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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97호, 양력 : 11월 6일, 음력 : 9월 29일
[617년 전 오늘 - 축산 소식81] 일본 대마도에서 말 60여두를 조공하였다
2018. 11. 07 by 남인식 편집위원

[팜인사이트= 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연해안을 침입하여 약탈을 자행하던 일본의 해적 집단을 왜구(倭寇)라 하였는데, 이들은 조선 건국 전 40-50여년 동안 가장 많아 500여척의 대선단(大船團)을 이끌며 그 규모가 수만명에 달하는 경우가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이들의 근거지는 일본의 서해도 일대와 규슈(九州)지역으로 대마도(對馬島), 일기도(一岐島), 송포(松浦)가 가장 심했습니다.

세종(世宗)대에는 이들 대마도 사람들이 왜구로 돌변하여 약탈을 자행하자 당시 상왕(上王)으로 있던 태종(太宗)은 대마도를 정벌하게 하였는데, 병선 227척과 병력 17,285명이 동원되어 100여 척의 적선을 소각하고 1,939채의 가옥을 불태웠으며 114명의 왜적을 참수하고 131명의 중국인 포로를 색출해 오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이후 왜구의 노략질은 거의 소멸되었으나 생존 모색을 위해 불법적인 어업, 밀무역 대신에 합법적인 교린(交隣) 체제를 통하여 살 길을 찾기 위해 자주 사신을 보내 조공(朝貢)하고 교역(交易)을 요청하였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세종(世宗) 21년 한 해에만 대마도(對馬島), 일기주(一岐州), 일향주(日向州) 등의 일본 여러 섬 지역에서 자주 왜사(倭使)가 찾아와 그 숫자가 1,300명에 달하였으며, 사신 접대에 어려움이 있어 조선의 임금을 찾아와 인사하는 절차인 왜사숙배절차(倭使肅拜節次)를 정할 정도였습니다.

한편, 이들 사신들은 주로 조선에 토산물(土産物)을 예물로 바치고 쌀이나 콩과 같은 곡물이나 인삼(人蔘), 흑마포(黑麻布), 백저포(白苧布)등 포물(布物)을 답례품으로 받아갔는데, 특히 대마도에서는 정종(定宗)대에 32두, 태종대에 21두, 세종대에 6두, 성종(成宗)대 2두등 10여 차례에 걸쳐 60여두의 말을 조공하기도 하였습니다.

617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일본 대마도 태수(太守) 등이 말 10두와 석고, 백반을 바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태종실록 2권, 태종 1년 9월 29일 을묘 기사 1401년 명 건문(建文) 3년

일본의 대마도 임시 태수 종정무 등이 말·석고·백반을 바치다

일본국(日本國) 권 대마도태수(權對馬島太守) 종정무(宗貞茂)가 사자(使者)를 보내어 말 6필을 바치고, 대마 주수(對馬州守) 사미 영감(沙彌靈鑑)이 사자를 보내어 말 4필을 바치고, 박다(博多)의 자운 주지(慈雲住持) 천진(天眞)이 석고(石膏) 5근과 백반(白礬) 30근을 바쳤다.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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