁까지' 10월호 '이베리코 쇼크(shock)' - 6. 새로운 이베리코 쇼크를 준비하는 토종 흑돼지 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베리코 쇼크 특집은
1. 프롤로그
2. (shock) 이베리코 돼지의 오해와 진실
3. (shock) 소비자 설문조사 "이베리코 돈육 알고있다. 35%"
4. (impact) 좌담회 "한돈 더이상 프리미엄 시장 절대 강자 아니다"
5. (impact) 한돈인증점 설문조사 "이베리코 위협적이다 43.7%"
6. (effect) 새로운 이베리코 쇼크를 준비하는 토종 흑돼지
7. (adaptation) 이베리코 현상 진단과 한돈업계의 대응 방안
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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